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여섯 번째 주일(20250216)
복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제목을 누르시면 음성설교실황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시편 1:1-6
고린도전서 15:12-20
누가복음 6:17-26

행복은 주관적이고 다면적인 개념입니다.
학문적으로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의 균형으로 봅니다. 행복은 개인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긍정심리학’이 발달했습니다. 철학에서는 행복을 쾌락과 고통의 균형으로 봅니다.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줄이는 것이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회학적인 관점에서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봅니다. 상대적인 박탈감을 적게 느낄수록 행복하다고 봅니다. 불교에서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만큼 행복하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평안과 만족함을 행복이라고 합니다.
오늘 날에는 ‘마음 챙김’을 행복의 열쇠라고 합니다.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고, 과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행복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맞는 이야기지만, 행복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한 이후, 개인이나 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행복을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지나침으로부터 발생하는 부작용을 ‘행복과잉’ 혹은 ‘긍정과잉’이라고 합니다. 지나치다는 것입니다.
행복도 긍정도 너무 지나치다보니,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 절망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입니다. 지나친 행복추구는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무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도 필요한 것인데 이것을 무시하고 긍정적인 감정만 강조하면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 행복을 물질적인 성취로 생각하면 물질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산에 가면 어떤 분들은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데만 열심을 내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산을 이루고 있는 나무나 동물이나 새, 꽃들이 주는 아름다움은 보지 못합니다. 저는 행복은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릴 때,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더 큽니다. 여행의 즐거움도 과정의 즐거움이 없다면 밋밋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행복을 강요하고, 긍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참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지혜를 이번 주 성서일과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시편에서 제시하는 복 있는 사람에 관한 말씀입니다.
1절에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은 복 있다고 합니다.
복이란, ‘물질적’인 개념이 아니라 선한 길에 서있으며, 자기를 낮추어 겸손한 삶을 사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 많은 이들이 악인의 꾀에 넘어가 자기가 서 있는 길이 죄인의 길인 줄도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죄짓는 줄도 모르니 회개할 기회도 없는 것입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악인의 꾀를 따르는 사람, 그런 사람은 지지리도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문학적인 독서를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2절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복 있다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게 됩니다.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알게 되니,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은 시간을 정해서 하시면 좋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나 마감하는 시간이 가장 좋습니다. 성경, 마카 펜, 필기구, 노트를 준비합니다. 마음에 새겨야할 말씀에 마카 펜으로 밑줄을 긋고, 노트에 필사를 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씁니다. 이런 일을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생각이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면 삶이 달라집니다. 성경이 힘들면 지혜를 담은 도서도 좋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은 여러분의 삶을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묵상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복된 시간인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님의 부활을 믿는 이들은 복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것과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사도 바울이 선포하는 복음도, 우리의 믿음도 헛된 것이 됩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 그것이 복입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이를 믿는 신앙을 부활신앙이라 하는데, 이것을 믿는 이들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복음서의 말씀에서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은 마태복음의 산상설교와 비교하여 평지설교라고 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이 온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자신들의 병도 고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로 나아와 예수님에게 손대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떤 분들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섞어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여, 물질적인 가난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 관한 말씀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누가복음에서의 가난한 사람은 문자 그대로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그래서 슬퍼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땅의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으십니다.
상을 창조하실 때에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귀하게 살아가길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노예생활을 하며 울부짖고 아우성치던 이들에게 응답하셨던 하나님은 여전히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퍼 우는 이들의 울부짖음과 아우성을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사람들, 지켜보시기에 구원해 줄 사람들이기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복 있다는 말씀은 가난 자체가 복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으로 인한 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2절 말씀에 “사람들이 너를 미워하고, 인자 때문에 너희를 배척하고, 욕하고,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고 내칠 때에는, 너희는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힘쓰다가, 옳은 일을 하다가 미움당하고, 배척당하고, 욕먹고, 악한 사람 취급당하는 이들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잘못 때문에 미움 당하고 배척당하고 욕먹는 것은 창피한 일이지 복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과거에 예언자들이 조상들에게 미움 당하고, 배척당하고, 욕먹고, 악한 사람 취급을 당했었다고 하십니다.
예레미야, 엘리야, 아모스, 이사야, 스가랴, 세례 요한 같은 예언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후 예수님도, 제자들도, 사도 바울도 그럴 것입니다. 이들 모두 당시의 권력자나 대중들에게 불편하고 도전적인 내용을 전했기에 박해와 미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행복은 주관적이고 다면적이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행복한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와 겹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도 따라 살 수 있지만, 어떤 이는 따라 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살아지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싶지 않았는데, 가난한 삶을 살아가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중에도 ‘복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복’으로 바꿔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옭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 지혜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터득할 수 있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를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여기까지 이르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복 있는 삶을 이미 살고 계신 여러분, 복을 전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거둠 기도]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 헛된 곳에서 복을 구하지 말게 하시고, 이미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 안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갖게 하옵소서. 복 있는 삶을 살아갈 뿐 아니라, 복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서로가 서로에게 복을 끼침으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