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제5주(성령강림 후 제19주)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마가복음 9:38~50

창조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창조절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하늘의 지혜를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말씀을 복기하면 첫째 주일에는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을 이루기 위해서는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화내는 일은 더디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둘째 주일에는 ‘그의 발 앞에 엎드리라’는 제목으로 험한 말처럼 들려지는 말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수로보니게여인의 딸을 고치시고, 귀 먹고 어눌하게 말하는 사람을 고쳐주신 이야기, 세 번 째 주일에는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네 번째 주일에는 ‘하늘의 지혜와 땅의 지혜’라는 제목으로 하늘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저는 복음서 성서일과의 말씀을 ‘하늘의 지혜를 들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맺혀지는 열매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으로 받았습니다. 화목한 삶, 이것이 하늘의 지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맺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면 모든 영역에서 ‘분열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듯합니다. 정치, 이념, 국가, 종교, 남녀, 빈부, 나이, 인종 할 것 없이 분열되어 있고, 인간과 자연 또한 갈등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은 사라진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그루터기, 남은 자들을 남기셨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에게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순종하게 하셔서, 이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화목한 세상으로 가는 길은 좁아서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지 않겠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마침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은 이뤄질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한남교회 교우들은 이 길을 걸어가는 동행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50절에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너희는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쳐 두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소금’이 성경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을까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구약성경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0장 5절에 분향단에서 피울 향을 만들 때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소금은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어 레위기 2장 13절에서는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하십니다. 민수기 18장 19절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거제로 드린 모든 음식을 다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시는데 이것을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하십니다. 그러니까 소금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징합니다. ‘소금언약’은 역대하 13장 5절에서도 강조됩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가 여리고에 있을 때 물이 좋지 않아 사람들이 물을 먹고 죽거나 여인들이 유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의 근원에 소금을 뿌리니, 그 물이 맑아져서 사람들이 물 때문에 죽거나 유산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 ‘소금’은 거룩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 하나님과의 언약, 생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먼저 마태복음 5장 13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소금이 되어라’는 미래형이 아니라 완료형으로 우리가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말씀에서도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읽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하십니다. 골로새서 4장 6절에서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신약성경에서는 ‘소금’을 ‘맛을 내는 것’과 연결을 시킵니다.
그러니까 소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맛을 내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 말씀이 문자 그대로 ‘소금’이 아니라 상징입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요약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살맛나지 않는 세상을 살맛나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분열과 갈등이 첨예화하여 살맛나지 않는 세상을 화목하게 만들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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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신구약 성경에서 소금은 정결케 하는 것, 하나님과의 언약, 죽음과 대비되는 생명, 살맛나지 않는 세상을 맛나게 하는 것 등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소금은 ‘부정한 것을 막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게다가 소금이 워낙 우리의 일상에서서 중요하게 사용하다보니, 부패를 방지하는 의미로, 상처를 치유하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소금의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소금’이나 ‘맛’이런 단어들은 문자 그대로 소금, 음식의 맛을 내는 것으로 읽는다면, 우리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소금’의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성경을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근본주의자들 혹은 문자주의자들이라고도 하는데, 그들은 성경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문제는 자기들의 취향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한다는 데 있습니다. 자기들의 논리를 합리화시키는 말씀만 골라내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어던 말씀에 대해서는 목숨 걸고 지켜야한다고 하면서도, 어떤 말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소금’은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금의 쓰임새를 잘 관찰하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소금’처럼 사는 것인지 묵상해야 합니다.
먼저,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소금이 많이 들어갑니까, 적게 들어갑니까?
아주 적게 들어갑니다.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태풍이고, 다른 하나는 염분 때문입니다. ‘염분’은 ‘소금’입니다. 몇 퍼센트일까요? 3.5%라고 합니다. 3.5%의 소금이 있어 바다가 썩지 않는 것입니다. 음식의 맛을 내는 데에는 그보다 더 적은 소금이 들어갈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아주 작은 것’의 중요성을 묵상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모양이라도’는 ‘작아서 하찮은 것, 무시해도 될 만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무너집니다. 작은 틈이 큰 댐을 무너뜨리듯 말입니다. 그러나 동씨에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악이 아니고 선이면 어떻겠습니까? 작은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고, 씨앗이 30뱌,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하시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작은 것, 사소한 것을 허투루 생각하지 마시고 소중하게 대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삶이 부패되지 않습니다.
음식에 들어가 맛을 내는 소금은 어떻습니까?
녹기 때문에 자기의 형체가 없습니다.
자기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기를 드러내야만 사는 시대가 아닙니까?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누가 알아줍니까?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공로를 드러내지 않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겸손하게 섬길 것을 강조합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섬기고 봉사할 때,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니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십시오.
그래도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때는 살짝 드러내십시오. 그러나 그때에는 겸손하고 지혜롭게 하십시오. 일부러 꼭꼭 숨어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 보고 배워야 하니까요.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지는 마십시오. 그 순간, 우리는 바리새인이 됩니다.
염전에서 만들어진 소금은 깨끗합니다.
그런데 그 소금이 자기의 역할을 하다보면 그 깨끗함을 상실합니다. 왜냐하면, 소금은 주변의 것을 빨아들입니다.
겨울에 눈이 오면 뿌리는 제설제 중에 공업용소금인 염화나트륨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염화칼슘을 많이 쓰고, 섞어서 쓰기도 합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주변의 물을 자기의 무게 14배까지 흡수하고, 물을 흡수할 때 열을 내기 때문에 눈이 녹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옥수동은 언덕이 많아서 제설작업 한 것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뿌려진 소금이 제 역할을 하느라 어떻게 되었습니까? 더러워졌습니다. 그래야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김장할 때, 배추를 절인 소금도 어떻습니까?
그 역시도 배추에 있던 이런저런 불순물들로 인해 지저분해집니다. 그렇게 자기의 소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깨끗한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좋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세속의 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깨끗하다고 생각하니 남을 정죄하고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깨끗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깨끗하고자하는 것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내가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알아야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금 언약‘으로 인해 구원의 길에 서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서두에서 말씀드린바 대로 온갖 분열과 갈등이 횡행하고 있는 죽음의 세상을 다시 생명의 세상으로, 살맛나지 않는 세상을 살맛나는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바로 소금처럼 사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열매는 ’화목‘이라는 열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금언약을 따라 사는 이들은 마태복음 5장 9절의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복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우리를 빛이요, 소금이라 하시는 주님,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시는 주님, 죽음의 문화가 만연하는 이 세상에서 생명의 빛으로 살게 하옵소서. 살맛나지 않는 세상에서 이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소금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름도 빛도 없이 살아간다고 해도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시어, 화평을 이루는 삶을 살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림을 받게 허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