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다섯 번째 주일(20250209)
불완전한 나를 통하여
제목을 누르시면 음성설교실황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사야 6:1-8
고린도전서 15:1-11
누가복음 5:1-11
입춘 이후 ‘꽃샘추위’가 며칠 동안 기승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들 오는 봄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꽃샘추위가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주님의 손을 잡고 잘 이겨내시고, 힘찬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불완전한 존재
제주도에 살 때에, 봄이 오다가 입춘 이후에 꽃샘추위와 폭설이 기승을 부린 적이 있습니다.
입춘 즈음에 중산간 숲에서 활짝 피어난 변산바람꽃을 보았는데, 꽃샘추위에 어찌 되었나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추위를 무릅쓰고 가보았더니 피었던 꽃잎이 추위에 다 물러버렸고 상했고, 얼어버렸습니다. 예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그런데 완연한 봄이 되어 다른 꽃을 만나러 간 길에 얼어 터졌던 변산바람꽃은 어떤지 가보았습니다. 가서보니 얼어 터졌던 꽃들이었음에도 씨앗을 잘 맺었습니다. 꽃으로서는 예쁜 모습을 잃어버린 것은 꽃에게 치명적인 상처이었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앗을 잘 맺었으니 그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꽃으로서의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꽃잎과 이파리가 상하고 꺾였지만, 기어이 씨앗을 맺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간 것입니다. 그 꽃을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성서일과 시가서 시편 138편 6절에는 “낮은 자를 굽어보시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약성서 이사야 6장 5절에는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고린도전서 15장 8절에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 자와도 같은 나”, 누가복음 5장 8절에 “주님, 나에게서 떠나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이런 문장들이 있습니다. 낮은 자, 입술이 부정한 자, 팔삭둥이, 죄인 같은 단어들은 ‘불완전한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인간에 대한 정의 중에서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타자와 관계를 맺기도 하고, 자신의 불완전성을 알기에 교만을 벗어버리고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자각은 ‘완전하신 하나님’을 추구하게 합니다. 인간의 대한 정의 중에서 ‘호모 렐리기우스(종교적 인간)’가 있습니다. 이것 역시도 인간의 불완전성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니, 불완전함은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예언자의 활동시대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는 말로 연대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웃시야 왕은 기원전 8세기경에 활동한 유다 왕국의 왕입니다. 그는 아마샤의 아들로, 16살에 왕위에 올라서 52년 동안 예루살렘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잘 믿는 왕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여 주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그를 도우시어 모든 일이 잘되게 하셨습니다(역대하 26:7).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웃시야는 힘이 세지면서 교만해져서 망가지기 시작(역대하 26:16)했다고 성서는 밝힙니다. 급기야 제사장들이 해야 할 향 피우는 일을 제사장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나병이 걸렸고, 아들 요담의 섭정으로 통치를 이어가다 기원전 742년 죽었습니다.
역대기하 27장 2절에 웃시야가 죽고 아들 요담이 왕이 된 때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전히 백성은 썩어 있었다.’고 합니다.
웃시야가 죽던 해에 주님을 만난 이사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5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는데(5)”
이사야도 백성들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썩어있습니다. 부정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불완전한 존재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들을 불러 죄를 사해주시고 “내가 누구를 부를까?” 자문하시는 것입니다, 이 독백과도 같은 하나님의 소리는 세미한 음성으로 죄 사함을 받은 이들만 들을 수 있는 음성입니다. 이사야는 주님의 독백을 듣고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응답합니다.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입술이 부정한 불완전한 존재였지만, 하나님이 그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르심에 응답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큰 역사를 이루어가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런 교훈을 받습니다.
첫째, 자기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기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한 자’라는 자각이 있었습니다. 자각이 있으니 ‘고백’을 했고, 고백을 하니 하나님이 씻어주신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고백하지 않는 죄까지 찾아서 씻어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인식할 때 비로소 가능성이 열립니다. 죄에 대해 민감하십시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씻어주시고, 그를 통해 큰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 되십시오.
둘째, ‘독백 같은 주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오늘 날에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눈을 떠야 보이고, 마음의 귀가 열려야 들립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저마다의 골방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백 같은 세미한 음성을 듣고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단하는 분들 되길 바랍니다.
바울 신앙의 중심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게바에게, 12제자에게, 500성도에게, 야고보에게,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바울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자신을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요, 달이 차지 못하여 태어난 팔삭둥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비하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그 은혜로 말미암아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후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복음을 위해 누구보다도 더 열심을 냅니다. 팔삭둥이였던, 불완전한 존재였던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그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도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큰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불완전하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가난해서, 바빠서....하나님의 일을 못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불완전한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의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의 일입니다.
복음서 마다 조금의 차이가 있는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실 때에 있었던 잃입니다.
예수님이 게네사렛 호숫가에 계실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듭니다. 보니,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배는 시몬의 배였습니다. 그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가서 대중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배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고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은 지난 밤 허탕을 쳤고, 낮에는 물고기가 별로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어부’였으므로, 게네사렛 호수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심하지 않고 그물을 던지니, 물고기가 엄청나게 많이 잡혔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에 엎드려서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합니다.
성서일과와의 공통점은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부분입니다.
죄인은 결핍의 존재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을 때 ‘의심하지 않고’ 그물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믿음의 사람’은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압니다. 이사야도 바울도 베드로도 자신들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고 부르시어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도 저마다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장애물일 수도 없습니다. 내 모습 그대로 받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완벽하지 않다고, 불완전하다고 의기소침해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그래서 봄날 새순처럼 힘차게 일어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