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20240519)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
로마서 8:22~27

오늘은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성령의 강림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기원은 ‘50’이라는 숫자와 관련이 있습니다.
70인역 성경에서 ‘50번째’라는 뜻을 헬라어 ‘펜테코스테’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이 오순절입니다. 칠칠절은 유월절로부터 7주가 지난 후의 절기인데, 맥추절, 초실절,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이때에는 이집트에서 종살이했던 것을 기억하고 해방된 삶에 감사하며 이웃과 함께 즐거움을 나눠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서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자 이들은 성령이 충만하게 되어 복음을 본격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날은 성령강림절 혹은 성령강림주일이라고 합니다. 올해 부활주일은 3월 31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50일에 가장 근접한 주일인 오늘이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은 초대교회가 시작된 주일이기도 합니다.
성령강림절이 ‘50’이라는 숫자와 관련이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유월절로부터 7주가 지난 후의 절기인 칠칠절과 같은 절기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까 50일이 지난 후이므로 ‘오순절’이라는 절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초실절은 무엇입니까? 처음 열매를 거둔 것을 감사하는 절기가 초실절이고 보리는 곡식 중에서 가장 먼저 추수합니다. 그러므로 초실절과 맥추절도 성령강림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칠칠절, 오순절, 초실절, 맥추절, 성령강림절은 다른 이름의 같은 절기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서일과 로마서 8장 23절에서 고통 속에 탄식하는 우리를 가리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로 부르는데, 여기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절은 첫 열매를 드리는 초실절과 맥추절과도 의미가 상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이름이지만, 같은 절기라는 것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잊지 말아야할 것은,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성령강림절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은 자들이 지키는 절기라는 점입니다.
성령(holy spirit)은 ‘거룩한 영’입니다.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이 거룩한 영은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셨습니다. 초대교회가 형성되고 교리가 만들어지면서 신학자들은 ‘삼위일체’교리로 하나님을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역사하시는 형태에 따라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님, 예수,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자 예수님을 보내신 분은 성부 하나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 부활승천하신 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 이렇게 구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삼위는 각기 독자적인 존재가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삼위일체교리의 핵심입니다. 제가 가정에서는 아버지로, 교회에서는 목사로, 아내에게는 남편으로 불리지만 한 사람이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삼위가 각기 다른 존재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말이 “성령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이고, ‘성령’은 뭔가 열정적이고 뜨거운 것, 혹은 ‘방언’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분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모두 성령을 받았고,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기에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령 받은 사람은 별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세상에 살지만 다른 방식으로 삽니다. 속세를 떠나서 사는 것이 아니라 속세에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聖)’이라는 한자어를 보십시오. ‘거룩할 성’자인데, 거룩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성경의 언어로 풀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입으로 시인하고, 삶으로 사는 것’, 이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지 않으므로 ‘구별된 삶= 거룩한 삶’입니다.
‘거룩’은 히브리어로 ‘코데쉬 קֹדֶשׁ’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사람,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거룩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안디옥교회 교인들에게 붙여졌던 별명 ‘그리스도인’은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사람들이고, 거룩한 사람들이므로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사는 곳은 별세계가 아니라, 성부이신 하나님이 사랑하셨고, 성자이신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셨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계시는 이 세상입니다.
병행본문 에스겔서를 통해서 바라보는 이 세상은 에스겔이 환상 속에서 보았던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와도 같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피조물이 고통 가운데 탄식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 모든 피조물이 고통을 당하는 현실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거대한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무기 수출과 전쟁으로 유지되는 세계경제, 일상적인 전쟁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가는 사회적인 약자들, 전쟁을 이용해서 자기의 권력을 공고하게 유지하는 이들, 기아로 죽어가는 이들이 있음에도 식량가격을 조정한다고 바다에 식량을 버리고,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일등이 독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자연의 일부에 불과한 인간이 지구공동체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피조물들이 말할 수 없는 탄식할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저는 늘 고민합니다. 그래서 끝난 것일까?
그러나 하나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은 자들, 그루터기가 있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했기에 반드시 선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1989년생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미국의 싱어송 라이터가 있습니다.
우리 나이로 34세인가요?
스위프트는 미국의 빌보드차트의 역사를 바꿨다는 평을 받을 정도이고, 이번 미국 대선에 그녀가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지 알려지면, 그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유명한 가수입니다. 저는 이 가수를 좋아하지만 그의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고, 이미지를 몇 번 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인기그룹이나 가수도 잘 모르는 제가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가수를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을까요? 그녀가 일 년간 미국 투어로만 1조 3천억 원의 흥행수익을 남겼다고 하니, 그녀가 콘서트 한 번에 얼마를 버는지 가늠이 안 됩니다. 그런데 한 번은 콘서트를 마치고, 그녀의 몫으로 주어진 개런티를 단 한 푼도 챙기지 않고 음향, 밴드, 무대조명, 댄서와 스텝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돈은 무려 173억이었는데 무대장비를 나르는 기사로 일했던 한 운전기사는 1억 3천만 원을 받았답니다. 그는 아들 대학 등록금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로인해 이들의 대학등록금을 해결했을 뿐 아니라, 만성적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콘서트나 드라마나 무슨무슨 대회가 열리면 주인공이나 일등이 대부분을 독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닙니까? 자기 혼자 80%를 독식하고, 나머지 99명이 20%를 가지고 나눠 갖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의 가치와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 삶을 살아가기에 저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단 한 곡도 모르지만 팬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2절에서 ‘모든 피조물이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창조 세계를 둘러보니 모두가 ‘해산을 앞둔 임산부’와 같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므로 ‘해산의 고통’은 두려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태어날 자녀에 대한 기대를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일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 말씀을 따라 살 때 어떤 열매가 맺을지 알기 때문에 ‘해산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며, 인내하며 거룩한 길을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결심을 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길 원하지만, 연약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 성령께서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신다(26)는 것입니다.
왜 우리를 도와주십니까?
23절에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첫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연약할 때에 그냥 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를 도와주실 때,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실 때(27)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까지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26). 이것이 은혜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어떤 삶이 펼쳐질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해산을 앞둔 여인처럼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해산의 두려움이 자녀를 낳은 기쁨을 능가할 수 없고, 자녀를 낳는 순간 그 고통은 자녀를 나은 기쁨과 견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비유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품을 ‘소망’을 우리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24), 그래서 소망하지만,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소망이 바른 소망이라면, 성령께서 이뤄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말씀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수고하고 땀 흘리고 계획하는 일들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사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켰는지 아닌지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고자할 때에, 성령께서 도우셔서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만일, 내 뜻과 계획만 추구한다면,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딱 그만큼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생각을 넘어선 하나님의 축복 안에서 살아가는 복된 분들 되길 바라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거둠 기도]

주님, 우리에게 성령의 계절을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 우리의 생각을 넘어 우리가 알지 못하던 필요와 그 이상의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말씀을 향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자 할 때에,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고대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고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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