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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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4주] 하늘의 지혜와 땅의 지혜

  • 관리자
  • 2024-09-22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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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제4주(성령강림 후 제18주)
하늘의 지혜와 땅의 지혜

시편 1편
구약 잠언 31:10~31
서신서 야고보서 3:13~4:3, 7~8
복음서 마가복음 9:30~37




창조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에서 지혜의 말씀을 주시니,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셨는지요? 들으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헛갈리시나요?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울려 퍼지는데, 잘 들리지 않는 이유는 사람의 생각이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도 읽고 “아멘!”한다고 해서 들을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지 않으면 듣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하늘의 지혜는 선포되지만, 땅의 지혜가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혀를 조종하고, 우리는 땅에 살기 때문에 세속에 물들어 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일부만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하늘의 지혜를 품으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로인해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여 새사람으로 거듭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시가서[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세상적인 성공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세상적인 성공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악인들의 꾀로 된 것이거나, 아무리 세상적인 성공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죄인들과 짝이 되어 오만하게 행하면 복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세상적인 성공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정직하고 바른 방법으로, 성공했어도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권면의 말씀이고, 이런 삶의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하늘의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성경을 통하여 변화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갔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사람을 긍정적인 삶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즐거움, 기쁨’이라는 감정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게 하고, 삶의 활력을 줍니다. 이 세상에도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즐거움이나 기쁨 뒤에 허무함이나 후회가 남습니다. 허무함이나 후회가 남는 즐거움과 기쁨으로부터 벗어나 참 기쁨과 즐거움, 인생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을 하십시오. 그런 일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런 분들 되길 축복합니다.
 

■ 구약[잠언 31:10~31]


잠언의 말씀은 현숙한 여인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날 문자로 읽으면 땅의 지혜에 해당하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강화시켜줄 것입니다. 이 말씀의 요점은 “현숙한 여인의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31:10)”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현숙한 여인’은 세상의 것으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숙한 여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31:30)’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세상적으로 부지런히 일하고, 곤고한 자들을 돕고, 입으로 지혜를 말하고, 자식들로부터 감사와 존경을, 남편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 즉, 땅의 지혜에 해당하는 것만 가지고 현숙한 여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땅의 지혜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땅의 지혜조차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사는 이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언의 말씀은 ‘현숙한 여인’이라고 해서 ‘여성’들에게만 준 말씀이 아닙니다. 남성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 서신서[야고보서 3:13~4:3, 7~8a]


야고보서에서는 위로부터 난 지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늘의 지혜입니다. 하늘의 지혜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는 것(약 3:17)’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어떻게 그 많은 것을 다 행하고 사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보십시오. 굉장히 다양한 삶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그 중에 하나만 붙잡고 살면 그것의 영향으로 나머지 삶은 저절로 살아지는 것입니다.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편견과 거짓’에 사로잡혀 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편견과 거짓’에 사로잡혀 살지 않는 사람이 성결하고 관용하고 양순한 삶을 살아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의 지혜는 서로 통하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기억하십시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양선과 충성과 진실과 온유와 절제’인데 이것을 금할 법도 없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아홉 가지 열매를 다 맺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열매를 잘 맺으면, 로마서 8장 22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입니다.
 

■ 땅의 지혜를 하늘의 지혜로


교회는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진 이들이 모여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땅의 지혜를 하늘의 지혜로 바꾸어가는 공동체입니다. 한남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힘을 더해 주십시오. ‘내가 뭘’이라고 하지 마시고, 일단은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십시오. 하나님께 예배하는 중에 하늘의 지혜가 여러분의 마음을 감동시켜주셔서 무엇을 할지 알려주실 것입니다. 

서신서의 저자는 하늘의 지혜와 대비해서 땅의 지혜를 말합니다. 땅의 지혜는 ‘시기와 다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모든 혼란과 악한 일의 근원(약3:14~16)이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땅의 지혜를 기반해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삶을 살다가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면 바로 땅의 지혜를 버리고 하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될까요? 만일, 그렇다면 교회의 회전문이 무슨 마술이라도 부린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여전히 땅의 지혜를 가진 죄인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교인들은 모두 천사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 갔는데 세상하고 똑같더라!”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세상에 있는데 세상과 달라야 얼마나 많이 다를 수 있겠습니까? 단지, 교회에는 세상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 뿐입니다. 즉, 땅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갖고 살아가고자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 26장 41절의 말씀대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그리하여 늘 탄식하면서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한남교회에 속한 교우들이 땅의 지혜를 따라 살지 않고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살길 바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되어야 한남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 복음서[마가복음 9:30~37]


복음서 30절에 ‘그 곳을 떠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곳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빌립보의 가이샤라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베드로 의 신앙고백을 옳았지만, 그동안 예수님이 들려주셨던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수난에 대한 예고에 대해서 수긍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사람의 생각에 사로잡혀 예수님께 항변하다 “사탄아! 물러가라!”는 꾸중을 들을 정도로 우매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땅의 지혜에 사로잡힌 제자들이 하늘의 지혜를 깨닫길 바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자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합니다. 그래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하는 것으로 다툽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로마제국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키고 독립 국가를 이루시면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가지고 다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제자들의 행동이 어리석어보이지만, 아마 우리는 더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위 땅의 지혜에 해당하는 지식을 여느 때 보다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막 9:35)”고 하십니다.
 

■ 하늘의 지혜와 땅의 지혜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살아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땅의 지혜를 따라 사는 일에 익숙해 졌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는 걸림돌입니다. 

칼 포퍼는 1960년 강연에서 “지식은 유한하나 무지는 필연적으로 무한하다. 이것이 바로 무지의 주된 원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사실, 땅의 지혜는 ‘무지’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행세할 수 있는 이유는 무지몽매한 이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무지한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늘의 지혜는 발붙일 곳이 적어집니다. 심지어는 하늘의 지혜를 가르치고 행해야할 교회에서도 무지한 땅의 지혜가 소리를 높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힙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걸림돌입니다. 그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는 이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는 이들이 바로 현숙한 여인이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가 있고 땅의 지혜가 있습니다. 창조의 계절에 땅의 지혜를 넘어 하늘의 지혜를 품고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 누구나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선포하셨지만, 땅의 지혜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은 하늘의 지혜를 귀를 막고,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 이러한 세상이지만 여전히 하늘의 지혜에 목말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붙잡아 주시어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오늘 하나님께 예배하며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우리 모두가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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