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두 번째 주일(202501219)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이사야 62:1-5
고린도전서 12:1-11
요한복음2:1-11
오늘은 주현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주현절 첫 번째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성령’이 임하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말씀이 들려왔으며, 이 말씀이 이사야서의 “너는 나의 것이라”는 말씀과 연결된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므로 모두 ‘성령 받은 사람들’이니,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것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힘차게 살아가십시오.
이번 주 성서일과 중에서 서신서는 ‘성령의 은사’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령은 하나지만, 성령의 은사는 각기 다릅니다. 다른 이유는 더불어 하나가 되어 유익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이들이 하나가되는 결혼예식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헵시바-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쁄라-결혼함’를 통하여 새로운 계약을 맺으시겠다는 말씀을 주십니다.
복음서에서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기적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성서일과 전체의 주제를 정리하면,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를 부어주심으로 우리를 계약백성으로 삼아주셨다는 것이요,
둘째, 계약백성의 삶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요한복음의 성서일과 ‘가나의 혼인잔치’를 통하여, 예배하시는 모든 분의 삶에 기쁨이 충만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 첫 번째 기적의 의미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첫 번째 행하신 기적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드시는 일로 시작됩니다. 여러 의미가 있지만, 예수님이 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잔치’처럼 즐거운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들은 잔칫날 초대를 받아 최상급의 포도주와 함께 준비된 만찬을 나누는 것과 같은 흥겨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포도주’는 성령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성령 받은 제자들을 보고 사람들이 “저들이 새포도주에 취했군(행 2:13).”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빈 항아리’는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포도주가 되기 전의 물’은 성령을 받았지만 아직 밍밍한 물처럼 신앙생활의 참 기쁨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하나 생각해 보겠습니다.
■ 빈 돌항아리

당시 이스라엘 집의 문 앞에 있는 돌항아리는 정결 예식에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을 강제하는 방식은 ‘예식화’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종교예식으로 정하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중동지방은 사막지대로 먼지가 많습니다. 먼지가 많은 곳이다 보니 밖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손과 발을 씻어야 위생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건강에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런 종교 규례는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사막지대에 사는 이들의 위생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삶의 양식, 이것이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규례화되고 종교화되는 것입니다.
당시 규례에 따르면, 항아리에는 언제나 물이 채워져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혹시라도 지쳐 돌아왔을 때 귀찮아서 손을 씻지 않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항아리가 비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혼인 잔치에는 많은 손님들이 오는데 항아리가 비어있었다는 것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평상시에는 지키지 않더라도 손님이 오시거나 특별한 행사가 열리면 물을 채웠을 법도 한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잔치에 참여한 손님들에게도 ‘항아리가 비어있었다는 것’은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항아리가 비어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일상에서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규례’가 소홀히 여겨지거나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오늘날에도 물이 채워져 있어야 할 우리의 돌항아리도 비어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심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면 물이 없는 돌항아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주일예배도 드리지 않고, 헌금도 하지 않고, 봉사도 하지 않고, 말씀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기적의 삶을 바란다면, 비어있는 돌항아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항아리가 비어있으면 물이 없으면 포도주가 되는 기적도 없습니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어쩌면 물이 말라버린 빈 항아리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빈 돌항아리에 물을 채워야 합니다. 신앙인으로서의 기본이 되는 예배성수, 말씀묵상, 기도생활, 헌금생활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뿐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성령을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때 물이 포도주로 변할 수 있는 기적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입니다.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복음서의 말씀을 잘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종이 그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물을 채우는 일은 예수님의 몫이 아니라 우리의 몫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까지도 주님의 일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울 생각도 하지 않고, 포도주만 떠먹기를 바라는 것은 허망한 욕심입니다.
예수님은 “물을 채우라!”말씀하십니다. 물은 위에서 말씀드린 것들입니다. 예배성수, 말씀묵상, 기도생활, 헌금생활이며,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물을 채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맹맹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으로 이어집니다. 포도주는 잔칫집에서 흥을 돋우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없어도 잔치를 할 수 있겠지만, 맨송맨송합니다. 그렇습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만납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예배성수, 말씀묵상, 기도생활, 헌금생활을 잘하시는 분들도 만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빈 돌항아리에 물을 채운 단계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최상급의 포도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복음’의 소식은 물 같은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통하여 포도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알려주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표상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은 하나님나라인데, 그 나라는 잔칫집처럼 흥겨운 곳이라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시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쁨이 없는 시대를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어떻게 종식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초대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채워야 합니다.” 그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빈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십시오.
주님께서 최상급의 포도주로 만들어 주실 것이고, 여러분은 그 포도주로 인해 잔치의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실 것입니다. 빈 돌항아리에 물을 길어 채우시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둠 기도]
우리의 평범한 삶을 기적의 삶으로 바꿔주시는 주님, 우리의 삶이 포도주의 기적을 만들어 낼만한 삶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빈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는 순종하여 물을 채우고, 주님께서는 그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님과 함께 기쁨의 잔치를 누리게 하옵소서. 포도주가 떨어진 시대는 항아리에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빈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