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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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4주] 없이 계시는 하나님(ppt음성설교)

  • 관리자
  • 2024-06-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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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4주(20240616)
없이 계시는 하나님
마가복음 4:26~32


 

오늘은 성령강림 후 네 번째 주일입니다. 
어느새 나뭇잎이 짙어지는 계절, 청년의 계절이라 불리는 6월도 중순입니다.
자연은 봄여름가을 겨울 사계절이 순환하지만, 필멸의 존재인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단 한 번’ ‘일기일회’입니다.
평생에 단 한 번 만남, 또는, 단 한 번뿐인 일이라는 뜻으로 일본 전국시대의 다도계(茶道界)의 유명인인 센노 리큐가 남긴 말이라고 합니다.

어느 계절도 다 아름답고 의미가 있는 것처럼 인생의 계절 어느 시기를 살아가더라도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절마다 간직한 아름다움을 보려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 너머의 중심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의 눈’을 뜨는 일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 성서일과의 공통주제


이번 주 성서일과를 다 읽지는 못했지만, 공통적인 주제에 초점을 맞춰 말씀을 읽었습니다.
먼저 사무엘상 16장 17절은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는 말씀이고, 시편 20편은 이 말씀에 따라 사울의 뒤를 이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 왕의 승리를 비는 용비어천가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의 말씀은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고린도후서 4장 16절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느니라.”는 말씀입니다.

노년의 권사님들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요즘 몸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조금 빌빌 거려서, 반성하고 열심히 몸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고,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우리 노년의 권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얼마나 힘드실까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더 간절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 모란 허정윤


사택 거실에는 모란 허정윤 권사님의 작품이 한 점 걸려있습니다.
6월 초, 몸이 좀 안 좋아 누워있었는데, 벽에 걸어둔 권사님의 작품이 보이는 겁니다.
‘붓글씨를 참 잘 쓰신다.’ 감탄하다가 요한3서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 메모로 남긴 글을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주보 ‘생각 나눔’에도 있습니다.
 

‘모란 허정윤 권사님’이 직접 쓰고 만들어주신 액자가 거실에 있다. 
요한3서 1장 2절의 말씀이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영혼이 제대로 섰으니 범사에 감사할 것이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두려움 없을 것이니 강건할 것이다. 영혼이 잘 되려면 불평과 불만을 내려놓고 감사하는 삶으로 나아가야하는데, 혼자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니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고, 성령의 구하심을 바라니 성령 안에 거하게 되고, 성령 안에 거하는 이들은 예수 안에 거하게 된다. 예수 안에 거하는 증거는 이웃에게로 가는 것이고,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에 이른다. 예수 안에(in), 이웃에게로(to), 이웃을 통하여(through)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렇다. 하나님이 부재하는 것처럼 내 몸이 아프지만, 없이 계시는 분이시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 감사는 영혼을 맑게 하는 정화수다. 오늘 첫 번째 감사는 오늘을 당연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경이로 감사로 맞이하며 사는 것이다.

 

■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이 말씀을 간단하게 축약하여 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영혼이 제대로 잘 서 있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것이고,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없을 것이고, 모든 일이 잘 된다고 하는 것은 세상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이런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게 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니 성령 안에 거하게 됩니다.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고, 예수 안에 거하는 증거는 그가 이 땅에서 함께 하셨던 이들에게로 가는 것이고, 그 이웃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니 우리의 육체는 날로 쇠퇴하지만 강건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의 말씀에는 겉사람과 속사람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겉모습이 쇠퇴할수록 속사람을 가꾸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십시오. 젊을 때보다 더 열심히 해야 고정관념이나 굳은 신앙에 머물지 않고 부드러운 영을 갖게 될 것입니다. 부드러운 영, 이것이 영혼이 잘되는 일입니다.
 

■ 씨앗, 생명을 품은 존재


‘씨앗과 겨자씨’, 작지만 그 중심에 생명을 품고 있기에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다른 성서일과의 본문들에서 강조하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과 연결점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현대사회는 외형지상주의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많이 보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속내를 가꾸는 일보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치중하게 됩니다. 이런 세상이므로 의도적으로 속내를 가꾸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농부에게 씨앗과 겨자씨가 생명을 품고 있어서 중요한 존재인 것처럼, 우리도 마음에 생명을 품고 있어서 하나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면, 농부가 굶어 죽을지언정 종자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돌아보십시오. 내가 마음에 품은 씨앗이 자라면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가? 선한 열매가 기대된다면,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 스스로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


오늘 비유의 흐름 중에서 농부의 행동을 잘 살펴보면, 농부가 땅에 씨앗을 뿌립니다.
그런데 그는 씨앗이 싹터서 자라는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어떻게 그들이 싹을 내고 이삭을 내고 낟알을 내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씨앗을 뿌린 다음에 농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던 농부는 알찬 낟알이 익으니 즉시 추수합니다. 

적대자들에게 둘러싸인 예수님,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 미친 것이 아닌지 의심받는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일까요?

이 비유는 예수님이 체험하신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게 하신 사건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농부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 활동을 하실 때 짐짓 부재하시는 듯 하나님의 권능을 별로 드러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바대로 부활이전의 예수님은 철저하게 사람이셨고,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붙들려 살았고, 순종했기에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실 때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는 절규를 생각해 보십시오. 온갖 조롱과 고통 속에서 예수님도 ‘부재하시는 듯한 하나님’을 느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그때가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작은 씨앗이 싹을 내고 이삭을 내고 낟알을 맺는 것처럼 은밀하게 성장되어 마침내 완성된다는 것이 이 비유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를 통해서 ‘없이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통찰을 얻는 것입니다. 동양의 위대한 사상가 류영모 선생의 고백을 빌려온 것입니다.
 

■ 겨자씨 비유

겨자씨는 정말 가장 작은 씨앗이 아니라 작은 것의 상징입니다. 당시 백향목과 대비되는 것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단하게 주제의 핵심을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처럼 작게 시작하지만 점점 커져서 마침내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스는 이것을 ‘굉장한 대조, 보잘 것 없는 시작이었지만 장대한 결말’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굉장한 일은 지극히 작은 씨앗 안에 들어 있고, 그 작용은 지금 비밀스럽게 진행 중이기 때문에 ‘마음의 눈을 뜬’이들에게만 은밀한 하나님의 나라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신비는 너무 보잘 것 없고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적대하던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시작되었고, 시작되었기에 멈출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더 커질 것이라는 것이 이 비유의 뜻입니다.
 

■ 없이 계시는 하나님


그 나라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그분은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인식 안에  가둘 수 없는 분, 현존하지만 초월해 계시는 분이라서 그 분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없이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것 같지만,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도 지금은 요원한 것 같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 없이도 세상이 잘 굴러가는 것 같지만, ‘없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를 이끌어가고 계신다는 믿음을 지키십시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을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감사하며, 강건한 삶을 살아가도록’ 성령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이 눈여겨보시는 사람들이요, 마음에 하나님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겉사람이 낡아진다고 탄식하지 않고, 속사람을 매일매일 새롭게 하고자 힘씁니다. 그래야, 마음이 굳어지지 않고 부드러워집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생명의 씨앗을 품습니다.
그 생명의 씨앗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없이 계시는 하나님’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놀라운 열매로 자라나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믿음 가지고 한 주간도 힘차게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없이 계시는 하나님, 그러나 당신은 부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항상 계십니다. 우리가 영의 눈을 떠 그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부재하시는 듯한 세상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삶을 힘겹게 하는 수많은 일들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없이 계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임마누엘,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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