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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4주]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 관리자
  • 2025-03-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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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4주 (20250330)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제목을 누르시면 설교실황녹음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5:9-12
고린도후서 5:16-21
누가복음 15:1~3, 11b-32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 성서일과의 주제는 ‘화해’입니다. ‘화해’는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라는 책에서, 초연결 세계에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저마다 격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코로나 19이후, ‘외로운 세기’가 시작되었으며, 이 외로움은 관계의 단절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많은 오아시스




현재 일본인 사이토 씨는 여성 재소자 시설인 도치기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교도소를 선택한 수 많은 일본 노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은 지난 20년 동안 65세 이상의 고령층 범죄 건수가 4배로 급증했습니다. 이들이 5년 내에 재범을 저지르는 확률은 70%였는데 원인은 관계의 단절로 인한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상당수의 노령 여성이 사회적 고립감을 피하기 위해 감옥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감옥은 “항상 주변에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제소자는 교도소를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많은 오아시스’로 묘사했습니다. 친구뿐 아니라 식사도 제 때 나오고 도움과 돌봄까지 제공되는 안식처라는 것입니다.
 

■ 외로운 세기


그런데 문제는 여러 세대들 중에서 가장 외로운 집단은 젊은 층이라는 것입니다.
OECD국가에서 코로나 19이후, 외롭다고 응답한 15세 이상의 인구비율이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그런데 연구 결과 외로움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우리 몸에 해를 입혔고, 알코올 중독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만보다 2배나 해롭고, 담배를 매일 15개비씩 피우는 것만큼이나 해로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외로움은 세계적으로 극단주의를 부채질하여 우파 포퓰리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폭력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외로움의 시대를 가져온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였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인종주의 공격과 혐오발언, 음모론 등이 급속히 유통되면서 전통적인 소통 방식을 잃어버린 이들은 자신을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시민의 한 사람이 아닌 소비자로, 돕는 사람이 아닌 투쟁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한 것입니다.

‘외로운 세기’는 관계의 단절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초연결 사회지만, 그 속에서도 고립과 외로움이 팽배합니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이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할 것입니다.
 

■ 성경에서의 죄와 화해


성경에서의 죄는 단순히 윤리적인 차원의 것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관계의 단절’이 근원적인 죄이고, 이것을 회복하는 것이 화해입니다.
성경에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후, 먼저 인간이 하나님을 피해 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서로 누구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합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인간은 이제 땅을 일궈야만 열매를 먹을 수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관계들이 단절되니 자기 안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분열되었습니다. 자아분열, 즉 자신과 자신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외롭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의 화해는 단절된 하나님, 이웃, 자연,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 성서일과의 주제 – ‘화해’


여호수아에는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그 땅의 소출을 먹기 시작하자 만나도 그쳤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사는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만나가 그쳤다는 것은 노예생활이 그쳤다는 것이고, 그 땅의 소출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 섰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누가복음은 지난 해 시월, 종교개혁의 달에 다루었던 ‘잃어버린 아들’에 관한 이야깁니다. 화해는 돌아옴과 용서의 상호작용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는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며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이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과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서일과의 주제는 ‘화해’입니다.
외로움의 시대,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화해’라는 주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서신서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해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16절에 “이제부터 우리는 육신의 잣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은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된 순간부터, 거듭난 순간부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순간부터, 새로운 피조물이 된 순간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단한 순간부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제 ‘육신의 잣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육신의 잣대’를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로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기준점’을 사람의 기준인 돈이나 권력이나 외모가 아니라 ‘캐논’즉,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랑의 안경을 끼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를 ‘사람들의 기준’을 채우는 것으로 삼는 이들이 있습니다.
초보신앙일 때에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기준, 세상의 기준’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기준, 세상의 기준은 돈과 권력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혹은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폭력적인 수단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각자도생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이 목적이 아니고, 과정도 중요하고, 비폭력투쟁이요, 여전히 더불어 살아갈 만한 세상임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새 사람답게,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아가십시오.
 

■ 화해의 직분을 맡겨주심


18절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체적으로 먼저 화해의 길을 열어가셨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실 때 예수님을 내세우셔서 하셨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한 이들을 불러 화해의 직분을 주신 맡겨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직분은 ‘화해자’입니다. 교회에는 편의상 직제가 있지만 모두의 직분은 ‘화해자’입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이 주신 ‘화해자’의 직분을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화해자의 직분’을 ‘섬김의 직무’로 해석했습니다.
탁월한 해석이라고 봅니다.
섬김의 도를 보여주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원수처럼 살아가던 우리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해자로 산다는 것은 ‘섬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군가에게 군림하지 마시고 섬기는 삶을 사십시오.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친구들 간에, 교우들끼리, 더 나아가서 이웃, 자연을 섬기며 사십시오. 섬김을 통해서 갈라졌던 관계들이 회복되고, 이런 회복은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을 열어갈 것입니다. 서로서로 섬기십시오. 누구 위에 군림하지 마십시오.
 

■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의 직분을 잘 감당하려면 ‘그리스도 안에서’해야 합니다.
서신서 17, 21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바입니다. 교회는 화해공동체입니다. 저마다 외로운 사람들이 함께 먹고 대화하는 친교공동체로서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돕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외로운 이들의 오아시스가 되어야 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성공회주교였던 데즈먼드 투투는 <용서없이 미래 없다>는 책에서 “화해는 단 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매일 선택하는 과정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단 한 번의 화해가 아니라 매일매일 하나님, 이웃, 자연, 자신과 화해하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복됩니다.

사람들의 기준이나 내 생각을 따르면, 눈꼴사납고 기분 나빠서 섬기기 싫은 사람, 화해하기 싫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외로우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외로워집니다. 하나님이, 자연이, 이웃이, 내가 외로워진 곳, 그곳이 지옥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한 형제자매’요 모두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피조물’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면, 우리는 천국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남교회가 외로운 이들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각자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자의 직분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거둠 기도]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하시는 주님, 우리에게 새 사람을 입게 하시고 화해자의 직분을 주셨으니 그 직분을 소중히 여기게 하옵소서. 분열과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화해자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나님과 우리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어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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