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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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5주] 위선 너머의 진실한 얼굴

  • 관리자
  • 2025-07-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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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5주/ (20250713)
위선 너머의 진실한 얼굴
마태복음 23:1–1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7월 두 번째 주일입니다.
설교 시리즈 『예수의 가난한 사람들』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주에 이 책을 소개하면서 지옥의 세 마리 사냥개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7월 한 달 동안 ‘두려움, 위선, 증오’ 세 마리의 사냥개가 도처에서 공격하는 세상에서 ‘예수의 복음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묵상하고자 합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질문합니다.
“지옥의 사냥개에게 삶을 내어주고 있진 않은가?”
예수의 복음은 이 사냥개들—두려움, 위선, 증오—로부터 우리 영혼을 해방하는 능력입니다.
 

■ 두려움 –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지난주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사냥개를 성찰하며, 그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퐁랑이는 인생의 한복판, 예수님은 두려움 속에 있는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분은 먼저 상황을 바꾸시기보다, 우리에게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손을 내미십니다. 믿음이란 파도를 없애는 능력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주님의 내민 손을 붙잡는 용기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두려움에 빠져 사는 이들에게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 너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라고 선언합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작아지게 하지만, 예수의 복음은 우리 존재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 두 번째 사냥개 - 위선


오늘 우리가 함께 마주할 두 번째 사냥개는 ‘위선’입니다. 
위선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을 속이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는 깊은 자기기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약점이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위선은 그 약함을 감추기 위해 신앙의 언어와 겉모습으로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하워드 서먼은 『예수의 가난한 사람들』에서 위선을 가리켜 “약자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자기보존의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외면의 질서를 뒤흔들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은 내면의 진실까지 꾹꾹 눌러 담고, 결국 그 억눌림이 자기 자신을 파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적당히 타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힘 있는 사람들은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위선의 삶이 내재화되면, 자기를 속이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자기의 위선적인 행동을 모두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합리화시킨 자신의 모든 행동은 선하고 정의롭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위선의 가면은 더 두꺼워지고, 지옥의 사냥개 위선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위선은 때로 너무 익숙해져서, 그것이 위선인지조차 모르게 됩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삶의 태도는 교만하고, 사랑을 말하지만 비난이 앞서는 우리의 모습 속에도 위선은 숨어 있습니다.
 

■ 위선과 외식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위선은 조금 다릅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말은 하되 행하지 아니하며,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얹되, 자기는 그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마 23:3–4)

겉으로는 말씀을 강조하고 율법을 선포하지만, 정작 자기 삶에는 아무런 울림이 없는 이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단호하게 외치십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화 있을진저.”

‘외식’이라는 말, 곧 위선이란 말입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죠. 회칠한 무덤이 무엇입니까? 겉은 희고 단정하지만 속은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한 모습이 회칠한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날카롭게 그들을 비판하셨습니다.
 

■ 위선을 이기는 겸손


이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 마음도 무거워집니다. 나 역시 그런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닌가? 믿음이란 이름 아래, 나도 모르게 가면을 쓰고 있진 않은가? 우리는 모두 가끔 삶의 중심을 잃고 형식과 습관에 기대어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오래 믿었고, 신앙 경륜이 있으니 괜찮다’고 말하며 내면을 돌아보지 않을 때, 그 자리에서 위선은 뿌리내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섬김과 겸손으로 자신을 다시 낮추고, 그 자리에서 복음의 진실을 회복하길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마 23:1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마 23:12)


겸손은 위선을 이기는 신앙의 무기입니다. 
섬김은 가면을 벗기고 진실한 얼굴을 회복하게 합니다.
겉모습보다 내면을, 말보다 행동을 더 귀히 여기는 삶. 그 삶이 바로 위선 너머의 진실한 얼굴입니다.
겸손은 거창한 결단이 아닙니다.
내 말이 옳다 주장하기보다 잠시 멈춰 듣는 태도, 비판보다 격려를 먼저 말하는 습관, 섬김은 그런 작은 선택 속에서 시작됩니다.
 

■ 위선 너머에 있는 복음


사랑하는 여러분,
위선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유혹입니다. 신앙이 익숙해질수록, 겉으로 신실해 보일수록, 그만큼 내면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의롭다”는 생각이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진실을 요구하십니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라.” 그 이상은 악한 것이니라.
오늘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껍데기뿐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말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삶에서는 미움을 품고, 기도는 하지만 이웃을 외면하고, 예배는 드리지만 삶이 따라오지 않는 신앙이라면—예수께서 원하신 길이 아닌 것입니다.

위선 너머에는 복음이 있습니다. 가면을 벗고 진실한 얼굴로 예수 앞에 설 때, 그분은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말뿐이 아닌 삶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 진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오늘도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 조용히 이 기도를 드려 봅니다.

“주님,
제 안에 있는 가면을 벗기소서.
겸손과 섬김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소서.” 아멘.


[거둠 기도]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의 마음을 비추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선이라는 가면을 쓰고도 스스로를 모르고 살아온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겉이 아니라 속을 보시는 주님 앞에, 
겸손히 머물며 진실한 신앙으로 서기를 원합니다.
섬김으로 낮아질 때, 그 자리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삶이 예배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이 말이 아닌 행함으로 드러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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