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20240324)
예수님처럼 사십시오
빌립보서 2:5~11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에 군중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환영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군중들의 기대감을 온 몸에 받으며 환영받으셨지만, 며칠도 되지 않아 군중들에게 버림을 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십니다. 이 환영과 버림이라는 상반되는 상황을 예수님은 묵묵히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사건이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사용(행 11:26) 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그들의 말, 행동, 활동이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여기서 그 길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 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 길을 바로 가려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가 어떤 말씀을 하셨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셨는지, 그가 공생애기간에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묵상하고 깨달은 말씀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알고 순종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교회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초대교회 교인들을 보니 가히 그들의 삶이 예수님의 삶을 보는 듯했기에, 그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붙여준 명칭이라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칭찬받는 이름이었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높여 부르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2024년 대한민국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위치는 어떠합니까? 2023년 교회의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매우+약간)은 21.0%로 우리나라 국민의 5명 중 1명만이 한국 교회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코로나사태가 일어나기 전보다 10.8%p 더 낮아진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코로나 이후에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더 나빠진 것입니다. 이렇게 신뢰도가 떨어진 이유는 교회가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제대로 걷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보인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활동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되셔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 배워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정리하면, 자기를 비우고, 낮추고,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비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낮춘다는 것은 무엇인지,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는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 주신 태도(5)’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과 같이 되신 분(7)이셨기 때문에, 사람도 능히 예수님이 하셨던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이시니까 가능했지”하며, 실천하지 않는 자신의 신앙을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모두 ‘사람이셨을 때’하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처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는 중에 우리의 신앙도 성숙을 향해 갈 것이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배워야할 예수님의 태도는 첫 번째로 ‘자기를 비워서’입니다. 저는 이것을 ‘비움의 영성’이라고 고백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채우는 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채우고 채워도 부족한 것이 세상의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식도 그렇고, 심지어는 신앙도 그렇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명저를 통해서 ‘소유하는 삶과 존재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구나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하면서도 일, 돈, 명예, 위신,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다 허비해서 존재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기준을 따라 온갖 풍요를 구하다 지쳐서, 정작 자신들을 자유롭게 하는 광야의 신 야훼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앞에는 비우는 삶과 채우는 삶이 놓여있습니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는 각자의 결단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땅히 자기의 것이었던 특권도 버리셨습니다. 그 길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스스로를 비우고 우리의 특권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이들은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운 결과 종의 모습을 취하셨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7).
우리는 자신을 비우면, 더 좋은 것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내려 놓으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이다.”라고 설파합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비운다는 것, 낮아진다는 것은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서 더 채우고, 높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낮아지는 것이고, 결핍의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래야 진짜로 비운 것이고, 낮아진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떠오릅니다.’ 이 떠오름은 높아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선물입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이런 차원의 신비를 ‘삶으로 떠오르기’라고 표현했습니다.
낮아짐의 영성이란, 내려놓기입니다. 예수님이 마땅히 자신의 것이었던 ‘하나님’이라는 특권을 내려놓았을 때, 부활이라는 신비한 삶이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특권을 내려놓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이 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내려놓기’를 실천해 보십시오.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서운함, 권위, 책임감, 공부, 심지어는 사명감’도 잠시 내려놓으면,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면 새 길이 보입니다. 그 길이 예수님께서 인도하는 길이요,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고 고백합니다. 아무리 예배를 열심히 잘 드려도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는다고 해도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제대로 순종하려면,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해석해서 신앙의 지침으로 삼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설교자의 선동에 무조건 “아멘!”하는 것도 순종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순종해야하는지를 분명히 아셨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결과로 고통과 죽음을 향해 가셨습니다. 그런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통과 죽음을 통과제의라고 합니다. 그것 없이는 부활의 영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순종하면 바로 영광 받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엔 아픔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즐겁고 행복한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고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개역성경에 “이 마음을 품으라!”로 번역된 말씀은 표준새번역 성경에서 보듯이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태도를 배워라’로 번역하면 그 뜻이 분명합니다. 단지, 마음먹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태도의 변화가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철학자이며 심리학자로 유명했던 윌리엄 제임스(1842-1910)는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라고 말했습니다. 삶을 바꾸려면 단지 마음먹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읽은 말씀을 요약하면,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겸손한 태도를 본받아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 다 된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 태도의 변화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으로 삶의 태도가 변한 사람,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둠 기도]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태도의 변화 없이, 삶의 변화 없이 살아가는 데 익숙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태도를 갖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태도를 보고, 세상 사람들이 ‘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칭송하게 하옵소서. 주님, 그리스도인답게, 교회답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이들이 비록 적어도, 그루터기만큼만 남았더라도 선한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비우고, 낮추고, 순종하고자 할 때에 우리의 삶을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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