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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13주] 걸림돌이 되는 말씀(실황ppt)

  • 관리자
  • 2024-08-1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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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13
걸림돌이 되는 말씀
요한복음 6:56~69
 


폭염이 기승부리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언덕길을 올라 주님의 전에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힘이 되어주시고, 복을 채워주시길 바랍니다.

무더운 여름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지난주에 휴가를 보냈습니다.
저는 저녁형 인간이라서 학창시절에는 밤새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목사가 된 이후에는 새벽예배를 드려야 해서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했습니다. 저에게 새벽기도회 인도를 마치고 아침을 먹기 전까지 두어 시간은 하루의 일과 중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때 교인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시간도 갖고, 성서 일과를 묵상하며 그와 관련된 독서도 합니다.

이번 휴가는 집에서 보냈기 때문에 새벽예배를 개인기도로 모여서 새벽에 나와 독서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덕분에 삼위일체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좀 더 깊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것을 나누고자 합니다.

 

왜 이렇게 복잡할까?


휴가기간 중에 이런 이름들과 씨름했습니다.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플로티노스, 암모니오스, 오리게네스, -디오니소스,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아우구스티누스, 아리우스, 유스티아누스, 이그티나우스, 테르툴리아누스, 파트리키우스, 알렉산드로스, 아타나시우스, 바실리우스....

 

삼위일체논쟁은 318년 아리우스 논쟁에서 시작하여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63년 만에 마감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태동부터 300년 가까이 핍박을 받는 종교였습니다. 하지만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이후 지배자의 종교가 되었지요. 그런데 국교가 된지 5년 뒤에 아리우스 논쟁에서 시작된 삼위일체 논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논쟁이 너무 격화되자 로마제국에 분열이 올 것을 염려하여 콘스탄틴 황제는 서둘러 공의회를 소집하고 삼위일체논쟁을 정리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아들이 아버지와 유사한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주의가 배격되고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반아리우스주의가 채택되어 니케아신조를 공표했습니다. ‘동일하다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지요.

 


니케아신조는 지금도 공교회에의 신앙 고백문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콘스탄틴 황제가 죽고 그 대를 이은 아들은 다시 아리우스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지속해서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다양한 신조들이 등장하면서 갈등했습니다.

결국 하나였던 교회는 1054,
그러니까 최초의 논쟁이 시작된 이후 736년 만에 동방교회(그리스정교회)와 서방교회(로마 가톨릭교회)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나 사실, 지금도 삼위일체교리는 유일신 사상과 함께 여전히 난제입니다.
900
년 넘게 당대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논쟁하고도 정리가 다 되지 않은 주제인데 어찌 지금이라도 난제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가끔 이 복잡한 문제들을 붙잡고 씨름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재미도 있고, 깨달음도 있기에 간혹 이런 복잡한 책들을 읽습니다.

 

세 본체로 존재하는 한 본질


여전히 난해한 문제지만 최종 정리된 결론은 세 본체, 즉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하는 한 본질이며, 한 본질은 숫자적인 개념의 1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에서의 유일이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결론에 도달한 후에도 자신들의 신조와 조금만 다른 것 같으면 종교재판을 통해서 마녀사냥을 하고, 화형을 시켰습니다. 이런 일들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다르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1953
년 분열되기 시작한 장로교의 경우도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느냐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하나의 교회였지만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나뉜 이후, 교회는 수도 없이 많은 교파로 분열되었고, 거기에서 파생된 수많은 종파들과 이단사이비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 문제는 너무 복잡해서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공표한 신조를 고백하느냐 아니냐로 정통인지 이단인지 구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간혹 믿음을 오해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을 신앙이라고 오해하기도 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혜를 주셨고, 생각하는 능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으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합리적이지 않으면 의심해봐야 합니다.

 

난제들로 가득한 성경말씀


56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절에 나를 먹는 자는이라는 말씀은 그 당시에 걸림돌이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를 핍박하는 이들에게 초대교회 교인들은 식인을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핍박의 빌미를 주었습니다. 살과 피가 의미하는 바도 어렵지만, 성부와 성자에 관한 말씀, 내재하시는 하나님 등 지금도 여전히 해석되어야하는 말씀들이 가득합니다. 이 말씀이 기록되고 전해진 이후 지금까지 석학들이 이 말씀을 해석했지만, 이 말씀이 담고 있는 깊은 뜻은 여전히 해석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진리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진리란, 인간의 언어로 규정될 수 없고, 규정되는 순간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불변하지만, 그 변함없음 속에는 끊임없는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변하면 진리도 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진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변한 세상에서 다르게 해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무슨 말인가 어렵죠?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이 말씀을 전하셨고, 제자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수군거립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돌이 되느냐?”

 

말씀이 걸림돌이 될 때(61)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예수님의 말씀이 걸림돌이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나는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칭한 것 때문입니다. 살과 피는 문자로 받았기 때문에 걸림돌이 되었고, 하늘에서 내려온 떡, 즉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씀 때문에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당시 마르키온의 영지주의 사상이 팽배해서 화육하신 하나님보다는 잠시 예수라는 인간의 몸에 내재해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학사상이 더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랜 신학적인 논쟁 끝에 공표된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든 못하든 믿지만,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걸림돌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는, 문자로 읽으면 반드시 걸림돌이 됩니다. 상충되는 말씀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상황에 비추어 재해석하면서 말씀을 읽어야만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때로는 이 시대의 합리성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할 때가 있기 때문에 말씀이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63)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씀까지 연결시켜보면,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영이고, 그것이 생명의 양식이, 그 생명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살지 않은 육은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풀면, 사람은 누구라도 육의 몸을 가지고 사는데, 생명의 양식을 먹고 사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지 않아도, 즉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육은 사는데, 그것이 무익한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사람처럼 살려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말씀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은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납니다.

 

영생의 말씀(68/ 살과 피)


예수님은 남은 열 두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때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 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여기에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이 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만큼이나 중요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영생의 말씀은 곧 살과 피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육신의 살과 피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살과 피는 영생의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이시오, 살과 피는 그가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이라고 해서 3년 동안 공생애 기간 동안 하신 말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으로서의 예수님, 그분이 곧 하나님이시니, 3년 동안 하신 말씀뿐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모든 말씀이 살과 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살과 피를 마시는 일은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신 것인데, 지금 여기에서 작용하는 것이니 세 본체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가지 일을 위하여 일체로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한분밖에 없으니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영생의 말씀이 여기에 있사오니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더 이상 걸림돌이 될 수 없습니다. 영생의 말씀 예수님이시고, 그분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인 것입니다. 이것은 숫자적인 1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로서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배타적인 종교가 아니라, 포용하는 종교요, 모든 것을 포용할 때 생명의 종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기독교는 스스로에게나 이웃에게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걸림돌처럼 여겨지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그것을 먹고 마시십시오. 그래서 영생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로고스 하나님, 살과 피를 나눠 먹이시어 우리에게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여주신 신비스러운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하오나 주님, 주님의 말씀이 걸림돌처럼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그 걸림돌처럼 느껴지는 말씀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실황 ppt설교 걸림돌이 되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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