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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3주]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신 하나님(PPT음성설교포함)

  • 관리자
  • 2024-03-0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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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셋째 주일/ 삼일절 105주기 기념주일 (20240303)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신 하나님
출애굽기 20:1~17


오늘은 사순절 셋째주일이며, 삼일절 105주기 기념일입니다.
1910년 강제로 일본에 합병된 후, 9년이 지난 시점에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지만, 26년 후, 36년 식민지생활 끝에 해방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 바빌론유배로부터의 귀환을 출애굽사건이라고 했듯이, 1945년은 대한민국의 출애굽이요, 그 출애굽의 시작은 1919년 삼일절에 온 강산에 울려 펴진 ‘독립만세!’라는 아우성이었습니다. 역사의 문제 앞에서 기독교인들이 침묵하지 않고 다수가 참여했다는 것은 기독교의 자랑거리입니다. 
 

■ 성서일과


이번 주 성서일과는 출애굽기 20장 1~7절의 말씀입니다.
읽으신 대로 ‘ 십계명’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2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아마도 1945년 해방을 맞이한 한국교회는 “나는 너를 일본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로 읽었을 것입니다.

출애굽의 주체인 하나님께서는 다시 노예생활 같은 비참한 삶을 살아가지 말라는 방편으로 열 가지 계명을 주십니다. 주신 계명을 소홀히 여기면 다시 노예와도 같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재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명을 소홀히 여기다가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완전히 망했고,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서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온 이후에는 십계명 본래의 정신보다는 문자적인 것에 얽매여 살고, 결국은 그 문자로 예수님을 죽이고 로마의 식민지로, 디아스포라로 살아가게 됩니다.

아우성치지만, 그 아우성을 들으시고 출애굽 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독립만세를 외쳤지만,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기 위해서는 ‘아우성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우성, 외침, 기도, 그것은 사람의 일입니다. 우리의 수고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작용할 때, 가장 선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신앙은 양방향입니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모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은혜와 사랑은 일방적이지만, 그래서 악인들에게도 선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햇살과 바람과 그 모든 것을 주시지만, 깨달음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셨습니다.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강제한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결정하게 하신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양방향입니다. 그러나 이때 조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과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판단하고 혐오하고 선을 긋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하신 복음의 내용이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었으며,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이유 역시도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음을. 그래서 심지어는 ‘내가 죽이고 싶도록 미운 원수조차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결단이 만날 때 선한 역사가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어가는 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할 계명, 이것을 수직적인 계명이라고 합니다.
1계명부터 4계명까지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네 가지 계명을 잘 지키면, 다시는 노예생활과 같은 비참한 지경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키지 않는다면, 다시 노예와도 같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계명의 뜻을 깊이 이해하려면 늘 십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계명을 읽을 때에는 이렇게 읽으면 뜻이 분명해집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만일, 다른 신을 두면 노예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른다면 너희는 노예 같은 삶을 살 것이다.” 혹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지 않으면 너희는 노예 같은 삶을 살 것이다.”

여러분, 오늘날 이렇게 이 계명을 읽으면 실감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아닌 맘몬 신을 섬기는 이들,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이들, 안식일에도 쉼을 잃어버린 사람들 모두 자본의 노에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은 우리를 속박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한 법입니다.
 

■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할 법은 수평적인 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수직적인 법과 수평적인 법이 만나 십자가를 이루어 완전체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상징은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았다는 의미는 바로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할 계명들은 모두 노예 생활할 때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었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목숨을 부지하려면 치사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 되면, 이제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살아간다면 노예 때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먼저 사람과의 관계에서 등장하는 계명은 ‘부모공경’입니다.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 되었습니다. 어떤 약속이냐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어집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거, 탐욕에 관한 법입니다. 이 역시도 우리를 속박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복을 주시기 위한 법입니다.
 

■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그러나 십계명이 주어지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조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십계명을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아 선포한 것이 대략 기원전 1400년 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공생애활동을 하실 무렵 십계명은 지난 1400년 동안 유대교의 지침이요, 기둥이었습니다. 게다가 바벨론포로기를 겪은 이후, 역사를 돌아보며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이 멸망의 원인이라는 자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잘 지키려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서도 구별된 자들이라는 ‘바리새파’는 십계명을 조금도 어기지 않기 위한 세세한 법들을 만들었습니다. 바리새는 히브리어로 ‘페루쉼’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분리시키다’라는 뜻인데 ‘금욕, 절제, 고행’같은 뜻도 있고, 거룩이라는 단어 ‘카도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십계명을 철저하게 지켜 보통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겠다는 분파였습니다. 그들은 특히 정결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몇 백가지 세세한 규정으로 나눠서 보통 사람들은 지킬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자유의 법을 노예의 법으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 오늘날의 문자주의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바리새인들과 정결법 논쟁을 자주 벌이셨고, 얼마나 완고했는지 문자주의가 된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독설을 퍼붓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바리새파 사람들 모두가 문제인 것은 아니었지만, 주류는 문자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에도 이런 문자주의자들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 6절에서 경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성경은 문자가 아닌 비유로 읽어야 하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읽어야 제 뜻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사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문자로만 읽는다면, 성경은 이미 자체 모순으로 이미 폐기되었을 것입니다. 
 

■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신 하나님


오늘 성서일과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냥 문자로만 풀면, 내가 누구의 종이 아닌데 이 말씀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현대인들을 종처럼 부리는 자본의 횡포, 편향된 이념, 가부장적인 문화, 독재 권력의 횡포, 성공신화, 명예욕, 일류병......이런 것들을 살펴보면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하고, 풍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십계명은 단지 고리타분한 옛 계명이 아닙니다. 그 근본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노예의 삶이 아니라 자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105주년 삼일절 기념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 생활에서 독립하기 위한 몸부림은 바로 우리 민족의 출애굽을 위한 외침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그 삶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소망을 품고 아우성치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으로 들어오셔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멘.
 

[거둠 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반도국가의 운명 속에서 수많은 외침을 당했지만, 지금 이렇게 독립국가로 살아가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하오나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한 민족인 우리가 서로를 증오하며 살아가는 세월이 깊습니다.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셔서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주옵소서, 주님,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길 원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볼 수 있는 지혜와 간구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방의 법을 주셨으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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