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4주(20210314
영생의 이음줄
요한복음 3:14~21

독생자를 보내시어 십자가 고난을 받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함께 예배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지난주에 함께 묵상한 성서일과 시편 19편이 시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요, 세상의 모든 서정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시였다면,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은, 신구약성서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작은 복음, 복음서들 안에 있는 복음’이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함께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의 길이 우리 앞에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사망의 길에서 영생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설교제목은 ‘영생의 이음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생명과 단절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어지는 이음줄 역할을 하셨고, 인간과 하나님을 이어주는 이음줄 역할을 하셨으며,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는 이음줄 역할을 하셨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만, 2017년 사순절 5주에 보여드렸던 영화 ‘Most(The bridge)’를 재편집했습니다. 5분 정도 되는 영상으로 편집했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영상보기https://youtu.be/2cXUn0liUHg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철도 교량을 관리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곳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곳에 아들을 데리고 간 후, 개폐식 철로를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한 시간 후에 기차가 올 터인데 그때 같이 철로를 개폐하기로 약속을 합니다. 아들은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아버지는 기계실에서 일을 봅니다. 배가 지나간다는 연락이 오자 철로를 올렸는데 정지신호를 보지 못한 열차가 개폐식철로가 있는 다리를 향해 달려옵니다. 아버지는 기계를 점검하느라 기차가 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기차가 오는 것을 본 아들은 아버지를 불러도 대답이 없자, 자신이 철로를 내리려고 하다가 기계실로 떨어집니다. 뒤늦게 기차를 발견한 아버지는 아들을 찾다가 아들이 기계실로 떨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기차는 너무 빨리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철로를 내리면 아들이 죽고, 철로를 내리지 않으면 열차에 탄 승객이 죽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희생시키고 승객들을 살리지만, 승객들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영상에는 없지만, 영화말미에 마약중독에 빠져 살아가던 여인은 결혼을 하여 예쁜 아이를 낳고, 이런저런 아픈 사연을 담고 기차를 탔던 이들이 저마다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오버랩되고, 이런 모습을 아버지가 바라보며 웃는 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영화를 보신 생각이 나시나요?
가끔은 설교도 반복하고 복습도 해야 하는데 저는 그걸 잘 못합니다. 저는 이번 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재편집하면서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에게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받으시고, 우리를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시며 ‘영생’이라는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화목제물’을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화목제물은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예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를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삶이 무엇인지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앞부분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 거듭남에 관해 질문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삶이란, 거듭난 삶이요, 거듭난 삶을 오늘 읽은 말씀에서는 ‘영생’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영생’을 단어 그대로 풀어서 ‘영원히 사는 것’이라 생각하고, 불로장생하는 것이라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영생은 ‘불로장생’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살아 이 땅에 숨 쉬고 있다고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야’ 산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 땅의 삶을 다한 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기에’, 영생하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을 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습니다. 안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인식하고 있다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삶이니 ‘거듭남’삶이요, 거듭난 삶을 살아가니 산 것처럼 살아가고, 그렇게 살아가니 이 세상의 삶을 마친 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가니 영생인 것입니다.

이런 영생의 삶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당신과 이어주는 이음줄로 삼으신 것입니다. 만일, 그 이음줄이 없었더라면 ‘MOST’라는 영화에서, 개폐식 철로가 내려와 이어지지 않았더라면 기차에 탔던 승객들이 처참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죽음의 길을 달려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심으로 ‘영생의 이음줄’을 이어주셨기에,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들을 잃고 승객을 살렸는데, 그들의 삶이 여전히 그 이전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더라면, 그것을 지켜보는 아들 잃은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마약중독에 빠졌던 여인이 예쁜 아기를 안고 행복하게 돌아오고, 애인과 헤어져 슬픔에 빠졌던 이들이 기쁜 삶을 회복하고, 그저 육체의 환락을 좇기만 하던 이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아들 잃은 아버지는 웃음을 지으며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웃으실 수 있는 삶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
이 말씀은 민수기 21장 4~9절의 말씀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 땅을 우회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상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가까운 지름길이 있는데, 멀리 돌아서 가니 백성들의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를 원망하며 “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여 죽게 하느냐”고 항변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불뱀을 내려 물려죽게 하십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비책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는 것이었습니다. 뱀에게 물린 자들이 놋뱀을 보니 모두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이렇습니다.
온갖 죄로 인하여 불뱀에 물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예수님을 달아, 사람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면 살아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불뱀에게 물려 죽을 수밖에 없는 백성을 구원하는 놋뱀이 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죄로 인해서 멸망의 길로 달려가며,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던 우리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이요, 십자가의 힘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는 ‘영생의 이음줄’이 되었습니다. 사순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시고, 바라보시어 영생의 삶으로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기도]
주님, 죄로 인해 죽음의 길을 달려가던 우리에게 영생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영생의 이음줄이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예수님 없는 것처럼 살아가며 죽음의 길을 달려갈 때가 많습니다. 영생의 삶이 십자가에 있음을 깨우쳐 주셨사오니,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이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