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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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3주]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라

  • 관리자
  • 2024-09-1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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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제3주(성령강림 후 제17주)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라

시편 19편
구약 잠언 1:20~33
서신서 야고보서 3:1~12
복음서 마가복음 8:27~38





창조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명절을 앞두고 고향에 가신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의 고향은 제각기 다르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본향은 같은 곳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듯, 우리 모두의 고향인 본향도 사모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한가위 명절의 보름달처럼, 여러분의 삶도 풍성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창조절과 ‘들음’


오늘은 창조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일 성서일과를 묵상하면서 2024년 창조절의 성서일과가 ‘들음’이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담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첫 주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서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라’는 말씀을 나누며 ‘우리 속에 심어진 말씀을 삶으로 사는 것’이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둘째 주에는 ‘그의 발아래 엎드리라’는 제목으로 수로보니게 여인과 귀 먹고 말이 어눌한 사람을 치유하신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귀 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쳐주신 기적 이야기 역시도 ‘들음’입니다. 그리고 오늘 성서일과의 주제는 구약, 서신서, 복음서 모두 ‘들음’이 주제입니다.

이번 창조절에 ‘들음’이라는 주제가 이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묵상하다 로마서 10장 17절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니까, 창조절에 우리가 재창조되려면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잠언)


잠언의 말씀에 지혜, 즉 하나님의 말씀이 길거리, 광장, 시끄러운 길목, 성문 어귀, 성중에서 소리를 높여 부르고 발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라도 들을 수 있도록 선포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이가 없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지혜의 소리를 듣고 어떤 이들은 듣지 못합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들었지만 듣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싫어하는 것도 그냥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말씀을 ‘멸시(25)하고, 미워하고(29). 업신여김(30)’으로 멸망의 길을 자초합니다. 잠언의 말씀은 이사야 6장 9절,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시고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영의 귀와 눈이 멀어 어디서나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던 이가 듣고, 보지 못하던 이가 보고, 듣고 본 것을 말하는 것이 혀가 풀리는 기적인 것입니다. 
 

■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33)


33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이 말씀이 한가위를 맞이하는 여러분과 사랑하는 친지들과 사랑하는 이들 모두에게 이뤄지길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의 삶을 어떠합니까? 재앙을 만날 때에 하나님이 웃으시고, 두려움이 임할 때 하나님이 비웃으실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 꾀에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자기 꾀’는 ‘지혜’와 대비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자기 꾀를 따라 살아가는 것을 잘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가치관과 세상의 가치관은 전혀 다릅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첫째가 되는 것만 성공이라고 합니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에서는 2등도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꼴찌도 실패한 삶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많이 다릅니다. 세상은 권력을 쥐면 섬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섬기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자기 꾀와 지혜는 충돌합니다. 그때, 여러분은 지혜를 따라 살길 바랍니다.

이번 주 성서일과 시편 19편 8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을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는 지혜의 말씀을 빨리 듣고,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을 이루시는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야고보서)


서신서에서는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고 하십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은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가르침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릅니다. 그래서 성급하게 선생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배우는 사람은 잘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신서의 말씀 역시도 ‘들음’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말하고 듣는 일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혀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배라도 사공이 작은 작은 방향키를 이용하여 방향을 바꿉니다. 마치, 혀가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혀를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혀의 본성은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8)’합니다. |

그러니 이런 혀를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혜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길거리, 광장, 길목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아야 합니다. 혀는, 듣고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르치는 선생이 되는 일도 좋은 일이지만, 먼저 잘 듣는 사람이 되십시오. 지혜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의 혀는 지혜를 말하고, 잘 듣고 잘 말하는 사람은 선생인 것입니다. 말과 삶이 다르지 않으니 이 역시도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런 분들 되십시오. 
 

■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마가복음)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가실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어 예수님이 자신이 앞으로 하실 일을 전하십니다. 그 일은 ‘이제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입니다. 그러자 “주는 그리스도시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가 항변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꾸짖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옳았지만, 그의 신앙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신앙고백과 신앙이 다른 것은 마치 야고보서의 예화대로 한 샘에서 단물과 쓴 물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다혈질이었던 베드로는 수제자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세심하게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일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경청했다면, 예수님의 수난예고의 말씀을 듣고 항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뭔가, 평상시에도 주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들었거나,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주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33)”하는 꾸중을 듣는 것입니다.
 

■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라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외치십니다.
첫째, 길거리에서 광장에서, 길목에서 소리 높여 말씀하십니다.
그 소리를 들으십시오. 성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통해서, 지구온난화를 통한 기후변화를 통해서, 일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식은 하나의 사인입니다. 그 사인을 통해서 지혜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은 복을 주셔서 ‘평안히 살게 하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는 안전한 삶’을 선물로 주십니다.

둘째, 주님은 우리와 가까운 이들을 통해서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까운 이들, 사랑하는 이들의 말을 경청하십시오. 경청이란, ‘귀 기울여 주의해 듣는다는 뜻과 귀담아 듣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경청은 말하는 이를 살리고, 듣는 이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들을 때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경청은 혀에 재갈을 물리는 좋은 수단이기도 합니다.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라’는 말씀을 삶으로 사십시오.

이렇게 하늘의 일, 지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이들은 반드시 재창조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이요, 새 사람이요, 구원받은 자요, 의로운 사람이요,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 분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며 말씀을 마칩니다.

 

[거둠 기도]



주님, 지금도 주님의 소리는 온 세상에 울려 퍼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귀가 닫혀서 듣지 못합니다. 우리의 귀를 여시어 지혜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우리의 눈을 열어 지혜의 말씀이 선포되는 그 곳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입술을 열어 지혜의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어, 하나님의 생각에 우리의 생각을 굴복시키게 하옵소서.
세상의 가치관에 익숙한 우리가 지혜의 말씀으로 깨어져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지혜의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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