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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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2주] 언약의 특사(음성설교 포함)

  • 관리자
  • 2024-12-0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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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두 번째주일(20241208)
언약의 특사 제목을 누르시면 음성실황녹음설교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68~79/ 말라기 3:1~4 /빌립보서 1:3~11 /누가복음 3:1~6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주에 많이들 놀라셨을 것입니다.
그 일에 대해서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뉴스와 평론을 통해서 나름 그 일에 대해 판단을 하실 것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검게 변한 교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권력만 쥐면 그가 누구라도 아부하고, 비판의 소리를 내지 않고 축복해주는 교회와 목사들은 ‘검게 변한 교회’를 만들어가는 주범입니다. 마치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을 보는 듯한데, 엘리야 같은 예언자는 없는 것 같은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나라가 바로 서고, 교회도 바로서길 바랍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시고, 교회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침묵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 말라기


말라기는 기원전 450년경에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이 시기는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던 시기였으며, 느헤미야와 에스라 같은 이들이 형식적인 제사 의식과 정치 개혁을 시도했던 때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과거의 잘못된 행태를 반복했고, 영적으로도 쇠퇴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말라기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환기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백성들의 잘못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오용하며 백성들을 죄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제사장들의 죄를 지적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공의롭게 재판하시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을 하나님이 더 좋아하신다고 비꼽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입니다. 그 중에서 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나의 특사를 보내겠다. 그가 나의 갈 길을 닦을 것이다(1).”

이 예언의 말씀은 400년 후에 사가랴의 아들 ‘세례 요한’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언약의 특사로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자’가 되어 회개를 선포하고,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 신구약중간기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세례 요한이 오기까지 400년을 ‘신구약중간기’라고 합니다. 
그 사이에 페르시아 제국이 세계를 다스렸습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게 된 이들은 고레스를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도 그리스, 헬라문명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 사이에 유다는 식민지에서 해방되고자 마카비 혁명을 일으키고 하스몬 왕조를 이루기도 했지만, 로마제국이 들어서면서 독립의 꿈은 산산 조각납니다. 그러던 사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유대교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형식적인 신앙에 머물러있음으로 대안이 될 수 없었습니다.

때 긴 침묵을 깨고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세례 요한’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선포합니다. 이 선포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선포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제사장들과 권력자들의 부패한 리더십으로 심한 가난과 고난, 불평등이 만연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력자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온갖 부패와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말라기 예언자는, 성전을 재건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면서도 구색만 갖춘 형식적인 제사가 되어버린 예배를 비판합니다.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고 제물을 드리는 것이 번거롭다(말 1,13)하고, 제사장들은 바쳐진 제물을 자신들을 위해 사용(말 1:7~14)합니다. 부자들은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데에만 혈안(말 2:10~16)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사장들은 나 몰라라 했고, 그 사이에 빈부격차는 심해졌고 고아나 과부, 나그네와 같은 사회적인 약자들은 극심한 가난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라 전반이 ‘하나님’에 실존에 대한 회의에 빠져들었습니다. 제사장, 권력을 쥔 자들이나 부자들은 그렇게 악하게 살아도 잘만 살고 있으니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가난한 이들은 이렇게 힘겨운 삶을 강요당하는데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계신지 의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를 촉구하는 말라기에게 한 목소리로 “공의롭게 재판하시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가?(말 2:17)”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 검게 변한 교회는 모두 소름 끼친다


18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브레이크는 ‘런던(london)’이라는 시에[서 산업혁명 이면에 놓인 우울함과 비극을 표현합니다. 
무한 성장과 부를 약속하는 산업혁명의 장밋빛 전망 속에서 종교지도자들은 아이들까지 굴뚝청소부로 내몰고, 아동들의 노동력을 착취합니다. 당대의 권력가들과 부자들은 산업혁명의 장밋빛 전망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그들이 가진 힘으로 억눌러버렸습니다. 당시 런던에는 산업혁명의 상징인 매연을 내 뿜는 굴뚝이 우후죽순이었는데, 이 굴뚝은 높고 좁아서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굴뚝 청소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고, 사고가 잦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일에 내몰려 희생된 아이들 대부분이 당시 교회에서 돌보던 고아들이나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아이들의 노동력을 갈취했고, 사고로 죽으면 보상금을 받아 챙겼습니다.

그리하여 윌리엄 브레이크는 런던이라는 시에서
굴뚝 청소하는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그을음에 검어진 교회를 얼마나 경악시켰나.’
라고 절규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정화되지 않는 매연을 내뿜는 굴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산업재해와 사회적 비극을 전하는 뉴스를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하청업체 직원들, 외국인 노동자들은 굴뚝청소부였던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교회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말하면 정치적이네 진보적이네 뭐네 하면서 입을 막습니다.

선교 역사 140년밖에 안 된 한국교회가 2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교회보다도 더 검게 변한 것 같아 소름이 끼칠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말라기 때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 온전한 예배를 회복하라


“공의롭게 재판하시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라는 질문에 말라기는 ‘언약의 특사’가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언약의 특사는 은과 금을 깨끗하게 정련하는 정련공처럼,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레위 자손이 하나님에게 올바른 제물을 드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레위 자손’이 의미하는 바는 레위지파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레위지파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제사를 관장하고 진행하는 임무를 맡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특사가 레위자손을 깨끗하게 하여 올바른 제물을 드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온전한 예배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중심에 공의가 회복되고,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는 것이 온전한 예배의 회복입니다. 말라기의 예언은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앞서 세례 요한이 ‘언약의 특사’로 와서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 한남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온전한 예배를 잃어버렸습니다. 
코로나 이후, 주님의 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무너졌습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려면, 주님의 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회복해야 하는데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히려 검게 변한 교회의 예배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제대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교회의 예배는 점점 힘겨워집니다. 

여러분, 한남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검게 변한 교회라면 존재의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한남교회가 검은 교회가 아니라면 살려야하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살아나려면, 먼저 주일예배가 살아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살릴 수 있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살릴 수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분들이 살릴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복 주신 주일은 주님 앞에 나와서 쉼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 쉼의 시간이 온전해지도록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십시오. 저 빈자리의 주인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서로서로 사랑하십시오. 새 신자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또 배려하십시오.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은 기본입니다. 복음의 길 70년을 걸어가는 한남교회가 ‘기본 신앙’을 넘어 ‘성숙한 신앙’을 이루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언약의 특사가 되길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주님, 하나님이 부재하시는 것 같은 현실에서 불의한 자들이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 조롱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검은 사제와 검은 교회가 득세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이들도 흔들립니다. 우리를 붙잡아 주시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언약의 특사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오셨고,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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