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후 6주(20250528)
평화의 길을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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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7편
사도행전 16:9-15
요한복음 14:23-29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평화'를 묵상하려 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땅,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교회조차도 평화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평화’란 말조차 힘 있는 사람들의 특권처럼 느껴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에서는 아이들이 폭탄 아래서 죽어가고,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몇 년째 멈추지 않습니다. 지구촌 전체가 전쟁과 증오, 침묵 속의 학살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런 참혹한 현실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무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왜 지금 우리는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평화를 오늘 여기에서 살아내는 일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한 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의 고별설교입니다.
십자가고난을 앞둔 유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마지막 시간에 제자들에게 복음의 핵심, 신앙의 고갱이를 들려주십니다.
지난주일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사랑의 열매, 그 사랑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습니다. 그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요 14:23, 27)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 예수님, 보혜사 성령—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우리 삶 속에 머무르신다는 놀라운 약속입니다. 이 약속에서 드러나는 평화는 외적인 고요함이나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평화, 곧 존재적 평화, 관계의 평화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죄’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죄를 단순한 ‘잘못된 행동’으로 보지 않습니다. 죄는 곧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 서로 간의 단절, 자신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평화는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끊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 그리고 서로 간의 사랑과 신뢰가 회복될 때 비로소 평화가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그렇게 관계의 회복에서 오는 평화이며,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셔서 “내가 너희 안에 거하겠다”고 하심으로 시작됩니다. 이 평화는 폭풍이 멈춘 후의 평화가 아니라, 폭풍 한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의 평화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주 품에 품으소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평화”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질서와 침묵, 힘의 균형 위에 세워진 평화일 수 있지만, 예수님의 평화는 사랑과 동행, 그리고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화입니다.
시편 67편은 이 평화가 단지 개인에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 땅과 모든 민족에게 흐르는 은총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시 67:5)
사도행전 16장에서는 마케도니아로 향하는 바울의 선교 여정 속에서, 복음의 평화가 유럽으로 확장되고, 한 여인—루디아의 열린 마음 안에 그 평화가 심겨집니다. 하나님은 힘 있는 자의 궁궐이 아니라, 마음이 열린 이방 여인의 집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그렇게 약자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요 14:27)
그렇다면, 세상이 주는 평화는 무엇입니까?
예수님 당시에 로마 제국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 불리는 평화의 시대를 자랑했습니다.
200여 년간 전쟁이 없었고, 길이 닦이고, 물자가 오가고, 문명이 꽃피웠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누구를 위한 평화였을까요? 그것은 철저하게 로마의 군사력과 제국의 힘에 기반한 평화, 즉 복종과 침묵을 강요하는 강자의 평화였습니다. 폭력 위에 억지로 얹은 조용함, 불의와 착취를 덮어놓은 고요함이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울지도 말하지 못한 채 신음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대국들은 “세계 평화”를 외치며 전쟁을 시작합니다. “자유와 질서”를 말하면서 무기를 공급하고,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전쟁의 논리를 합리화합니다. 가자지구의 아이들이 죽는 것도, 우크라이나의 도시들이 무너지는 것도, 그 논리 안에서는 ‘불가피한 희생’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 한 사람, 한 아이, 한 생명이 결코 사라져도 좋은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고, 이주민들이 차별받고, 소수자들이 침묵 속에 사라집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말합니다. “괜찮다. 사회가 돌아가려면 어쩔 수 없다.” 이 또한 세상이 말하는 평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다릅니다. 그것은 아무도 배제되지 않고, 누구도 도구화되지 않는 평화입니다. 강자가 지배하는 평화가 아니라, 작고 약한 자들이 중심이 되는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사랑에서 오며, 그 사랑은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의의 열매는 평화”라고요. 정의 없는 평화는 거짓입니다.
우리는 흔히 ‘문제없이 조용한 상태’를 평화라고 여기지만, 그것은 때로 참혹한 불의의 침묵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눈물 흘리는 자 곁에 머무는 것에서 시작되며,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짊어질 때 열리는 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길을 스스로 걸어가셨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이 만든 질서와 평화가 얼마나 거짓되고 폭력적인지를 온몸으로 드러낸 사건입니다. 그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은 끝내 평화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평화는 사랑과 정의,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거짓 평화의 시대 속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받아야 할 선물이자,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입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단지 ‘내 마음이 평안하다’는 정도로 멈추지 않습니다. 그 평화는 반드시 이웃에게 흘러가야 하며, 세상의 구조와 맞서야 하며,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첫째, 개인에게 주어진 평화의 소명
우리 안에 머무시는 하나님, 우리 안에 평화를 심으신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먼저 ‘관계의 평화를 회복하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합시다. 가족과 교우 사이에서 오랫동안 풀지 못한 오해가 있다면 그 단절을 풀기 위한 용기를 내야 합니다. 평화는 감정이 아니라 결단입니다. 먼저 손 내밀고, 먼저 말을 걸고, 먼저 다가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방식이기도 합니다.
둘째, 교회가 함께 이루어야 할 평화의 공동체
교회는 본질적으로 평화의 학교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예수님의 평화를 배워야 합니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법, 힘의 언어가 아닌 공감의 언어를 말하는 법, 소리를 높이기보다 귀를 기울이는 법을 우리는 교회에서 훈련받아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논리와 달라야 합니다. 경쟁이 아니라 연대, 성장이 아니라 섬김, 힘의 논리가 아니라 생명의 논리를 몸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답다는 것은, 바로 평화롭게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때입니다.
셋째, 세상을 향한 평화의 연대와 실천
하나님이 주신 평화는 우리 마음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
가자지구의 어린이들, 우크라이나의 어머니들, 공장에서 떨어져 죽은 청년들, 새벽에 일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주노동자들. 그들의 삶에 침묵하지 않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을 위한 제도와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곧 우리가 감당해야 할 평화의 연대입니다. 기도하고, 기록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그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평화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이 세상의 어떤 힘보다 더 깊고 단단한 평화입니다. 그것은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며,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합니다. 오늘도 여전히 이 세상은 ‘평화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합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평화”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평화는 작고 연약한 이들과 함께하는 평화이며, 우리 모두가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평화입니다. 그러니 먼저 평화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함께 평화의 길을 만드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며 우리 안에 이루실 평화를 믿으며 힘차게 살아가십시오. 아멘.
거룩하신 하나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화가 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름을 기억하게 하소서.
폭풍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하며 누리는 깊은 평화, 관계가 회복되고, 사랑이 흘러넘치는 평화를 우리 삶의 중심에 두게 하소서.
우리 안에 머무시는 성령의 평화가 가정으로, 교회로, 세상으로 흘러가게 하시고, 작고 연약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평화의 길을 걷게 하소서.
먼저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끝내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