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후 5주 / 5.18민주화운동 기념주일(20250518)
경계를 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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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8:1-5
사도행전 11:1-18
요한복음 13:31-35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이 찾아왔습니다.
푸르고 생명력 넘치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지만, 우리 민족의 가슴 한편에는 잊지 못할 5월의 눈물, 빛고을 광주가 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참극은 단지 한 지역의 고통이 아니라, 민주와 인권, 자유를 향한 외침이 짓밟힌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그날 이후에도 여전히 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 앞에서는 적어도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까지도 누군가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이 사건을 왜곡합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과 연관지으며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덧입히는 말들을 퍼뜨리고, 진실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가족을 잃고도 침묵을 강요당했던 이들의 고통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이 물음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아픔을 우리는 어떻게 위로하고 보듬을 것인가?”
치유는 과거를 지우거나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기억을 짊어지고 함께 걸어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바로 그 연대의 길을 가리킵니다.
사랑은 경계를 넘고, 상처를 넘어 서로 연대하게 하고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다다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어진 본문들은 모두 사랑의 결과로서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줍니다.
경계를 넘어 서로의 관계를 회복할 때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행 11:1-18)
사도행전 11장은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방문했던 일을 유대 교인들에게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당시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과 식탁을 함께 한 베드로의 행동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비난의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깊은 기도의 순간을 들려줍니다.
그는 환상 가운데 하늘에서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율법상 먹을 수 없다고 여겨졌던 온갖 짐승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베드로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속되거나 부정한 것은 입에 대본 적도 없습니다.”
그가 말한 “절대로(μηδαμῶς)”는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지켜온 신앙적 경계와 정체성을 붙든 몸부림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에게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은, 율법과 전통을 넘어선, 마치 믿음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이 말씀은 세 번이나 반복되었고, 베드로는 그제야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사람의 회심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민족과 종교, 율법과 전통의 경계를 넘어 흘러가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늘 경계를 넘어섭니다.
막혀 있던 담장을 허물고, 나와 너를 가르던 울타리를 걷어냅니다.
그 사랑 앞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이끄시는 사랑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누군가를 향해 ‘절대로’라고 말하던 입술을 다시 여는 훈련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우리가 감히 속되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요 13:31-35)
요한복음 13장은 예수님의 고별 설교가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그 중심에는 단 하나의 명령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이 주어진 순간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려 방을 나간 직후였습니다.
배신과 고난, 십자가가 눈앞에 다가온 그때, 예수님은 복수가 아닌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그 사랑은 원수까지 품고, 배반자에게도 빵을 건네며, 타인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새 계명’입니다. 율법을 넘어서는 새 윤리, 새 인간 관계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랑 대신 혐오를, 진실 대신 왜곡을, 복음의 이름으로 차별을 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일부 보수 기독교 안에는 광주민주화운동조차 북한과 연계시키는 왜곡된 신념이 여전히 퍼져 있습니다. 이는 고통당한 이들의 삶을 조롱하는 일이자, 예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더 슬픈 것은, 우리가 원수도 아닌 가장 가까운 이들조차 사랑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교우,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 함께 일하는 이들조차도 마음으로 품지 못하고, 미움과 불편한 감정 속에 살아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미워하는 대상뿐 아니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신앙의 실천입니다. 유다가 방을 나간 그 순간에도 사랑을 명하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품지 못하고, 역사 속의 아픔을 외면하며, 믿음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밀어낸다면,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새 하늘과 새 땅(시편 148:1~5)
시편 148편은 모든 피조물이 주님을 찬양하라고 노래합니다.
하늘과 땅, 바람과 물, 사람과 짐승, 왕과 백성, 노인과 아이들… 이 모든 존재가 찬양의 자리로 부름을 받습니다.
찬양은 존재 자체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행위입니다. 사랑은 찬양의 뿌리이고, 찬양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성서일과 중에는 요한계시록 21장 1~6절의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된 나라(계 21:5)’입니다.
“와서 주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에 따라서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곳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단지, 음악적인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라고 믿고 있던 것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놓고, 원수를 위해 생명까지도 내어주는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살고자 하며, 그 사랑의 길을 따르는 삶 자체가 곧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입니다.
찬양은 노래나 악기의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결단, 이웃의 고통에 응답하려는 마음, 억눌린 자들의 편에 서는 용기, 그리고 ‘절대로’라고 여겼던 경계를 허물고 사랑으로 나아가는 실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멀리 있는 미래가 아니라, 오늘 우리 안에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삶입니다. 우리가 그 삶을 살아낼 때, 우리의 존재와 행동, 침묵과 고백, 눈물과 기도가 모두 찬양이 됩니다. 그 찬양이야말로, 온 피조물이 하나 되어 하나님을 기뻐하는, 그 날을 미리 살아내는 증거입니다.
■ 경계를 넘는 사랑
오늘 주신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랑은 경계를 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우리가 속되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내 생각과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서야 합니다. 머무르던 자리에서 벗어나, 장성한 신앙인으로 우뚝 서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 사랑은 먼 곳의 이상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입니다.
가족, 교우, 동료,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품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경계를 넘을 수도, 그 너머의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절대로’라며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을 다시 여십시오. 혐오 대신 사랑을, 왜곡 대신 진실을, 무관심 대신 연대를 선택하십시오. 바로 그때,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징표는 멀리 있는 환상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깃든 사랑과 용서, 그리고 함께 아파하며 살아내는 매일의 삶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의 찬양입니다.
그러니, 사랑으로 경계를 넘으십시오.
그리하여 지금, 여기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살아가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주님의 말씀 앞에 서게 하시고,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의 길로 초대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말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좁은 신념과 오래된 관습을 넘어서게 하소서.
십자가 앞에서조차 사랑을 명하신 주님의 새 계명을 기억하며,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고, 역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며, 아파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지금 여기에서부터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찬양이 되며,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