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4주(20241222 대림절 4주)
저항할 수 없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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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넷째주일입니다.
혼란스러운 시국이지만, 이 나라를 하나님께서 선하신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밝고 명랑한 마음 지키시길 바랍니다.
대림절은 평화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거리마다 성탄트리가 화려한 빛을 발하지만, 거기에는 아기 예수님은 없고 상술만 넘쳐납니다.
어느 후배 목사님이 대림절을 맞이하여 교회 입구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말구유를 만들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에 보니 구유 안에 있어야할 예수님이 사라졌답니다. 누군가 장식 중에서 아기 예수님만 가져가 버린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없어도 되지만, 아기 예수님이 없으니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예수님을 가져가신 분은 제 자리에 놓아달라고 광고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성탄절 아침, 구유 안에 아기 예수님이 누워계시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에 ‘아기 예수님’이 없다면, 제 아무리 화려한 성탄장식을 하고 칸타타를 준비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제 사흘 뒷면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아직 예수님이 없다면, 예수님을 모시십시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십시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두 여인,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엘리사벳은 사가랴 제사장의 아내였는데 나이가 많았지만 자녀가 없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가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일을 맡았을 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수태를 고지하고 ‘요한’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줍니다. 6개월 후에 마리아도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습니다.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러자 마리아가 묻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천사가 “그대의 친척 엘리사벳도 늙어서 임신하였다,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라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았을 때는 12살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은 어린 나이지만 그 당시에는 혼인을 하던 나이였습니다. 약혼자는 있었지만, 아직은 혼인 전인 어린 소녀가 수태고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천사의 수태고지를 즉각 받아들인 것처럼 기록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민 중에 마리아는 친척 중에서 늙은 엘리사벳도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는 천사의 말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조언을 받고 싶었을 것이고, 당장에는 어디로라도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사렛에서 유대 산골까지 사나흘 걸려 걸어갑니다. 교통수단이 거의 없던 때였으니 120km 정도의 거리(서울 –춘천)를 가려면 그 정도의 시간은 걸렸을 것입니다.
어린 소녀로서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지만, 여정의 끝에 그는 기쁜 소식을 확인합니다. 불임여성이었던 엘리사벳은 이미 임신 6개월이 되어 복중에서 뛰어놀고, 마리아가 말하기도 전에 성령 충만함을 받은 엘리사벳이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았고, 그대의 태중의 아이도 복을 받았습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말합니다. 엘리사벳은 자신이 임신한 아기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받은 것을 알았고,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기가 그들이 주님이라는 것도 알았던 것입니다.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 시작되고 한 주간이 지날 때마다 메시아의 오심이 가까워지기 때문에 기쁨이 배가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대림절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서신서의 말씀은 지난 주 성서일과를 다뤘던 빌립보서 4장 4~5절의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그러므로 오늘은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기대가 가장 충만한 주일이며, 기다림과 오심 사이에 있는 주일입니다.
누구를 기다리고 누가 오십니까?
아기 예수님이 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없는 말구유가 의미 없는 것처럼, 예수님이 없는 성탄은 의미가 없습니다.
메시아를 우리는 ‘기쁨’으로 표현합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기쁨은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너무 세상일에 몰두한 나머지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아기 예수님은 오시지만, 누구나 아기 예수님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장 5절에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렇습니다. 진정한 기쁨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다른 곳에서 기쁨을 찾고자하지만 허망한 이유는, 그것이 참된 기쁨의 근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옵니다.
신학자 몰트만은 마리아의 노래를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기쁨을 깨달은 기쁨을 표현한 노래’라고 해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저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쁨이 저항할 수 없는 기쁨일까요?
48절 말씀에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비천함을 보살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것이 저항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앞에서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12세 정도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당시 가난한 집의 소녀들은 생활비를 보탤 요량으로 결혼적령기가 되면 바로 약혼해서 결혼지참금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직업은 목수였는데, 그 당시 목수는 일용직노동자 혹은 막일꾼에 해당하는 직업입니다. 그러니 결혼지참금도 변변치 않았을 것입니다. 가난뿐 아니라 당시 물건이나 재산 취급당하던 여성, 여성 중에서도 힘 없는 소녀, 그러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던 마리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알게 된 마리아는 ‘저항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왜 ‘저항할 수 없는’이냐하면, 그 당시 결혼도 하지 않은 소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 고통의 나락으로 빠져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능가하는, 그런 불안과 근심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누리니, 저항할 수 없는 기쁨인 것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비천한 소녀를 돌아본 사건이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신 사건입니다.
린도전서 1장 27~29절의 말씀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을 택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그것은,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 세상의 약한 것들, 비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 가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이 바로 ‘성탄 사건’입니다. 어떤 분들은 나는 어리석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고, 잘났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어리석고, 약하고, 못났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에는 누구나 ‘저항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세상에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성탄-거룩한 탄생’ 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은 왜 이뤄진 것일까요?
5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두 종류로 대별하시어 성탄의 소식이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이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성탄의 소식은 마음이 교만한 사람(51), 제왕(52), 부한 사람(53)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성탄의 소식은 겸손한 사람들, 비천한 사람, 주린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당시의 제왕은 로마제국의 황제나 그의 수하들을 상징하고, 그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부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의 부역자로 산다는 의미요, 그렇게 살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으니 교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이들로 인해 가난하고 비천한 삶을 사는 이들을 도우시기 위한 사건이 성탄 사건입니다.
주목해야할 말씀이 있습니다.
54절의 말씀,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셔,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을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대부분 ‘기억하라(remember)’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기억하셔서 우리를 도우시니, 너희도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성탄은 끊임없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므로 하나님의 자비를 상기하는 시간입니다. 그때 우리는 ‘저항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 기쁨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십시오.
[거둠 기도]
우리를 기억하시어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셔서 저항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던 날들을 기억하며, 마음 지키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힘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드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