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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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6주] “잊어 버리라!”

  • 관리자
  • 2025-07-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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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6/ (20250720)
잊어 버리라!”  제목을 누르시면 ppt실황설교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18-2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7월 세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이달 한 달 동안 예수의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설교 시리즈로 지옥의 세 마리 사냥개두려움, 위선, 미움를 하나씩 성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할 사냥개는 미움입니다. 두려움이라는 지옥의 사냥개는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는 자기정체성과 우리의 삶이 흔들릴 때마다 손을 내밀어주시는 주님이 계신다는 믿음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위선이라는 지옥의 사냥개는 겸손한 삶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미움이라는 지옥의 사냥개는 무엇으로 물리칠 수 있을까요?

 

미움이 먼저 공격하는 것은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미워서 견딜 수가 없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움과 증오는 일차적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무너뜨리는 감정입니다. 미움은 안에서 곪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증오하게 되면, 속이 쓰리고, 감정이 요동치고,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이 뒤숭숭해지고, 일상은 회색빛으로 물듭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 사실조차 모릅니다. 원인 제공자는, 때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걸 아예 모른 채 살아갑니다. 힘 있는 이들은 그런 사실을 인지해도 무시하고, 심지어는 억압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미움(증오)’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해 던지는 독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던지는 독이 됩니다. 미움이 우리 내면과 관계, 삶 전체에 끼치는 해악은 깊고도 지속적입니다.

 

미움의 세 가지 해악


그 중에서도 신앙적·심리적 관점에서 핵심적으로 짚을 수 있는 세 가지 해악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기파괴적 감정으로 영혼을 황폐하게 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 사람과 보이지 않는 감정의 사슬에 묶이게 됩니다.
둘째, 건강한 관계를 파괴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미움은 사실보다 감정에 기초한 판단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을 향한 불신과 비난의 언어를 양산해 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의 능력을 가로막습니다. 미움을 품은 채 예배를 드리면, 우리의 기도와 찬양도 빈껍데기가 됩니다. 복음의 본질은 용서와 화해에 있는데, 미움은 그 복음을 가리고, 우리를 은혜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돌이켜 보십시오.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 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라는 말씀 안에 지옥의 세 마리 사냥개 두려움, 위선, 미움이 다 들어있습니다. 여기서 두려움과 위선도 미움(증오)을 떨쳐내는 사람에게는 맥을 추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미움이라는 사냥개를 굶겨 죽이는 것이 가장 근원적입니다.

 

청교도의 흑역사


18세기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때,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땅을 정복하고 원주민을 몰아내며,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원주민들은 죽이면서 기도했고, 찬양했으며, 원주민을 몰아낸 곳마다 시온성과 같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이 세운 그 교회 아래에는 수많은 원주민의 피와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시온성과 같은 교회를 작곡한 존 뉴턴(John Newton)은 노예무역선을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가 운영한 노예선 중 하나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수호(Jesus)’였습니다. 1779년 그 찬송가를 작곡할 무렵, ‘예수호는 수많은 흑인 노예를 싣고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그들의 삶은 짐짝처럼 팔렸고, 고향과 가족은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그런데 백인들은 그 배 위에서도 예배를 드리며, ‘시온성과 같은 교회를 불렀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러니 그 찬양이 팔려가던 흑인 노예의 귀에는 얼마나 모욕적으로 들렸을까요? 그때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공허하게 들렸을까요? 그들의 가슴 속에는 미움이 생겼을 것입니다. 증오가 차올랐을 것입니다. 그 미움은 너무나도 정당해 보입니다.

 

I Have a Dream


그러나 그 미움은 그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미움이 상대를 먼저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먼저 갉아먹었기 때문입니다.
총칼로 무장하고 대포와 성벽으로 무장한 이들에게 활과 말로 대항하는 일은 속 시원했을지 모르겠지만 자멸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증오는 더욱더 커졌고, 저항할 수 없는 증오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 혹은 동족들에게 자행되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증오는 결코 해방의 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마틴 루터 킹 주니어였습니다.

마르틴 루터 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백인 우월주의와 구조적 인종차별의 가장 혹독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모욕당하고, 폭행당하고, 살해 위협을 수없이 받으면서도 그는 미움으로는 미움을 이길 수 없다. 오직 사랑만이 미움을 이긴다는 신앙 고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1963년 워싱턴 D.C.에서 했던 연설 “I Have a Dream”은 단지 민권을 외치는 정치적 연설이 아니라, 복음이 인간 역사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용서와 화해의 길로 이끄는가를 보여주는 선포였습니다. 킹 목사는 말했습니다.

 

미움은 영혼을 좀먹는다. 나는 내가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감옥에 갇히고 싶지 않다. 나는 그들이 나의 사랑까지 앗아가게 둘 수 없다.”

이 고백은 미움은 결국 자기를 파괴한다는 진실을 말합니다. 원수를 미워하면 원수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고, 자기만 더 어두워지고 병들게 됩니다. 하워드 서먼은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의 영적 스승이자 정신적 멘토였습니다. 킹 목사가 비폭력과 사랑의 신앙을 실천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에는 바로 서먼의 사상과 글, 그리고 삶의 영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냥, 잊고 삽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4)

이 말씀은 원수를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원수'를 품고 사는 사람을 위한 말씀입니다. 미움이라는 사냥개에게 마음을 내어준 채 살아가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점점 황폐해지고 맙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잊고 살자.” 맞습니다. 잊고 산다는 것은 사랑하라는 명령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일종의 자기보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그 사람과 다시 예전처럼 잘 지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그 사람을 내 안에서 내려놓고, 내가 자유로워지라는 주님의 초대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이고, 미움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놓아주는 연습'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흔들리고, 내가 망가지고, 내가 지쳐가지 않도록. 그냥, 잊고 삽시다.

그게 복음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향해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의 용서는 상대방을 변화시키기보다, 그 순간에도 자신 안의 증오를 품지 않으려는 싸움이었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마음을 지옥에서 건져 올리는 능력입니다. 두려움, 위선, 그리고 미움이 사냥개들이 우리를 물어뜯으려 할 때, 예수의 복음은 우리를 살립니다.

오늘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미움의 그림자를 주님 앞에 내려놓읍시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복음의 뜻


사랑하는 여러분, 미움은 때로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미움이 내 안에 오래 머물도록 두면, 우리는 결국 자신을 상처 입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도 용서를 선택하셨듯이, 우리 역시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미움은 잊는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억 속의 고통을 복음으로 씻어내는 일, 그것이 바로 사랑하라는 명령의 깊은 뜻입니다.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다만, 복음을 따르려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미움을 손에 쥔 채 살기보다, 놓아주는 쪽을 선택합시다.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복음이며, 그리스도인의 길이며,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의 길입니다. 용서하기가 너무 힘들고, 용서가 안 된다면, 우리를 위해서라도 잊고 삽시다.” 미움이라는 사냥개는 우리가 더는 먹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죽습니다.

 

거둠 기도

 

주님,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미움과 증오를 비추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감정이 다른 사람을 해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먼저 무너뜨렸다는 것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예수님, 당신은 십자가 위에서도 용서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오늘 우리도 증오를 버리고 자유를 선택하게 하소서.
원수를 향한 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내는 복음의 길로 걸어가게 하소서.
우리의 삶에서 미움이 사라지고, 평화가 머무는 자리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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