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제7주/ 맥추감사주일(20240707)
하늘의 시간 VS 땅의 시간
시편 57:1~1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일곱 번째 주일이며,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꼭 지켜야할 절기 세 가지를 명령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출애굽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 유월절이 지난 후 50일째 되는 날인 칠칠절, 곡식을 갈무리하여 저장한 후에 지키는 수장절입니다.
칠칠절은 유월절이 지나고 오십일 째 되는 날이라서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오순절 무렵은 보리를 추수하는 계절이기도 해서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맥추절로 해석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날 맥추감사주일의 의미를 추수의 의미보다는 한 해의 상반기를 결산하고 하반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절기로 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처럼 농업을 기반으로 삼는 사회가 아니라 도시화되어 보리, 추수 같은 개념이 잘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 시편 57편

시편 57편은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동굴에 있을 때 지은 시입니다. 제목을 보면 ‘지휘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추어 부른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알다스헷’이란 ‘파괴하지 말아라.’는 뜻입니다. 음조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찬양을 할 때에 절박하고도 진실한 마음으로 담아 화음을 잘 맞추어 부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시편 57편의 구조를 살펴 보면, 1~4절은 도움을 구하는 기도, 5절과 11절은 후렴구, 6절은 원수의 멸망에 대한 확신, 7~10절은 승리한 사람의 찬양으로 이뤄져있습니다.
저는 1~4절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땅의 시간’ 즉 ‘사람이 일해야 하는 시간’으로 보았고, 6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일로서 ‘하늘의 시간’으로 보았습니다.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하모니를 이루어 7~10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57편의 시는 이렇게 ‘하늘의 시간과 땅의 시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조화를 파괴하지 말라, 그래서 ‘알다스헷’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일 것입니다.
우리 삶에 광풍이 불어올 때가 있습니다. 광풍 앞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모든 가능성이 다 무너진 것 같은 때에 우리는 “하나님, 우리의 삶에 개입해주십시오!” 부르짖게 됩니다. 어려운 시절을 지날 때에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그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금의 일조차도 할 수 없는 때, 인간의 가능성이 모두 끝난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으로 들어오시어 도우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을 때는 사람이 하게 하시고, 사람이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오경웅은 <시편사색>에서 ‘하나님이 붙어 작용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시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이들에게만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삶의 여정에서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막연하게 망연잣실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이제 나의 시간을 끝내고, 하나님의 시간이 시작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때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됩니다.
김수영 시인은 <풀>이라는 시에서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눕는 풀을 노래합니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선다.”
이 시를 통해서 ‘버티는 것’만 능사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피하기 위해 누워야하고, 피해야 하고, 너무 힘들어 울기도 하지만,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줄기를 세우고 일어나는 풀처럼 일어나면 되는 것입니다. 바람에 맞서다 뿌리 째 뽑혀나가는 나무만 멋진 것이 아니라, 연약한 풀처럼 사는 것도 지혜라는 것입니다.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민초’라는 희망의 단어가 있습니다.

최근 화성리튬건전지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으로 숨진 이들, 시청 앞 도로에서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한 순간에 목숨을 잃은 이들, 남북의 긴장관계, 고령화사회를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전망,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쟁만 일삼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시대가 참으로 어둡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둡다고 망연자실하지 말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향해 난 창문 앞에 엎드려 하루 세 번씩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정성껏 예배를 드려야 이 나라에 여명이 밝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어난 일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망연자실하지만, 그 일을 놓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개입하시어 하늘의 시간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인간도 그 중 하나요, 창조의 동역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농부로 상징되는 하나님께서 씨를 뿌립니다. 씨를 뿌린 후에는 그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냥 땅이 알아서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추수 때가 되면 농부는 추수를 합니다. 여기에서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는 시간을 ‘하늘의 시간’으로 볼 수 있고, 농부가 모르게 땅이 씨앗을 품고 줄기를 내고 이삭을 내고 열매를 맺도록 작용하는 시간을 ‘땅의 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조화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미루고,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셔야할 영광을 자기가 가로챕니다. 그래서 본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길을 자기의 멍에를 매고 걸어가는 사람들인데, 그것 없이 부활의 영광만 좋아하는 이상한 무리들이 되어 세상의 조롱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야만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을 ‘하늘의 시간’이라고 표현해 보았습니다. 2절 말씀에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내가 부르짖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엘로힘’의 번역입니다. 엘로힘은 하나님 중에서도 ‘로힘’, 즉 가장 높으신 ‘엘’,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지금 자기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이 쳐놓은 그물과 함정에 한 가운데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기도합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바람이 불면 풀이 눕듯이 나를 굽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하늘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바람이 멈추고 풀이 일어나듯 반드시 우리를 일어서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견디는 것, 그래서 도종환 시인은 <겨울나무>라는 시에서 ‘하루하루 견디는 것이 실력’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열심을 내면서 견뎌야할 땅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을 열심히 살아본 사람들만이 자기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의 시간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는 사실 ‘하늘과 땅’이라는 구분이 없을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 어디나 하늘 나라’라고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시인은 그냥저냥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고 합니다. 이런 고백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고난과 절망 속에서, 사방을 적들이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 이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시인의 마음속에 빛이 스며든 것입니다.
어떤 빛입니까? 시인을 죽이려고 파놓은 함정과 쳐놓은 그물에 그들이 걸리고 빠질 것이라는 자각이 온 것입니다. 그 자각이 오니 시인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습니다.
새벽은 하나님의 은총이 도래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맞이하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잠자는 사람은 새벽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씨를 뿌린 농부에게만 추수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2024년 하반기에는 상반기에 뿌린 씨앗들이 자라 열매 맺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아직 뿌린 씨앗이 없다면, 심기일전하여 씨앗을 준비하여 뿌리기 바랍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시 126:5).”는 말씀이 성취되는 2024년 하반기가 되길 축복하며 맥추감사주일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거둠 기도]

2024년 절반의 시간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 2024년 새롭게 시작된 절반의 시간을 보람되게 살게 하옵소서.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땅의 시간을 제대로 살아 하늘의 시간이 우리 삶에서 작용하게 하옵소서.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땅을 일구고 가꾸며 추수를 기다리는 지혜롭고 성실한 일꾼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순간은 하늘의 시간이 열리는 시간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때 주님께 기도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오늘 함께 예배하며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성만찬을 나누며, 말씀을 나누는 우리 모두에게 하늘의 시간을 살아갈 가능성을 열어주신 것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