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주일설교모음

[성령강림주일] 여기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라

  • 관리자
  • 2025-06-08 11:00:00
  • hit1896
  • 219.251.41.124

성령강림 절(20250608)
여기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라
제목을 누르시면 음성설교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령강림 절(20250608)창세기 11:1-9
로마서 8:14-17
요한복음 14:8-17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자 환경주일입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이 두 주제는 사실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단지 방언이나 뜨거운 체험이 아니라, 우리 곁에 계시고, 세상을 살게 하시며, 만물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성령을 하나님의 숨결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 속에 내재하시며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그 안에 하나님의 숨결,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서일과의 말씀들을 통해 성령을 더 깊이 만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벨의 사람들 하늘에 닿고 싶었던 이들


창세기 11장은 인간의 위대한 시도처럼 보입니다.

, 벽돌을 구워 성과 탑을 쌓아 하늘에 닿게 하고, 우리 이름을 내자.” (11:4)

그들은 단결했고, 기술이 있었고,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탑을 무너뜨리시고, 그들을 흩으십니다.
왜일까요?
그들의 시도는 하나님을 향한 경배가 아니라,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려는 시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멀리, 높은 하늘 어딘가에 계신 분으로 여기고, 스스로 거기에 닿으려 했습니다. 바벨의 하나님은 멀고, 두렵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벽돌을 쌓고, 하늘을 찌르듯 올라갑니다.

오늘 우리의 세상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학과 자본, 권력으로 탑을 쌓습니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빠르게. 자연을 정복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그 탑 끝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곳엔 오직 인간의 욕망과 교만만 있을 뿐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쌓고 있는가?
나의 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누구를 향한 것인가?
혹시 나는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무언가를 오르고 있지는 않은가?”

 

보혜사 성령 곁에 계시는 하나님,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하나님을 소개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4:16)

여기서 보혜사(파라클레토스)는 곁에 계시는 분, 돕는 분, 함께 울고, 함께 중보하시는 분입니다. 하늘 끝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곁,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너희 속에 계실 것이다.” (14:17)

이것이 성령의 신비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닿아야 하는 하늘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종의 영이 아닌 자녀의 영 관계로 부르시는 성령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8:14)

그리고 덧붙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릅니다.” (8:15)


바벨의 사람들은 종의 영을 가졌습니다. 늘 두려움에 시달리며, 하나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라 부릅니다. 그분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부르십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친밀함. 심판이 아니라, 신뢰. 교만이 아니라, 자유. 그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을 ‘Abba,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단지 남성 호칭이라기보다, 어른이 아이처럼 마음을 열고,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신뢰의 관계를 뜻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아빠라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성적 권위를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두려움을 품어주시고 안아주시는, 생명과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부르고 있는가?
우리의 신앙 안에 남아 있는 두려움과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없게 막는 것은 무엇인가?”

 

환경주일 만물 안에 숨 쉬시는 성령


오늘 성서일과 시가서의 말씀은 시편 104편입니다.

주님께서 그 영을 보내시면 그들이 창조되고, 주님은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십니다.” (104:30)

여기서 그 영은 성령입니다. 그러니 성령은 인간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숨을 불어넣으시는 분입니다. 바람처럼, 숨처럼, 빛처럼 이 땅을 살게 하시고, 꽃이 피고, 물이 흐르고, 새가 노래하게 하시는 분. 성령은 창조 세계 안에 충만히 거하시는 하나님의 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물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형제자매로 바라보고, 이 땅을 욕망의 바벨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으로 대해야 합니다.

 

나는 창조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는가?
나의 소비와 생활 방식은 성령의 숨결과 조화되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이 지구를 하나님의 집으로 대하고 있는가?“

 

어느 하나님을 믿고 따를 것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두 개의 신앙을 마주합니다.
멀리 계신 하나님께 닿기 위해 탑을 쌓는 바벨의 신앙, 그리고 이미 우리 안에 오신 하나님과 함께 걷는 성령의 신앙. 우리는 오늘 두 개의 삶의 방식 앞에 섭니다.

두려움과 경쟁, 종살이의 영으로 사는 삶, 그리고 사랑과 신뢰, 자녀의 영으로 사는 삶.
그리고 우리는 오늘 두 개의 세계를 바라봅니다.
정복당하고 파괴된 세상, 혹은 하나님의 숨결이 살아 있는 창조 세계.

오늘, 우리는 이 모든 질문 앞에서 다시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늘을 향해 탑을 쌓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 여기, 내 안에 계신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하늘 위를 바라보며 탑을 쌓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듣고 있는가?
나는 어떤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있는가?
바벨의 하나님인가, 보혜사 성령이신 하나님인가?”

 

맺음말


성령은 하늘 끝에서 부르는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자연과 사람과 일상 속에 임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라면, 서로를 정죄하는 대신 품고, 세상을 소유하는 대신 돌보며, 하늘을 향해 오르기보다 지금 여기, 흙과 이웃과 만물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 분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주님, 우리는 자주 하늘 끝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쌓고, 오르려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늘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곁에,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다시 바라봅니다.
성령님, 당신은 바람처럼 오시고, 꽃을 피우고, 물을 흐르게 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우리 안의 교만과 두려움을 비우고, 자녀의 영으로 다시 살게 하소서.
성령의 숨결을 따라 지금 여기서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