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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8주] 그리스도 안에서

  • 관리자
  • 2024-07-1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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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8주(20240714)
그리스도 안에서
에베소서 1:3~14


에베소는 오늘날의 튀르키에(터키)의 이즈미르 근처에 자리한 항구로, 이스탄불, 앙카라와 더불어 터키의 3대 도시 중 하나였고,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하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보낸 편지로, 하나님을 믿는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신비한 역사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음을 밝히는 편지입니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복(3~14)


성서일과로 주어진 오늘의 본문은 이후에 다양한 신학적인 주제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먼저 4~5절과 11절의 말씀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빈이라는 신학자를 통해 ‘예정론’이라는 심오한 신학적인 사상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등장하므로 ‘삼위일체론’을 설명하는 중요한 본문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그리스도인 혹은 교회의 목적은 10절에 말씀대로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임을 밝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뜻이니 이것을 아는 이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라는 부분을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번역하여,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은 곧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 개인적인 경험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목사가 될 것인지 아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목사가 뭔지를 알고 나니 다른 길을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다시 한 번 통독을 한 뒤에 결단하기로 작정하고, 한 학기 내내 강의도 안 들어가고 학교에 가면 등나무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 성경책을 읽었습니다. 공동번역으로 성경통독을 했는데, 어느 날, 에베소서 1장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이 계속 반복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찬양을 드립니다’가 아니고 ‘찬양할 수밖에 없다’니 무엇 때문일까 묵상하며 천천히 다시 읽는데 4절의 말씀 ‘천지 창조 이전에 우리를 뽑아주시고’라는 말씀 한 자 한 자가 참외만한 크기로 보이는 겁니다. 

환시가 보이나 싶어 눈을 비비고 발밑을 바라보니, 개미들이 장마를 대비하느라 분주하게 집 주변에 흙을 쌓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뿐만 아니라, 이 개미들도 천지 창조 이전에 계획을 갖고 이 땅에 내어놓으신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심지어는 내가 싫어하는 이들 조차도 다르지 않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은 점점 확장되어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아름답고 선한 것이니,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아름다운 것이고, 의미 있는 것이구나 하는 통전적인 깨달음이 왔습니다. 천지 창조 이전에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나라는 존재가 엄청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저 작은 개미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조차도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창세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깨우쳐주는 것이 목회라고 할 때, 목사직은 참으로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기로 결단했고, 남은 과정을 잘 마치고 29년 전인 1995년에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 이미 배는 도착했다


에베소(이즈미르)는 항구도시라고 했습니다. 3절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데,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주셨습니다.’는 완료형입니다. ‘주실 것입니다’라는 미래형이 아니라, 이미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배가 항구에 이미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도착했으니 승선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미 선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받은 선물의 기쁨을 누리려면 포장지를 뜯고 선물을 확인하는 일만 남은 것이고, 배를 타고 여행지를 향하려면 도착한 배를 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배가 도착했는데도 타지 않고, 선물을 받고서도 포장지도 뜯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셨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외로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미 도착한 배를 타지 않고, 이미 받은 선물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그러면서 심지어는 배가 오지 않는다고, 선물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까지도 한다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런데 신앙적으로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in)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이 모두 소중하지만 가장 중요한 단어를 찾으라면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무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여덟 번이나 반복되고 있으며,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는 ‘그리스도를 통하여’까지 하면 ‘아홉 번’이나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세우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모든 선한 계획과 신령한 복과 은혜, 지혜와 총명, 신비한 뜻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작용으로 이루시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뜻과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집니다. 누구에게나 귀하신 뜻과 계획을 갖고 계시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누누이 강조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땅의 시간과 하늘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이런 내용을 전했습니다. 

말씀의 이런 일관성은 제가 계획해서 혹은 성서일과가 그렇게 배열이 되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관성은 제가 계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일관되게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할 것인지 아닌지’는 사람의 결단이지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고 그 사랑 안에 거하기를 원하시지만, 결단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하셨고,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있는 온갖 신비로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복(4)


4절의 말씀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다’고 하십니다.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사람의 가치기준으로 성공한 사람이 곧 하나님의 가치 기준에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세상적인 성공과 신앙적인 성공 모두를 바랍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의 성공이나 가치를 포기할 때가 더 많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신앙이 세상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세상적인 성공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지 않은 세상의 성공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 다 얻지 못할 때에 우리는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의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분들 되길 바랍니다. 이런 삶을 살려면 ‘그리스도 안에’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이 누리는 영적인 복,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거저 주신 은혜(6)


하나님의 계획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고,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거저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찬미’ 혹은 ‘찬양’은 음악적인 요소의 찬미와 찬양을 포함하지만, 그것을 넘어 삶으로 드리는 찬미와 찬양을 의미합니다. 내가 가진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내가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면 물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를 잘 사용하는 지혜로운 이들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것입니다.’라는 깨달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에 오는 것입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는 행위가 예배이며, 예배를 통하여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세우신 계획을 깨닫고, 다짐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여러분을 향하여 세우신 계획을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심으로 그 신비스러운 계획을 이루시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창세전부터 우리를 향한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품어주시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들이 열매 맺게 됨을 알게 하셔서, 우리의 삶에 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비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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