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20250420)
지금 여기서, 부활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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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8:14-24
고린도전서 15:19-26
누가복음 24:1-12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 모두의 부활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난 사순절 기간 동안 ‘죽음과 부활’에 대한 묵상을 할 때 반복해서 김민기의 ‘친구’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노래 가사 중에서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라는 가사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단순한 육체의 죽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차원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기도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며,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자들입니다. 성경에서의 죽음은 단순힌 육체적인 죽음뿐 아니라 영적인 죽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신 죽음은 마음이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마음에는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시선과 모독과 교만과 어리석음(막 21:21,22)’것들이 가득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미움, 체념, 경쟁, 두려움, 게으름, 이기적인 마음’같은 것들도 넣을 수 있겠지요.
이런 마음이 가득한 것이 죽은 것이요, 이런 마음을 극복한 것이 산 것이 아닐까요?
■ 타나토스(Thanatos, θάνατος), 죽음이란?
타나토스(θάνατος)는 단순한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이며, 존재의 해체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모든 인간에게 미친 사망의 권세’로 봤습니다(롬 5:12). 결국 타나토스는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 자체인 것입니다.
타나토스는 또한 지속되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고립, 자기중심성, 비인간화된 삶, 공감의 상실, 이 모든 것이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음을 최종적으로 멸망해야 할 원수(ἐχθρός, echthros)로 선포합니다. 이 말은 단지 마지막 날의 사건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 속에서도 타나토스와 싸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
그러나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타나토스는 이제 최종적인 언어가 아닙니다.
죽음을 죽이신 부활사건 앞에서 죽음은 멸망당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고린도전서 15장 2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맨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 여기서 죽음이 바로 ‘타나토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찬가는 시편의 말씀을 통해서 봅니다. 시편 118편 17절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겠다.” 이 말씀을 통해서 사망의 그늘에서 죽었던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신 이유는 주님의 일을 선포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은 이들은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가리고 있습니다. 가릴 뿐 아니라 망령되게 하니 여전히 죽어있는 자들입니다.
■ 마음을 바꾼다면, 그것이 부활입니다
육체는 살아있어도 마음이 죽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욕심과 미움과 분노,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은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타나토스’는 죽음이라는 뜻도 있지만 ‘권세’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에 죽음의 권세 아래에 있던 것들을 바꾼다면, 그래서 탐욕에서 사랑으로, 증오에서 용서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두려움에서 용기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마음을 바꾼다면, 그것이 오늘 여기에서의 부활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용서하지 못하던 이를 용서하시고, 미움의 언어를 버리고 화해의 말을 하시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내어드리십시오. 이 모든 것이 부활의 징표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꾸는 것, 증오에서 용서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두려움에서 용기로 향하는 것, 이 모든 변화는 ‘부활의 표징’이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시는 사건입니다. 아침마다, 매일매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는(엡 2:1)’ 부활의 주님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 자체가 부활의 삶입니다.
■ 부활은 현재형 사건
여러분, 부활은 미래형이 아닙니다.
부활은 ‘매일 죽음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과 부활, 재림은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만 강조하게 되면 현재의 삶과 신앙은 실종되고 미래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신앙으로 변질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현재형 사건입니다.
죄와 탐욕으로 죽었던 내 마음이 눈이 열리는 사건이 일어나고,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게 되며,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던 이웃의 아픔이 보이고, 내가 살아있음이 내가 알지 못하는 그림자노동에 있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순간순간들이 모두 부활의 삶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죽은 듯 살지 말고, 살아 있는 자처럼 사십시오.
오늘, 지금, 여기서, 부활의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그 삶으로, 누군가의 어둠 속에 작은 빛이 되어 주십시오.
우리에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하신 부활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지금 여기에서 부활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부정적인 마음들을 이겨내어, 생명과 사랑, 평화의 길로 나아가게 하소서. 부활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