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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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2주] 나는 내 길을 가야하겠다

  • 관리자
  • 2025-03-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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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2주 (20250316)
나는 내 길을 가야하겠다
제목을 누르시면 설교실황 mp3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창세기 15:1~12
빌립보서 3:17~4:1
누가복음 13:31~45


사순절 둘째주일입니다.
계절의 봄은 완연한데, 역사는 아직 깊은 겨울공화국인 듯 혼란스럽습니다.
이 혼란의 시기에도 마음 빼앗기지 마십시오.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온갖 사이비들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광장에서 혐오와 차별과 폭력의 언어를 뱉어내는 이들,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르고, 나라를 구한다고 기도해도 그들은 사이비 광신도일 뿐입니다. 진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방식으로 자기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의한 자들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고, 때론 채찍도 드시고, 험한 욕설도 마다하지 않으셨지만, 그 안에는 자녀들의 그릇된 행동을 바로 잡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은 깊은 연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동방식은 철저하게 ‘비폭력투쟁’의 방식이었습니다. “나는 내 길을 가야겠다”하신 예수님은 그 길을 가시기 위해 무력이나 세몰이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요량이었다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의 유혹 세 가지를 모두 받아들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거기에 참 생명이 있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겨자씨만큼만 이해해도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사순 절기에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시어, 삶의 변화를 이뤄 가시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창세기 15:1~12)


아브람은 ‘아브라함’의 개명 전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6절 말씀에 보면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라고 증언하고,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해가 질 무렵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가운데,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고 합니다.
믿음이 사람 아브람을 ‘어둠과 공포가 짓눌렀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언약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현가능성은 아주 희박합니다. 그러나 이미 창세기 12장에서 “너의 땅의 친척과 아버지 집에서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1)”고 하셨고, 본문에서 다시 한 번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하셨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땅을 소유하는 방법은 ‘전쟁’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과의 언약체결을 위해 암송아지, 암염소, 숫양, 비둘기를 바쳤지만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고대근동의 언약 의식에 따라 제물들을 ‘몸통 가운데를 쪼개어’드립니다. 의미는, ‘만약 네가 이 언약을 어기면, 이 동물들처럼 쪼개어지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만,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어둠과 공포’에 짓눌림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는 바대로 아브람은 그 길을 갔습니다. 아브람을 짓누르는 ‘어둠과 공포’를 이겨냈기에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빌3:17~4:1)



2025년 대한민국에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들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수많은 일들이 백주대낮에 광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행세하며 교회를 사유화합니다. 제법 유명세를 누리는 목사들은 헛소리로 시류에 편승합니다.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며 온갖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을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기들의 배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돈은 땅의 것인데, 이것만 생각하면서 자기들의 행동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짓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짓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이들의 비판에는 관심도 없고 맹신도가 열광하는 것을 자신들의 영광으로 압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19)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속히 이뤄지길 바랍니다. 아멘.
바울은 자신을 본받아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들 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라고 합니다.
주님 안에 굳건히 서려면, 주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야하고, 주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려면 천천히,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사순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들이 가는 멸망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부정적인 행동을 비판했던 세례 요한도 참수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죽인 후 한 숨 돌리나 싶었는데, 예수가 등장하니 예수도 죽이려고 합니다. 

예수님에게 그 위험을 알려주는 이들은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라!”고 하며,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고 하십니다.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야할 길을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헤롯의 행태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소환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혹은 예루살렘’은 유대인 전체를 가리키고, 그들의 중심인 ‘성전’과 ‘성전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그 한 축에는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34).”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득세하는 2025년 대한민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통곡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남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친구가 되길 원하며, 노력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친구가 되는 교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친구가 되시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나는 내 길을 가야하겠다


여러분, 내 길을 가려면 ‘길’을 찾아야 합니다. 
‘길’은 ‘도’입니다. 동양에서 ‘도’는 절대자, 진리, 하나님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지하철역이나 길에서 혹시 “도를 아십니까?”하며 접근하는 이들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그런 이들은 백발백중 ‘도’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도덕경 1장에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고, 이거다 저거다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적인 문장으로 바꾸면 ‘하나님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분이시며, 하나님은 이것이다 저것이다 규정할 수 없는 신비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길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 길을 가느냐?”고 하십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순례자’라고 합니다. 순례자는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순례자는 길 위에서 자신의 근본과 소명과 한계를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찾아가는 사람,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순례자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 위에 서있습니까?
시편 1편 1절에 ‘복 있은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은 누구나 길 위에 서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서 있는 그 길이 죄인의 길인지 아닌지 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 있다면 복 없는 사람이요,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았다면 복 있는 사람입니다. 2025년 대한민국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죄인의 길에 서 있는 지지리도 복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복 있는 길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처럼, 예수님처럼 “나는 내 길을 가야하겠다”는 마음으로 힘차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길을 걷다보면


그런데 그 길은 평탄한 대로가 아니라 좁은 길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아브람은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알았기에 어둠과 공포 속에서 갈등했던 것이고, 예수님도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알았기에 “나는 내 길을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고난의 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묵상하며 여러분이 걸어가야 할 길을 찾으시는 귀한 절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는 내 길을 가야하겠다!”하는 담대한 마음을 품고 힘차게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주님,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는 그 길을 걸어가야하겠다”며 그 길을 걸어가신 주님, 우리도 주님을 따라 그 길을 걸어가게 하시고, 나만의 길을 찾아 힘차게 그 길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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