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넷째 주일(20240310)
불 뱀과 구리 뱀
민수기 21:4~9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민수기는 시내광야에 머물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로 인구조사와 병적조사를 통하여 ‘백성들의 수를 세었다’라는 의미를 담아 ‘numbers’로 번역되었습니다. 백성 민(民)과 셀 수(數), 계수에 대한 기록이라는 의미를 담아 ‘민수기’입니다.
출애굽한 이후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을 꽉 채운 후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지만,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무혈입성이 아니라 정복전쟁의 성격을 가집니다. 걸어서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40년이 걸렸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노예근성을 벗어버리는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오늘 읽은 불 뱀과 구리 뱀의 이야기에서 구리 뱀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상징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더 많이 알려진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는 사순절기에 적합한 성서일과인 것입니다.
4절에 ‘그들이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에서부터 홍해 길을 따라 나아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때는 광야생활 38년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그런데 ‘홍해 길을 따라 나아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홍해’가 갈라진 사건이 언제 있었습니까? 출애굽을 한 직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출애굽한지 38년이나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 근처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니겠습니까? 돌고 돌아 거의 제자리걸음인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의 마음이 조급해졌고, 날 선 마음이 되니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원망할 뿐 아니라 그동안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던 ‘만나와 메추라기’도 진저리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불 뱀을 보내 그들을 물어 죽입니다. 그제야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모세에게 기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으라고 합니다. 그러자 불 뱀에게 물린 사람들도 구리로 만든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는 내용입니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되는 단어, 그것은 에돔, 조급함, 원망, 거짓말, 깨달음, 구리 뱀입니다.
먼저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가 이룬 족속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이스라엘과 형제의 나라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길을 터주지 않은 다른 민족은 잔인하게 보복을 했습니다. 하지만, 에돔은 길을 비켜주지 않았어도 형제의 나라요, 야곱의 형 에서도 축복을 받았으므로 돌아서 가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바벨론에게 유다가 멸망당할 때, 돕지도 않고 그 틈을 타서 영토를 확장하는 등의 일로 오바댜 예언자를 통해 심판을 선고받습니다. 그리고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당한지 5년 뒤에 멸망당합니다. 오바댜는 에돔의 멸망 원인이 ‘형제의 나라가 망했는데도 잘 되었다 비웃고 돕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본래 한 형제였던 이스라엘과 에돔의 관계를 볼 때마다, 분열된 이 나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화통일의 길은 묘연하지만, 교회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지름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우회함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한 더 좋은 위치를 점유할 수 있었지만, 당장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조급해지면 생각에 날이 섭니다. 날이 선 생각이 남을 향하게 되면 ‘원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느냐?” 이렇게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로 확대되어 거짓말을 만들어 냅니다. “먹을 것도 없다. 마실 것도 없다. 이 보잘 것 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고 합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다고 하면서 ‘진저리가 나는 보잘 것 없는 음식’이 있다는 모순적인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것은 결코 보잘 것 없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생활을 하며 끊임없이 이동해야하는 이들에게 그것만큼 좋은 음식은 없었을 것입니다. 음식을 나르기 위한 수고 없이도, 매일 공급되는 신선한 최고의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이 원망을 낳고, 원망은 거짓말을 낳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배워야할 것이 있습니다. ‘조급함’에 관한 것입니다.
철따라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맺히고, 익습니다. 과정이 필요하고, 이 과정은 서두른다고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든 일을 할 때에 조급함으로부터 벗어나십시오. “모든 것은 때가 있다”라는 전도서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천천히, 느릿느릿 달팽이의 지혜를 배우십시오. 천천히 자라는 나무의 지혜를 배우십시오. 오랜 시간 인내하다 제 철에 피어나는 자연으로부터 배우십시오. 자녀들에 대해서도 대기만성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천천히 기다려 주십시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속히 들어가고 싶은 조급한 마음 때문에 나중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우회해야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거짓말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일상에서 조급함을 버리고 천천히, 느릿느릿, 느긋하게, 모든 것을 때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음

이스라엘이 원망하고 거짓말을 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불 뱀을 보내셨습니다. 사막지대에는 독사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독사가 창궐하여 독사에 물려죽는 이들이 속출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라고 하십니다. 독사에게 물렸어도 구리 뱀을 쳐다보는 이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죄에 대한 각성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주님과 어른을 원망함으로써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은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죄인이라는 인식, 여기에서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죄의식에 빠져 살아가면 안 되겠지만, 죄에 대한 인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죄인 중에 괴수’라는 자각이 있어야지만,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구리 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독사에게 물렸더라도 구리 뱀을 쳐다보는 이들은 죽지 않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들은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입니까? 아마, 오늘날 뱀에게 물린 사람에게 구리 뱀을 쳐다보면 된다고 처방하는 의사가 있다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아니, 미친 의사일 것입니다. 오늘 날에는 해독제가 있으니 그것을 사용해야겠지요. 우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과 은혜도 말로다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지혜를 찾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어도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물론, 무조건 믿어라, 신앙은 비합리적인 것이고, 비이성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신앙은 그것만으로 다 설명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구리 뱀 자체가 능력이 아닙니다. 구리 뱀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자체가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일하시는 것입니다. 구리 뱀이나 십자가각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을 숭배한다면 ‘우상 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구리 뱀과 십자가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스며들게 하시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불 뱀을 보내셨지만, 구리 뱀을 통해서 용서하시고 치유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조급증에 빠져 원망하고 불평하던 이스라엘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불 뱀을 보내신 목적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도 불 뱀에게 물릴 때가 있습니다. 내 잘못 때문에 물리기도 하고, 그냥 물릴 수도 있습니다. 광야에는 독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우리를 끝장내시려는 시간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시려는 시간임을 기억하십시오.
삶의 여정에서 조급함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며 구리 뱀,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독사에 물렸어도 구리 뱀을 바라본 이들이 살았던 것처럼,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는 분들은 불 뱀이 득실거리는 세상 속에서도 넉넉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주님, 이 세상은 참 아름답기도 하지만, 또한 광야와도 같아서 우리의 삶이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론 조급한 마음에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창조 세계의 신비를 보며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말씀을 깊이 새기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천천히 기다리며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갖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아갈 때에 주님, 우리의 삶을 은혜의 단비로 적셔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불 뱀과 구리 뱀 PPT 음성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