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세 번째주일(20241215)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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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3:14~20 /빌립보서 4:4~7/누가복음 3:7~17/누가복음 3:1~6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시국이 뒤숭숭합니다. 12월 3일 이후, 대한민국 국민은 정파에 상관없이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진보를 표방하든 보수를 표방하든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는 가치가 있는 것인데, 불의한 권력과 동조자들로 인해 국민들은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번 일은 워낙 위중한 일이라 바로 잡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국민들이 힘을 합해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해내고, 더 성숙한 나라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 평온함을 잃어갑니다.
많은 석학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소유하는 삶이 아니라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성서일과의 말씀은 서신서 빌립보서 4장 4~7절입니다. 하나님은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빌립보서의 말씀을 통해서 삶의 지침을 주십니다.
우리의 기쁨은 어디에 있습니까?
‘기쁨’이라는 감정은 ‘행복’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철학자 그룹에 속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그 과정에서 성취하는 것들로 기쁨을 느낍니다. 그 기쁨의 단편들이 하나 둘 모여 행복이라는 장편소설이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쁨이나 행복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입니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사람은 행복을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절망적인 것 같은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쁨’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 얻는 것입니다.
바울은 거듭 강조하며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말씀에서 눈 여겨 봐야할 말씀은 ‘주님 안에서’입니다. 누구나 기쁨 충만한 삶을 살기 원하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기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기쁠 것이라고 생각하며 얻었던 것이 주는 기쁨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소유함으로 얻는 기쁨은 일시적입니다. 이발을 하면 하루가 기쁘고, 자동차를 사면 일주일이 기쁘고, 결혼을 하면 한 달이 기쁘고, 집을 지으면 일 년이 기쁘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평생 기쁘게 사는 방법을 공짜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평생을 기쁘게 살려면 ‘주님 안에서 사십시오.’
바울은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라 지속적인 기쁨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존재함으로 얻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주님 안에 있을 때’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참된 기쁨은 나를 넘어 이웃에게 감으로 ‘주님 안에 있는 기쁨’임을 확증합니다. 이웃사랑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헬라어로 ‘관용’은 ‘에피에이케스’입니다.
유래는 순한, 온화한, 친절한, 너그러운, 부드러운 등입니다.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에서는 ‘절제’라고 해석했습니다. 관용의 국어사전적인 뜻은 ‘남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용서함’이라는 명사입니다. 받아들이고 용서하려면 ‘부드러워야’ 합니다. 부드러운 땅이 씨앗을 품어 싹을 틔우듯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훈련하면, 항상 기뻐하는 삶이라는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날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일을 할 때에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는데,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라’고 하셨을까요?
‘알리는 것’을 ‘공지’라고 합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공지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이렇게 알리면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힘쓰게 됩니다. 관용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부드러운 분들이 되십시오. 어떤 분들은 남에게는 부드러운데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하듯이 자신을 부드럽게 하고, 다른 이들을 용서하듯 자신을 용서하십시오.
그런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삶’의 현관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드러움과 관련된 지혜자의 명언을 소개하겠습니다.
‘한없는 부드러움은 위대한 사람들의 재능이자 자산이다(러스킨).’
‘연약한 풀은 단단한 흙을 뚫고 바위틈을 파고들며 살아갈 길을 낸다.
선행도 마찬가지다. 어떤 쐐기도, 망치도, 메도, 선하고 진실한 사람의 힘과는 견줄 수 없다(소로우).‘
기도와 간구는 인간의 한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한계상황과 마주하면 누구나 ‘염려’에 빠져듭니다. 염려의 크기만큼 기쁨의 크기도 작아집니다. ‘염려’에 대해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 6:27)”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의미를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염려해도 바뀌지 않을 것에는 연연하지 말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염려함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것은 염려해야죠. 하지만, 염려했어도 염려하는 상황이 되었고, 염려한다고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인간의 염려에 대한 ‘온누리 신문이’의 사설에 의하면, 인간이 염려하는 일들 중에 진짜 염려해야할 일은 4%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4% 조차도 현실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걱정 96%는 쓸데없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마음 빼앗기지 마시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일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염려에 사로잡혀 불안에 빠져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한계 앞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인간에게 주어진 복은 기도할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계 앞에서 부르짖어 간구하게 하시고, 그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울부짖음에 응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든 일을 기도와 간구로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큰 불행을 초래하는 유혹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작은 욕망들이 모여 거대한 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유혹과 욕망과 악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큰 불행을 초래하는 유혹과 거대한 악을 만들어내는 욕망을 소멸키는 묘약은 ‘감사’입니다. 유혹과 욕망이 그렇듯이 감사도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소소한 것에도 감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큰 감사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범사 감사하라(살전 5:18)’하신 것입니다. 좋은 일뿐 아니라 나쁜 일에 대해서도 감사할 때, 감사가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6).” 감사를 할 때에는 마음으로만 하지 말고, 입으로 시인하라는 말씀입니다. 생각이 말을 낳고 말이 행동을 낳고 행동은 삶이 됩니다. 입술로 시인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감사한 일을 떠올리고 하나님께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아뢸 때, 우리가 바라는 것들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직 미완이지만,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을 품은 이들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복된 삶을 살아가십시오.
항상 기뻐하며, 부드러운 마음을 품고 살아가며, 염려하기보다는 기도하고 간구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평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를 능가하는 평화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팍스(Pax)’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평화는 샬롬, 온전한 평화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 역시도 ‘그리스도 안에서’와 연결됩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in)’입니다.
기뻐하는 일도, 관용을 베푸는 일도, 기도와 간구도, 감사하는 마음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지 않는다면, 그 기쁨과 관용과 기도와 간구와 감사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다고 해도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림절입니다.
광야와도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느라 거칠어진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관용과 기도와 간구와 감사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둠 기도]
평화의 주님, 광야와도 같은 세상과 거칠어진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평화를 부어주시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시오. 그리하여 항상 기뻐하며, 부드러운 마음을 품고, 온갖 염려로부터 벗어나 감사하는 마음을 지켜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펴오하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