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일곱 번째 주일(20250223)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창세기 45:3-11
고린도전서 15:35-38
누가복음 6:27-38
이제 곧 완연한 봄이 올까요?
대동강물이 녹는다는 우수가 지난 후에도 꽃샘추위가 이어지니 겨울이 길게 느껴집니다.
겨울만 긴 것이 아니라, 트럼프 당선이후 급변하는 세계의 정치경제적 상황,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비상계엄 이후 탄핵정국에서 혼란 속에 빠진 대한민국과 그 사이 극우보수기독교인들의 행보로 인해 늪에 빠진 한국교회, 모든 것이 깊은 겨울 같아서 더욱더 봄이 기다려집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대한민국, 지구촌에도 봄이 오길 바라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진달래 필 즈음이면 밭을 갈고, 모종을 준비하고, 파종할 준비를 합니다. 저도 올 봄에는 양재 나무시장에 가서 포도나무 묘목 두 그루를 사서 심어볼까 싶습니다. 지난 해 여름, 강원도 갑천 다녀오는 길에 포도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동갑내기 귀농 부부를 만났는데, 묘목을 심고 3년이 되었다는 데 포도송이가 보통 실한 것이 아닙니다. 노지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식목일 즈음에 과실수 묘목을 사서 몇 그루 심어볼까 하는 생각은 그때로 기인합니다.
씨앗은 뿌려야 거두고, 나무는 심어야 열매를 딸 수 있습니다.
요즘 도시인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사서 먹습니다만, 작은 화분에라도 씨앗을 뿌려보고, 나무도 심어보는 일은 생명감수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해도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분들이 자부심을 잃지 않고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 삶의 기본이 되는 먹을거리의 공급도 지속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씨앗이나 나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사도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농사가 그렇듯이 심고, 가꾸지만, 원하는 대로 거둬지지 않습니다. 때론 기대에 못 미치기도 하고, 때론 기대를 능가합니다.
저는 시편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는 말씀이 우리 모든 삶에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씨 뿌린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입니다.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거두고, 울며 씨 뿌린 자의 수고를 빼앗는 것은 불의한 일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적에 일하고 많이 거두는 것을 능력이라고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며 사는 이들은 ‘일한 만큼, 수고한 만큼’ 거두는 것을 축복이라고 여기고 사는 것이고, 때론 땀 흘리고 수고한 만큼 거두지 못했어도 감사하는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여러분이 수고하고 땀 흘리는 것이 선한 것이길 바라고, 그것이 기대이상의 귀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셉의 일대기는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 아버지 야곱에게 총애를 받아 형제들의 시기를 샀습니다. 특히 그의 꿈은 형제들에게 더욱더 미움을 받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려다가 그를 노예로 팔아버렸고,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갑니다. 이집트에서 보디발의 집에서 일하게 되었으나,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다른 죄수들의 꿈을 해석해 주다가 파라오의 꿈을 해석하며 이집트의 총리가 됩니다. 총리가 된 후에, 기근에 대비하는 정책을 세우고, 실재로 기근이 심해지자 요셉의 형제들이 이집트로 곡식을 구하러 옵니다. 요셉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형제들을 시험한 후에 자신을 밝히고 화해합니다.
■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창 45:3-11)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자신을 밝히고 화해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자기를 팔아넘긴 형들을 만났을 때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창 45:5)”라고 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팔아버려 노예가 되었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갇혔을 때, 불평과 불만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려 애를 썼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으니, 그 씨앗을 마음의 밭에 뿌리니 그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를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형들을 만났을 때에도 화해의 손을 내밉니다. 노예생활을 하다가 감옥으로, 감옥에서 이집트의 2인자가 된 일은 상상조차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된 후, 기근으로 형제들이 찾아온 이후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고백하게 되었고, 그래서 형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라는 고백은 아무 것도 하지 말하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는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이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매사를 성실하게 하는 것이고, 그때 하나님은 그를 도와 축복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복을 누리십시오.
서신서의 말씀은 ‘부활’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땅에 뿌린 씨앗이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흙을 만나 부드러워진 씨앗이 본래의 모습을 버리고 변화되는 과정을 바울은 ‘죽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야만,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밀이든 어떤 곡식이든,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하면 됩니다. 그 다음 일은 땅에 맡기는 것입니다. 잘 뿌려진 씨앗은 자기 안에 품은 고유한 생명을 싹 틔웁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씨앗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썩지 않은 것, 영원한 생명이 깃들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싹 트려면, 부활하려면 ‘죽음’이라는 과정을 겪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썩을 것으로 심어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나고, 약한 것으로 심어 강한 것으로 살아나고, 육신의 몸을 심어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다만 씨를 뿌리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좋은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는 우리가 뿌려야할 씨앗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이 씨앗을 뿌릴 때 어떤 열매가 맺을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씨앗을 뿌릴 때,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선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뿌려야할 씨앗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 사랑의 구체적인 행동은 이렇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 해주고, 저주하는 자를 축복해 주고, 모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네 뺨을 치는 이들 사람에게는 다른 뺨도 돌려대고,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며,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능한 일입니까? 완벽하게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아주 간혹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뿐입니다. 완벽하지 못해도, 간혹이라도 원수 사랑이 씨앗을 뿌리십시오.
둘째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씨앗입니다.
이것은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공감하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합니다. 나치독일의 고위 관료로 유대인을 살해했던 주요 실행자 중의 한 명인 아이히만은 공감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지내다, 1960년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1962년에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았으며, 다시 그런 임무가 주어져도 충실하게 수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공감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홀로코스트의 주범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공감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셋째로, 자비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해 주었던 마음은 자비로운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36절에서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남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일에 열심을 내기보다 자비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성서일과를 통하여 우리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말씀하십니다. 한 주간 어진 사람, 자비로운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거둠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 원수도 사랑하는 사랑의 씨앗,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공감의 씨앗,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자비의 씨앗을 뿌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