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네 번째 주일(20250202)■■
생명아, 불어오너라
에스겔 37:1-10
고린도전서 15:35-44
누가복음 13:18-21
*설교제목이나 이곳을 누르시면 실황설교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제법 긴 설날 연휴를 보냈습니다.
이제 구정으로도 청사년 새해가 시작되었고, 내일은 ‘봄이 선다’는 ‘입춘’이기도합니다.
아직 겨울은 깊은 것 같지만, 이미 ‘봄’은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서울은 겨울이 깊지만, 이미 남도에는 동백이 한창이고, 동해 찬물내기 공원에는 노란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경기도 퇴촌에는 앉은부채, 제주도에는 겨울에 피는 비파, 동백을 위시하여 수선화, 변산바람꽃도 피었고, 양지바른 곳에는 코딱지풀, 냉이, 꽃다지 등이 한창일 것입니다. 이렇게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봄을 알리는 꽃들의 특징은 ‘작다’는 것입니다.
작지만, 언 땅을 녹이고 피어나고, 그들이 녹인 땅으로부터 봄은 온 누리에 퍼집니다.
작은 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할 이유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 “어떠한 모양이든지 악은 멀리 하십시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떠한 모양이든지’가 의미하는 바는 ‘사소한 것, 작은 것’이라는 뜻과 ‘악’의 모양은 ‘좋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이라면 작은 일이라고 소홀히 여기지 마시고 충성하십시오. 그렇게 살아갈 때, 작은 봄꽃들이 온 누리에 퍼지듯, 여러분의 삶도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실 때, 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는 ‘하나님 나라’는 이것이다, 저것이다 규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유는 상징의 언어를 통해서 표현됩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앗’을 상징합니다. ‘누룩’은 발효제로 변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같은 작은 것으로부터 오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씨앗이나 누룩은 개별적으로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씨앗을 흙을 만나야 하고, 누룩은 발효시킬 곡류를 만나야 합니다. 씨앗은 흙을 만나면 부드러워지고 마침내 싹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누룩이 곡류를 만나면 부풀어 부드러워지게 합니다.
겨울엔 땅이 얼어서 딱딱합니다.
딱딱한 땅 속에서는 씨앗이 있어도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언 땅이 녹으면서, 땅이 부드러워지면 비로소 씨앗도 부드러워지고, 싹이 트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노자는 “사람은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거칠어진다.”고 했습니다. 거칠고 단단한 것은 죽음의 벗이요, 부드러운 것은 삶의 벗이요, 생명의 벗입니다. 새해에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 마른 뼈들의 환상(겔 37:1-10)

에스겔은 유다가 멸망하여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갈 때, 함께 포로로 끌려갔던 예언자입니다. 조국이 망하고 타지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상황은 마치 ‘마른 뼈’와도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가 환상을 봅니다.
‘어느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니 마른 뼈에 힘줄이 뻗치고, 살이 생기고, 살 위로 살갗이 생기니 사방으로부터 생기가 불어와 그 사람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자 그들은 곧 살아나 제 발로 일어서 엄청나게 큰 군대를 이룹니다.’ 이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 유다가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이내 회복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환상에서 중요한 것은 ‘생기를 불어 넣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기운이 사방으로부터 불어왔다고 합니다. 마치, 봄바람이 사방으로부터 불어와 봄을 피우는 것과도 같습니다. 여러분, 삶이 골짜기의 마른 뼈처럼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힘줄도, 살도, 살갗도 있는데 생기가 없습니까? 생기를 불어 넣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함께 예배하는 모든 분들, 새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기가 가득한 삶을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은 부활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만 강조하다가 예수님의 죽음을 부정했습니다. 죽음이 없으니 부활도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죽음과 부활’은 한 짝이요, 이것은 마치 땅에 떨어진 씨앗이 죽어 새 생명을 피워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부활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씨앗, 죽은 사람, 첫 사람은 자연의 섭리를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자연에 속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죽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신령한 것으로 거듭납니다. ‘신령한 것’은 ‘부활’입니다. 이것을 둘째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때에는 겨자씨가 공중에 나는 새가 깃들만한 나무가 되는 것처럼, 누룩이 부풀게 하는 것처럼, 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처럼 놀랍고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씨앗’을 뿌려야만 이런 기적이 일어납니다.
고린도전서에서 그 씨앗은 ‘썩을 것, 자연적인 몸, 첫 사람’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씨앗’은 우리를 가리킵니다. 어디에 씨앗을 뿌리고 심습니까? ‘하나님의 밭’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바로 씨앗을 뿌리고 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신령한 것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소망입니다.
설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한 시인이 있습니다.
-새로 선다는 ‘설’ / 다시 선다는 ‘설’- 재미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 시를 읽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새해에는 우리나라가 다시 서길, 새해에는 우리 가정이 다시 서길, 새해에는 우리 교회가 다시 서길......새해에는 새롭게 서십시오.
‘입춘’이란, ‘봄이 선다.’는 뜻입니다.
‘봄’은 ‘보다’라는 뜻입니다. 볼 것이 많아서 봄이고, 볼 것이 많으니 까치발을 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설렘으로 하루를 맞이한다면, 하루하루가 아름다울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이런 말들을 새겼습니다.
‘아침에 남에게 악한 마음을 품으면 저녁에 악이 나를 찾아온다. 악한 마음은 악을 싹 틔우는 것이므로, 남을 해치기 전에 먼저 자신을 해친다.’ 그러므로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을 할 것인지를 붇고 생각하고 실천하라.’
아직은 봄이 먼 것처럼 느껴지고, 대한민국은 마치 골짜기에 흩어진 마른 뼈와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봄은 와 있고, 하나님께서는 씨앗을 뿌리는 이들을 통하여 사방에서 생기를 불어 넣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삶이 힘들 때, 변화가 필요할 때 이렇게 기도하면서 하루를 열어가십시오.
“생명아, 불어오너라. 생명아, 불어오너라. 생명아, 불어오너라.”
이런 기도를 드린 후에 ‘부드러운 마음으로, 작은 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충성하며’ 살아가시오,
이것이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방으로부터 생기를 불어 넣으실 것입니다. 그런 복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둠 기도]
온 생명을 주관하시는 주님, 겨울 한 복판에서,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에서, 봄을 기다리고 주님의 생기를 기다립니다. 우리에게 봄의 전령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희망의 메시지를 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의 삶이 씨앗을 뿌리는 삶이 되게 하시고, 부활의 주님께서 역사하시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수 있게 하옵소서. 작은 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게 하시고, 모든 이들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하게 하셔서 서로가 서로의 삶을 세워주는 귀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볼 것이 많은 봄에 우리의 삶도 입춘처럼 우뚝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