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둘째 주일(20240225)
결정은 내가 한다
시 22:28, 창 17:5, 롬 4:20, 막 8:31~38

오늘은 사순절 둘째주일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마가복음의 목적은 1장 1절에서 밝힌 바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님의 복음사역이 숨 가쁘게 전개됩니다.
공생애가 시작된 후, 예수님의 복음사역은 귀신들린 이들을 고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전도여행을 하시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시고, 소외된 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인들을 부르러 오심’이라고 밝히십니다. 의도적으로 안식일 법을 어기시고, 종교지도자들과 논쟁하시며, 이방인들까지도 품어 복음을 전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복음사역’입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과 고향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하시지만,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사람들 생각에는 예수님의 사역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지켜본 고향사람들도 ‘예수가 미쳤다’고 합니다.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예수님이 미친 것이 아닌지 우려하며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살아가라고 설득하려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충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충돌하고 있지만, 누구의 생각대로 역사가 진행되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인본주의’는 신과 자연에 예속된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자유성과 존엄성’을 강조함으로서 ‘만물의 척도를 인간’으로 삼았습니다. 인간중심으로 모든 것이 변화되면서 ‘인본주의’는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자연이나 신 혹은 종교 같은 것은 인간의 삶을 위한 보조적인 것으로, 소비하거나 낭비해버려도 되는 것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게다가 인간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이 하나님 나라까지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경험한 이후, 인간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고, 하나님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계몽주의 이후 인간중심적인 삶을 살아온 결과 현재는, 전 지구적인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코로나 사태와 같은 전염병에 대한 미숙한 대처 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인본주의에 근거한 인간중심의 역사가 결국 지구공동체를 멸망시킬 수 있는 지경에까지 온 것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인공지능(AI)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이 인류를 구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학기술과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백세 시대를 향하고 있지만, 그것이 인류에게 행복일지 불행일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최첨단 과학시대를 살아가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의 생각과 대안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늘 그렇게 달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는 중에 소수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고, 그 작은 빛 혹은 그루터기와 같은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치고, 기어이 조롱하며 죽였지만, 그때 두려움 속에서 침묵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던 이들, 무덤으로 달려간 여인들, 부활을 목격하고 예수님을 전한 사도들,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기꺼이 자기의 목숨을 내놓았던 성인들이 있었기에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는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사는 이들은 소수이며, 사람의 생각으로 무장한 자칭 ‘거룩한 신앙인’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실 이사야서 55장 8절의 말씀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서일과의 말씀 중에서 마가복음만 전체를 읽고, 나머지는 중심구절만 한 절씩 읽었습니다.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시편 22편 28절의 말씀입니다. “나라는 주님의 것, 주님은 만국을 다스리는 분이시다.” 만국을 다스리는 분이 결정권을 갖고 계시겠지요. 창세기 17장 5절의 말씀은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이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다.”입니다. 성경에서 개명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개명하시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로마서 4장 13절의 말씀은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은, 율법으로 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 된 것입니다.”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율법을 잘 지키면 상속자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믿는 자’ 즉 ‘순종하는 자’를 상속자로 삼으십니다. 마가복음은 더 적나라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십니다.
성서일과의 공통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입니다.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께서 결정권을 갖고 계시며, 이름을 바꿔주시는 주체도 하나님이시며,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말씀하시면서, 사람의 일을 내세우는 일은 ‘사탄의 일’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하실 때 반드시 동역자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뤄가는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최대관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신 복음이 무엇인가?’를 밝히는데 있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더러운 귀신들린 자들과 많은 사람을 고치시고, 전도여행을 하시면서 나병환자, 중풍병자, 세리와 죄인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비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바람과 바다도 잔잔하게 하시고, 물 위를 걷기도 하십니다. 배고픈 이들을 먹이시고, 이방인들도 구원해 주시며, 바리새인과 장로들과 논쟁을 하시고, 안식일법을 의도적으로 범하십니다. 이런 일들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당시 율법 규정, 즉 사람의 생각에 따라 ‘구원 바깥에 있다’고 판단되던 병자들과 이방인과 소외된 이들이 하나님의 구원 안에 있다는 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마가복음의 핵심단어는 세 가지인데 ‘따르라, 들으라, 곧(즉시),’가 그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그의 말씀을 듣고, 즉시 순종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요, 복음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 성서일과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앞으로 자신이 겪어야 할 일을 세세하게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고난 받으시고, 배척받아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실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러자 얼마 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가 항의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꾸짖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베드로를 비판하지만, 여러분이 삼년 동안 동고동락하던 스승이, 더군다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여겨지는 분이 이런 고난을 당해야한다고 하면 베드로보다 더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제가 죽는 게 낫겠습니다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제자답지 않습니까? 스승이 고난당하고 죽임을 당한다는 데 “예, 알겠습니다.”한다면, 그것이 믿음이 좋은 것일까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깨닫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고 개명해주셨습니다. 그 이후 아브라함은 아브람의 삶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삶을 살았습니다. 복음서와 연결시켜보면, 자기를 부인하는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작용하게 하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였듯이 예수님을 따르고, 듣되, 뜸들이지 말고 바로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는 오늘날 ‘인간중심의 인본주의 세상’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실종되고 사람의 생각만 판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듣고, 순종하는 이들이 있어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데, 그런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따른다는 이들조차도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는 꾸중을 듣는 베드로처럼 사람의 생각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 그루터기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결정하시게 하십시오. 내 생각대로 신앙생활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듣고, 즉시 순종하십시오. 그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시며, 반드시 이뤄집니다.
오늘 진급예배를 드리는 교육부서 친구들도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듣고, 순종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게 하십시오. 그런 복을 누리길 기도하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거둠 기도]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입술로는 그렇게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리지 않고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데 익숙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듣고, 순종할 때에 우리 삶으로 들어오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안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오늘 진급예배를 드리고 새 학년으로 올라가는 교육부서 친구들도 축복해 주셔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창세전에 그들을 향해 세우신 귀한 계획을 이뤄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