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 후 첫 번째 주일/ 20250112)
너는 나의 것이라
이사야 43:1-7
사도행전 8:14-17, 21-22
누가복음 3:15-17,21-22

이번 주 부터는 주현절입니다.
주현절은 ‘주님이 나타나신 절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축하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셨다(눅3:22)’는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은 ‘성령’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삼위 중 하나입니다.
삼위는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의 각기 다른 표현입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김민수 목사지만, 여러분은 저를 목사님이라고 부르고, 제 아이들은 아버지라고 부르고, 제 조카들은 삼촌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한 사람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언뜻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나이면서 셋이요,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라는 역설의 의미는 ‘세 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지만 하시는 일은 한결같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증언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에게로 올 수 없고(요 14:6),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그리스도에게 올 수 없고(요 6:44),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 요일 4:2-3).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오십니다(요 14:26, 15:26).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부 하나님이 이끌어주셨고, 성자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성령하면 ‘방언’을 떠올리고, 방언을 하지 못하면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방언은 성령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고, 그 방언조차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행 2:7,8).”라는 말씀을 통해서,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이들의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에서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갈 5:22,23).” 아예, 성령의 열매에 ‘방언’은 포함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왜 방언이 성령 받은 증거인 것처럼 회자될까요?
쉽기 때문입니다. 쉬울 뿐 아니라 드러내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냥, 입만 가지고 성령 충만한 척 할 수 있으니 참 쉽습니다.
그러므로 방언하시는 분들은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방언을 사용하기 때문에 분명한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남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결국 여러분은 허공에다 대고 말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고전 14:9).”
■ 성서일과의 공통점

이번 주 성서일과 중 복음서의 말씀은 주현절 첫째 주일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할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성령을 받으신 후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긴 했는데 아직 성령이 임하질 않아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성령이 임한 사건을 다룹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에는 ‘성령’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성령 받은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 위에 성령이 내려오니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이 말씀이 이사야서의 말씀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너를 사랑하였으므로’하는 말씀은 복음서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라는 말씀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일과의 공통 단어는 ‘성령’이며, 성령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이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지금 이 곳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성령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모두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들이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입니다. 성령받은 사람답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이사야서 40-55장은 제2이사야서에 해당됩니다. 제2이사야서는 바벨론 포로지에서 살아가던 이들에게 전해진 위로의 말씀입니다. 타향이라 고향이 그립긴 했지만, 40년 정도 지나니 나름대로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중 강대국 바벨론은 페르시아 고레스 왕에 의해 멸망했고, 고레스왕은 칙령을 내려 고향으로 돌아가서, 황폐한 고향을 재건하라고 합니다. 특별히 유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도 재건하라고 지원해 줍니다. 하지만, 바벨론 유수지에서 나름 기반을 닦아 부와 권세를 누리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이들에게 고레스 칙령은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예루살렘은 황폐한 채로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갈 자유가 주어졌지만, 불안하고 두려워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권을 행사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포된 말씀이 오늘의 성서일과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불확실성’으로부터 옵니다. 고레스 칙령이 선포되자 유다백성들은 황폐한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재건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워서 망설입니다. 고향이 그립긴 한데, 타향살이도 나름 안정적이니 그냥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냥 살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입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불안과 두려움을 감수하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합니다. 유다를 지으시고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은 안정보다는 변화를 촉구합니다.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 하시고, 노예생활을 하던 합비루에게 광야로 나가라 하시고,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하십니다. 고향을 떠나면, 광야로 나가면, 새사람을 입으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며, 너를 사랑하고,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하나님은 속량하신 하나님, 부르시는 하나님,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에는 ‘보혜사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보혜사는 성령을 지칭하는 말로,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성도들을 항상 도우시고 변호하시며 조언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고 하며, 성령의 사역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 모두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속량해 주셨고, 지명하여 불러주셨고, 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셔서 도우시고, 변호해 주시고, 조언해 주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흔들리는 세상이라고 하여,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고, 단지 확실한 것은 현재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현재, 오늘 하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니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며 힘차게 살아가십시오.
우리는 오로지 오늘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늘을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어제도 내일도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험한 세상 속에서도 승리하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이 땅의 기초를 놓으시기 전부터 우리를 향한 선한 계획을 세우시고 ‘너는 내 것이라’ 선택하시고,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격랑의 세상을 살아가지만, 강을 건널 때에도, 불 속을 걸어가도 지켜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심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오늘을 성령님과 함께 힘차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