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제9주(20240721)
'그 때'와 '이제'
에베소서 2:11~22

지난주에는 에베소서 1장 3~14절의 말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제목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그 후속편으로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우리들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장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 모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에 ‘창세전부터 우리를 향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신비하신 계획’이 이루어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표준새번역의 성서일과의 제목은 ‘하나가 되게 하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시다’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어디에 강조점을 두는가에 따라 다른 제목이 붙었지만, 하나가 되고, 화목하게 하신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흘리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11절에 ‘지난 날’과 12절의 ‘그 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날’ 혹은 ‘그 때’가 의미하는 바는 사망에 거할 때, 그리스도 밖에서 살아갈 때, 십자가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갈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기 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는 ‘할례’였습니다.
창세기 17장 10절에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전에는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지의 여부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시금석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할례를 받을 수 없는 여성은 물론이고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은 이들에게 무할례자라고 따돌림을 당했고, 심지어는 사람취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13).
지난주에 말씀드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이미 과거형입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 사건 이후 ‘그리스도 안에’거하는 모든 이들은 하나의 새 사람(15)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그리스도 밖에’ 거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무관한 ‘그 때’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12절의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삶은 성서일과 앞부분에 ‘세상풍조를 따라 사는 것(엡 2:2)’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육신의 정욕,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주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리스도 밖에서’ 살아간다면 ‘그 때’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는 ‘그 때’를 사는 사람인지, ‘이제’를 사는 사람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 때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인종적인 의미에서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저의 고민은 ‘이제’를 산다고 확신하는 분들 중에서 ‘그 때’를 살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교계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분들 중에서도 ‘이제’가 아니라 ‘그 때’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보십시오. 그래야 ‘그 때’에서 ‘이제’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 때’를 버리고 ‘이제’를 살려면 ‘그 때’에는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그것을 넘어 ‘이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에서 ‘명심하라’로 해석된 부분을 유진 피터슨은 ‘생각하라’로 번역했습니다. 무엇을 명심하고 생각해야 하냐면 ‘그 때’의 삶에서 ‘이제’의 삶을 살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은 것임을 생각하고,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할례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세상에서 소망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자기가 누리는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그 때의 삶과 이제의 삶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장에서 창세전부터 세우신 우리를 향한 계획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고백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13절에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하시어 신앙적인 문제로 갈등하던 이들이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새 사람이 되자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서로 갈등하고 반복하던 모든 것들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없애버리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하나님과 화해하는 순간 새 사람이 되었고, 새 사람은 평화의 사도로 살아갑니다. 서로에게 평화의 사도가 되니 원수처럼 으르렁 거리던 이들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18절에 중요한 말씀들이 나오는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간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를 위해 필요한 것을 삼위일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자를 통하여(through), 성령 안에서(in), 성부께로(to),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이제를 사는 삶의 나침반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삶은 이제를 사는 삶이요, 그렇지 않다면 회귀하여 ‘그 때’를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를 살아가는 이들을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20)’로 표현합니다. 그 건물의 모퉁잇돌은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런데 이 건물은 완성된 건물이 아니라, 연결되어,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건물 하나하나가 성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큐빗 건축물처럼 하나하나 연결되어 성전이 되고, 마침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이 거하실 처소, 즉 성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공동체의 의미에서의 성전입니다. 각기 다른 달란트를 가진 이들이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는 ‘주 안에서(21)’자라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성전이 아니라, ‘주 안에서’라야 성전입니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의미에서의 성전입니다. 한 사람 그 자체가 성령이 거하시는 처소, 성전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 역시도 ‘그리스도 안에서(22)’라야 성전이 됩니다.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이제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요즘 ‘인사이드2’라는 애니메이션이 극장가에서 화제입니다. 영화의 설정은 이렇습니다.
사람마다 감정컨트롤 본부가 있는데 거기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존재하며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열심을 냅니다. ‘인사이드 1’에서는 주인공 라일리의 감정에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가 등장했는데 결론은 ‘슬픔이 있어야 진정한 기쁨을 안다.’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인사이드2’에는 13세 사춘기 소녀로 자란 라일리의 감정을 다루고 있는데 1편에 없던 감정들이 추가됩니다. 사춘기에 누구나 겪는 불안, 당황, 부럽, 따분이라는 감정입니다. 여러 가지 감정들은 모두 필요한 것인데, 감정컨트롤본부에서는 주인공의 행복을 위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기억들은 다 지워버리려고 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내세워 라일리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감정컨트롤 본부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라일리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서 열심을 내다가 라일리가 점점 불행해지는 것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장면을 감동 깊게 보았습니다.
누구나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불안, 당황, 부럽, 따분 같은 감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감정 중에 나쁜 것은 없습니다. 서로 협력한 결과, 지금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감정에 휘둘려 살지 않는 삶, 그것이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인사이드 아웃’입니다.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다’라는 의미입니다. ‘안팎으로’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안팎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려면 ‘그 때를 넘어 이제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님에게로 향하는 삶이므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야할 것은 그 때의 삶에서 이제의 삶은 은혜로 된 것이지만, 그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 결정해야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때에 남을 것인지 이제를 살 것인지, 남은 것은, 여러분의 결단뿐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때'와 '이제'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사람입니다.
[거둠 기도]

어둠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던 우리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바로 세워주신 하나님, 주님은 우리에게 그 때의 삶에 머무르지 말고 이제의 삶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이미, 우리 앞에는 이제의 삶의 펼쳐져 있지만, 그 때의 삶에 머뭇거리며 살아갑니다. 우리를 붙잡아 주시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게 하옵소서. 이 교회를 축복하여 주셔서, 서로 연결되어 주님의 아름다운 교회를 이뤄가게 하옵소서. 그 때의 삶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