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두 번째 주일/ 2025년 6월 22일
제목: “이제 다시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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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9:1–4, 8–15
갈라디아서 3:23-29
누가복음 8:26-3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계절에 성령님과 동행하시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배드민턴 선수 안세영을 아시죠?
그가 최근 인도네시아오픈 정상에 오른 뒤에 인터뷰에서 “한 경기도 지고 싶지 않아요.”라는 바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녀의 바람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이길 때도 있지만 질 때도 있고, 때로는 다리에 통증이 와서 멈춰 서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요. 그럴 땐 잠시 멈춰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한 인물도 그랬습니다. 무너졌지만, 다시 걸어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제목은 바로 이것입니다. "다시 걸어가라!"
우리는 성령강림주일에 ‘여기에 계신 하나님’을, 삼위일체주일에 ‘우리 곁에 계신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령강림 후 두 번째 주일에는 ‘사악한 영을 물리치시는 하나님’ 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넘어지고 실패하고 좌절 속에 살아가는 한 인물을 만납니다.
그 사람은 바로 엘리야입니다.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와 홀로 싸웠던 엘리야, 하늘에서 불을 내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했던 선지자. 그가 지금은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죽여달라!”며 도망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도 이세벨의 한 마디 말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엘리야처럼, 때론 욥처럼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며 겪는 깊은 낙심과 회의, 피곤함과 무력함은 결코 우리의 믿음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한 가지는 끝까지 붙잡으시오. 무너짐 이후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 광야는 무너짐의 끝이 아니라, 다시 빚으시는 자리입니다

엘리야는 브엘세바에서 광야로 들어갑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시 빚으시는 자리입니다.
모세가 부르심을 들었던 곳도 광야였고, 이스라엘이 민족으로 빚어졌던 곳도 광야였습니다.
예수께서 시험을 이기고 사명을 확인하신 곳도 광야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지만 하나님만은 여전히 계신 자리입니다.
그리고 광야는 훈련의 장소입니다.
그곳에 홀로 들어간 엘리야는 사흘 길을 걸어가다 로뎀나무 아래 쓰러집니다.
그곳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합니다.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투정을 하다 잠이 듭니다.
여러분, 엘리야처럼 이런 적이 없으십니까?
광야에 홀로 서있는 것 같은 느낌, 이제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 때는 끝나는 자리가 아니라, 다시 빚어지는 자리요, 광야는 무너짐의 끝이 아니라, 다시 걸어가야 할 시작의 자리라는 것을.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책망하지도, 가르치지도 않으십니다.
대신, 떡과 물을 보내십니다.
지친 자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교훈이 아니라,
몸을 살리는 음식과 마음을 쉬게 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두 번 먹게 하시고, 두 번 자게 하시고, 그 후에야 다시 걷게 하십니다.
이 장면은 욥기의 하나님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욥 역시 고난 가운데 이유를 묻고, 진실을 호소했지만, 하나님은 오랫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의 신비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폭풍 속에서, 별과 우주의 질서를 통해, 바다의 경계를 통해. 하나님은 욥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아느냐?”고 조용히 묻습니다.
무너진 자에게 하나님은 말씀보다는 동행하심으로, 교훈보다는 당장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일단 해결해주시고, 그 후에 묻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단계에서 다 되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면 끝난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가 시작입니다.
■ 세미한 음성, 그러나 그 음성조차도 놓칠 때

엘리야는 40일 밤낮을 걸어 호렙산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자리입니다. 그 산의 동굴에 몸을 숨긴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묻습니다.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엘리야는 여전히 낙심한 채, 불평합니다.
“저만 남았습니다. 이제 저도 죽을 겁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강풍을 보이시고, 지진을 일으키시고, 불을 보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안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야, 조용하고 낮은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는 이 소리를 ‘세미한 음성’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만큼 낮게, 그러나 분명하게 다가오십니다.
지난주에 나눴던 말씀처럼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세미한 음성을 듣는다고 해서 즉시 우리의 불평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엘리야처럼, 그 음성을 듣고도 여전히 낙심한 채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지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묻고, 다시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이제, 다시 걸어가거라.”
다시 묻고, 다시 보내실 때, 그때는 순종할 때입니다.
엘리야는 도망쳤습니다.
이스르엘에서 브엘세바로, 광야로, 그리고 호렙산까지. 그는 살아갈 용기를 잃은 자였습니다.
그의 무너짐은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냥 너무 지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하지 않고, 떡과 물로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회복된 몸과 마음 위에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이제, 다시 걸어가거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은 지금 상처받아 떠나 계신 분들, 교회에서,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을 향한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그 길을 반드시 ‘그대로’ 다시 걸어가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다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걸음이 멈췄던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자.
나는 그 자리에 이미 가 있고,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이제 다시 그 길을 걸어가라!”
그 길이 예전과 같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모든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 길을 피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다시 걷기 시작하자는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상처받고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은 세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걸어가라.”
너의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네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될 것이다.
당신이 포기했던 그 길, 오늘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 길을, 다시 걸어가라."
관계가 끊겼다면 화해의 길을 다시 걸어가십시오.
신앙이 식었다면 기도의 길을 다시 걸어가십시오.
사랑이 식었다면 사랑의 자리를 다시 걸어가십시오.
[거둠 기도]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갈멜산의 용사도 광야에서 무너졌듯, 저희도 인생의 광야에서 넘어지고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먼저 떡과 물을 주시며 회복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낙심할 때,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다시 걸어가야 할 자리로 보내주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에 조용히 임하시는 성령의 숨결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다시 시작하는 예언자의 걸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