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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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12주/광복79주년감사주일] 새로운 생활규범

  • 관리자
  • 2024-08-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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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2주(20240811)
새로운 생활 규범
에베소서 4:25~5:2


선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이,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여러분 위에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해방 79년을 맞이하는 광복절 감사주일입니다.
광복절은 일제식민치하로부터의 해방이었으나 동시에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고, 5년 뒤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상처가 더 깊게 곪아터지는 상황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4년 현재 남과 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상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남북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 평화로운 조국을 위해서


에베소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민족이었음을 알고 서로 간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고, 서로에 대하여 나쁜 말을 입 밖에 내지 말고, 서로에 대한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을 내버리고, 서로 불쌍히 여기고 용서한다면’ 평화로운 나라는 절로 이뤄질 것입니다.
남과 북이 지금 이렇게 어려움에 직면한 이유는 위와 같은 삶이 아닌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상대방에 대한 거짓은 일상이 되었고, 적대감이 가득하니 나쁜 말이 입에서 나가고, 대남방속과 대북방송을 통해 서로에 대한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을 해대고 있습니다. 

이런 싸움은 어느 한 쪽만의 문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서로가 이런 적대행위를 멈추고 더불어 참된 말을 하고, 서로 나누어주고, 친절히 대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한다면 불가능한 것 같은 평화통일도 ‘주님의 손 안에서 하나가 되는’ 현대판 기적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친절하게 대하고, 불쌍하게 여기며, 용서하는 민족이 되게 하셔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시오.’ 기도해야 합니다. 새 길이 열리면, 상상할 수 없는 긍정적인 역사가 우리 민족 앞에 펼쳐질 것이고, 개개인의 삶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 새로운 생활 규범


오늘 읽은 말씀은 크게 해석이 필요하지 않은 말씀입니다. 
그냥 말씀 그대로, 문자적으로 받아들여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읽으신 분들은 ‘알긴 알겠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혹은 ‘나 혼자만 그렇게 살면 뭐하나, 상대편이 그렇게 살지 않는데 손해 보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늘 그렇습니다.
진리란, 살고자 하면 쉽지만, 행하지  않으면 어렵게 느껴집니다. 
‘새로운 생활 규범’은 생각으로 ‘그래, 그래, 맞아!’한다고 살아지지 않습니다.
새 사람, 거듭난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생활규범의 가치를 알고, 그 규범대로 살고자하고, 새로운 생활이 주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생활규범을 살펴보겠습니다.
 

■ 참된 말을 하라


참된 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참된 말=사실’과는 다른 차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거짓말’이 참말일 수도 있습니다. GOD가 불렀던 노래 중에 ‘어머니께’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의 경험을 담은 노랫말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라면이 너무 지겨워서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었어/그러자 어머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짜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니의 짜장면이 싫다’는 말은 ‘참말’이지만 거짓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거짓말을 다고 손가락질을 한다면,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지혜롭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참된 말을 하려면, ‘서로 한 몸의 지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말은 칼이나 창처럼 남을 베고, 찌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당장에는 시원한 것 같지만, 그 칼끝과 창날은 결국 자신을 향할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말은 생명을 살립니다.  새로운 생활의 규범으로 ‘참된 말을 하라’는 권면의 말씀은 신앙적인 차원까지 나갈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규범’이라고 한 것입니다.
 

■ 분노의 노예가 되지 말라


이번에는 ‘화’에 관한 말씀입니다.
‘분노’의 속성은 자신 스스로가 먹이를 주며 키운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분노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선각자들은 조언합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화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노하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무조건 참고, 화내지 않는 것을 미덕인 것처럼 배워왔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분노’를 잃어버렸고, 화를 유발하는 무례한 사람들을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분노를 생각해 보십시오.
분노하실 때에는 물불가리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 목사가’하면서 자신들의 무례함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화를 낼 줄 알아야 합니다.  화날 때는 화를 내십시오. 그래야 울화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매번 그렇게 대응하지는 마십시오. 매번 그렇게 대응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분노의 노예가 되고, 분노의 노예가 되면 분노가 자신을 삼킬 수 있습니다. ‘분노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씀도 신앙적인 차원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규범’입니다.
 

■ 수고하여 떳떳하게 벌라


‘수고하고 떳떳하게 일하는 것’도 신앙의 문제 이전에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할 기본이 되는 규범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말씀을 하면서 ‘도둑질’과 연결시킵니다. 그러니까 도둑질이란, 단순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뿐 아니라, 수고하지 않고, 떳떳하지 않은 방식으로 물질을 얻는 행위인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은 쉽게 부를 축적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수고하고 떳떳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합니다. 이러한 세상을 향해 유쾌하게 웃으면서 화를 내는 법은 ‘땀 흘려 수고하고 떳떳하게 일하는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물질을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돈의 많고 적음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궁핍한 자들뿐 아니라 부자들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수고하고 떳떳하게 일하는 삶은 자족의 삶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자족하는 삶은 우리를 감사의 삶과 나눔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이 역시도 신앙의 차원 이전의 삶의 규범입니다.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


30절 말씀에서는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로 번역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성령을 슬프게 하는 일인지는 31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악독, 격정, 분노, 소란, 욕설 같은 것들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삶이 아니라 웃음 짓게 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성령을 슬프게 하는 일들로 열거된 것들은 사실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너무 가깝다보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것이 어쩌면 인간사의 비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악독’이 제일 앞에 있는 이유는 ‘격정, 분노, 소란, 욕설’같은 것들은 모두 악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악독’이 무엇입니까? 독 중에서도 약으로도 쓸 수 없는 나쁜 독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까운 사람일수록 쉽게 생각하여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 서로 친절히 대하라


사무엘상 15장에는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멜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때, 아멜렉 진영에 있던 겐 사람들에게는 아말렉 진영에 있지 말고 떠나서 화를 면하라고 합니다. 겐 사람이 광야생활을 할 때 이스라엘에게 친절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준이 ‘친절했는지, 아닌지’에 달려있었던 것입니다.

친절은 불쌍히 여기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누군가를 불쌍하게 여기면 자기에게 섭섭하게 한 것조차도 용서하게 됩니다.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주는 것이 ‘친절’입니다. ‘측은지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뿐 아니라 우리와 연결되어있는 모든 것을 친절하게 대하십시오. 그러면 그들도 우리를 친절하게 대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우리가 용서받아야할 때 그들이 용서해줄 것입니다.
 

■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바울은 ‘새로운 생활 규범’을 제시한 후에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참된 말을 하는 삶, 분노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 수고하여 떳떳하게 일하는 삶, 성령을 슬프게 하지 않는 삶, 서로 친절하게 대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동시에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절기상으로는 입추가 지났습니다. 생활 속에서 사도 바울이 새로운 생활규범으로 제시한 말씀대로 사셔서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둠 기도]



주님, 우리에게 새로운 생활규범을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삶이란 유별난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서 참말을 하고, 스스로 분노의 노예가 되지 말고, 땀 흘려 수고하며 살아가고, 서로 친절히 대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깨우쳐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요, 하나님을 본받아 살아가는 삶이라 알려주셨으니 새로운 생활 규범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가을의 초입에 서 있습니다. 가을 끝자락 무렵에는 성숙한 신앙의 열매로 인해 기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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