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주일설교모음

[송구영신예배] 눈부신 안부

  • 관리자
  • 2025-01-01 00:00:00
  • hit1177
  • 219.251.41.207

20241231 송구영신예배
눈부신 안부
민수기 21:4~9


 

2025년 푸른 뱀의 해를 맞이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풍성하길 바랍니다. 12월 3일 이후, 저는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사고 소식을 접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기 전에 저는 평소 습관대로 음악을 들으며 시편을 묵상했습니다. 29일 주일은 시편 130편을 묵상했는데 주제는 ‘절망에 빠진 시인의 참회시’입니다. 그 내용 중의 일부는 이렇습니다.



'깊은 물'은 인생의 심연이다.
인생의 심연에는 희망 혹은 의미 등 긍정적인 것들만 있지 않다.
절망, 우울, 실패와 같은 부정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것들은,
주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디딤돌로 작용한다.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 이들에게 시편 130편은 꼭 필요하다.
그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신다.
간절히 구하는 자는 그가 잡은 손을 놓치지 않고 일어설 것이다.

 

■ 설교자로서의 회의


예배를 마친 후 뉴스 속보를 보고, 다시 시편 130편의 말씀을 읽어보았습니다.

과연 이것이 항공기 참사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 절망 중에 빠져있는 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이 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이 참사를 디딤돌로 삼으라하고,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신다하고, 간절히 구하면 반드시 일어설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이런 종류의 메시지는 개소리가 아닐까?
지난 30년 동안 나는 이런 종류의 설교를 하면서, 삯꾼으로 살아온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지 않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사전검열을 하고, 교인들의 마음에 드는 설교만 한 것은 아닌가?


틀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데, 해야 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 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에 너무도 큰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니 마음이 복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시작된다는 것, 새해가 시작된다는 것이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 뱀의 이중적인 상징


구정이 되어야 을사년, 푸른 뱀의 해지만, 태양력으로 이미 2025년이 시작되었으니 ‘뱀의 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뱀은 이중적인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뱀은 허물을 벗는 동물입니다.
‘허물을 벗는 것’은 마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과도 같기에 예수님이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뱀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것은 ‘갈라진 혀’때문인데, 이것은 ‘분열’을 상징하고, 악마나 사탄을 의미하는 ‘디아볼로’라는 단어는 ‘분열시키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십시오.
뱀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모든 것이 분열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자아까지 모두 분열되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 때문에 뱀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뱀은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지혜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오늘의 성서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기도 합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 21:9)” 하지만, 뱀은 수많은 신화와 이야기 속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되었고,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친숙하기가 쉽지 않은 존재입니다. 뱀의 독은 적당량을 사용하면 ‘희귀병을 치료하는 치료제’되기도 하고, 요즘은 반려동물까지는 아니라도 애완동물로 키우는 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 민수기 21:4~9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받은 뒤 약속의 땅으로 향했습니다.
에돔을 가로질러 가면 지름길인데, 먼 옛날 야곱의 형 에서가 세운 형제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에돔을 우회해서 먼 길을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 사이에서 불만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먹을 물도 떨어졌고, 이젠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는 입에 물렸습니다. 그래서 ‘하찮은 음식’취급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불뱀을 보내어 사람들을 물어 죽이게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고, 불뱀에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라고 하라.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보니 모두 살았다는 이야깁니다.

저는 여기서 두 문장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우회해서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는 문장과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라는 문장입니다.
 

■ 하찮은 음식


먼저, 입에 물려서 먹기 싫다는 하찮은 음식부터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바로 ‘만나와 메추라기’입니다. 그들은 처음 이 기적을 만났을 때, 얼마나 감동했습니까? 심지어는 말씀을 거역하고 더 거두려고 하다가 만나에서 벌레가 생기는 일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물려서 먹기 싫다고 하고, 하찮은 음식 취급을 합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소중한 것인데 소중한 줄 모르고, 자신이 누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하찮은 것 취급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 이런 예배당이 있다는 것,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29일 제주항공여객기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의 일상이 하찮은 것입니까?
새해에는 하루하루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어진 하루를 보람되게 살아가시고, 선한 길에 서서 걸어가시길 축복합니다.
 

■ 먼 길


지름길을 두고 먼 길을 걸어가야 하니 이스라엘은 조바심이 났을 것입니다. 
12월 3일 이후, 국가적인 비상사태 속에서 이런 불안한 상황이 어서 끝나길 바라고 있습니다만 지연되고 있습니다. 다시 반전의 기회를 잡으려하고, 이런 심각한 잘못을 지지하는 이들도 결집하면서 나라는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도 어서 이 불안한 상황이 끝나길 기도하지만, 지켜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말로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국민을 위하는 이들인지, 어떤 교회가 정말 교회다운 교회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이참에 불의한 세력과 어둠의 세력들을 뿌리 채 뽑아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름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간 이유는 거슬러 올라가면 형제의 나라라는 이유도 있지만, 광야의 훈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광야 길에서 불평과 불만을 일삼는 이들을 걸러낼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런 불안한 상황이 조금 길어진다고 불안해하지마시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시고, 선한 길에 서십시오. 먼 길을 돌아가지만, 그 먼 길은 복된 길이 될 것입니다.
 

■ 눈부신 안부


설교의 내용과 설교 제목이 어울리는가? 
이 제목은 백수린의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소설에는 파독간호사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어느 파독간호사의 첫 사랑 K.H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찾는 도중에 아이들은 자기들이 추리한 내용을 토대로 첫 사랑을 그리워하며 죽어가는 이에게 첫 사랑인척 편지를 씁니다. 하지만, 그 편지를 읽는 순간 그 편지가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짜편지라는 것을 알지만, 자기의 첫 사랑을 찾기 위해 힘쓰는 아이들의 사랑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그래서 ‘눈부신 안부’라는 제목이 붙었을 것입니다. 그 책에서 감동받은 두 문장을 새해 덕담으로 전해드립니다.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제가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새해 첫 번째 메시지를 통해서 여러분에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눈부신 안부’입니다.
지난 30년 그랬듯이, 앞으로 남은 목회도 제도교회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시편 130편 같은 개소리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간을 읽어주십시오.
2024년에 저는 지속적으로 ‘눈부신 안부’의 편지를 매 주일 쓰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 편지를 매주일 함께 읽어줄 이들이 필요합니다. 읽어주고, ‘그래도 위로 받았어’라고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저의 ‘눈부신 안부’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본문과 연결하여 새해 덕담을 나눕니다.

‘오늘을 눈부신 날로 살아가십시오. 오늘은 아무에게나 오는 하찮은 날이 아닙니다.
어제 죽은 이가 간절히 원했지만, 맞이하지 못한 날입니다. 오늘을 눈부신 날로 살아가십시오.’*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