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2주(2021년 2월 28일)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
마가복음 8:31~38
하루에도 우리는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삽니다. 의식적으로 하는 생각도 있고,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생각도 있고, 어떤 자극 때문에 일어나는 생각도 있고, 창의적인 생각도 있습니다. 교육이나 처세술에서는 잠깐 떠올랐다 사라지는 소중한 생각들을 메모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루에 몇 번이나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지난 해 캐나다 퀸스대 연구진의 연구하여 공개과학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평범한 하루 일상을 보내는 건강한 성인들의 경우 8시간 수면한다고 가정했을 때, 하루에 평균 6200번 이상의 생각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1분당 평균 6.5번 수많은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며, 인간의 연약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표현했습니다. 데카르트는 ‘코기토 에르고 숨(라틴어: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생각은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이요,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생각해야만 합니다. 저는 ‘생각’이라는 단어는 당연히 한문에서 왔을 줄 알고, ‘날 생(生)+깨우칠 각(覺)’으로 생각해서, ‘깨우쳐야 제대로 산다.’는 뜻으로 풀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생각이라는 단어의 한문은 없고, ‘가늠하여 헤아리거나 판단함’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던 것이지요.

사람의 생각이란 한계가 있습니다.
각자 처해있는 삶의 정황에 따라 똑같은 것도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보이므로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생각하니 다르게 말합니다. 원기둥을 예로 들면 이렇습니다. 위에서 보면 원이지만, 정면에서 바라보면 사각형입니다. 원이라고 해도 맞고, 사각형이라고 해도 맞는 것이지요. 그러나 원기둥은 원도 아니고 사각형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일부만 알고, 전체를 알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항상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하면 안 됩니다. 늘 ‘내가 깨우쳤지만, 그것은 일부분이지 전부가 아니다’라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이든 ‘절대화’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선포는 세상을 향한 것이었다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고, 논쟁하시고, 말씀을 전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가르침은 세상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복음의 마지막 단계,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아셨기에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십니다. 이제 고난의 길을 앞두고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3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니.”
그렇습니다.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니’, 그들은 누구입니까? 제자들입니다.
십자가 고난을 앞에 두신 예수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단계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수제자인 베드로가 항변을 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베드로가 생각했던 메시아와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메시아의 길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장로와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당시 재판을 관장하던 산헤드린을 형성하는 그룹이었습니다. 그들 역시도 자신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고자 합니다. 한 쪽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다른 한 쪽은 자신에 생각에 따라 예수님의 죽음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두 생각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심하게 꾸짖습니다. 사탄이라고까지 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와 제자들은 근심에 빠졌을 것입니다. 제자들에게조차 아직,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친절하게 그들에게 알려주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좀 쉽게 말씀을 풀면,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버리라’는 말씀은 맹신해라, 생각없이 따르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시고자 하는 길은 고난의 길이니, 고난을 피하지 말고 끌어안으라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예수님의 방식을 따르는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고난’보다는 ‘영광’을 받는데 초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번영신학’인데, ‘예수님을 믿으면 다 잘될 것이다.’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잘됨의 기준이 세상에 맞춰져 있습니다. 세상이야 악하든 말든, 잘되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세상이 악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마땅하고, 그것이 잘되는 길이요, 잘 사는 길입니다. 이런 생각 없이 예수님을 믿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36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번영신학에서는 ‘온 천하를 얻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생명은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그냥 생명만 부지하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으되 죽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맘몬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비인간적인 삶, 즉, 살았지만 죽은 것과도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갖지 못한 사람은 또한, 가지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살아갑니다. 이 역시도 죽은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천하를 얻지 못해도 잘 사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38절의 말씀을 읽어볼까요?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이 너무 악하니까 적당히 그리스도인이 아닌 듯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히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드러내기는 하는데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살아감으로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지 말고, 그리스도인답게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 고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 고난은 곧 우리가 지고가야 할 십자가이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이기에 기쁘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생각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6:5,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나쁜 것뿐임을 아시고
창세기 8:21,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기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눈이 멀어서, 생각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에서 보여주시는 사인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창세기 28장 16절에 야곱이 끝 깨달음을 얻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이 깨달음은 야곱에게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관문이 됩니다. 이 깨달음 끝에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 새 삶을 살아갑니다. 기독교는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깨달아가면서, 이전에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깨뜨려가면서 한 걸음씩 하나님 나라를 향해가는 것입니다.

둘째, 일상에서 보여주시는 사인을 보려면 주님을 바라야 합니다. 좋은 생각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6편 7절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좋은 생각을 주시며, 밤마다 나의 마음에 교훈을 주시니,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생각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생각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면서, 부정적인 생각,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며,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서 55장 7~8절의 말씀을 축약해보았습니다.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셋째,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생각이 사람의 행동을 좌우하고,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삶을 바꿉니다. 불의한 생각이나 허황된 생각은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그 생각을 버리십시오.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사람의 생각이 미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무조건 믿겠습니다.’하며 맹신의 늪으로 빠질 것이 아니라,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우리를 깊은 생각으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과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렘11:20)께서 여러분의 삶을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거둠 기도]
우리의 생각을 이끌어주시는 주님, 우리의 생각이 주님을 향하게 하옵소서.
수많은 생각들 가운데 주님을 중심으로 삼게 하시고, 깊은 깨달음 가운데 우리의 삶이 진리의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이라도 기꺼이 진리의 길이기에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용기 또한 허락하여 주셔서, 복음의 빛 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영상설교 https://youtu.be/wNbPZHD8pgY
음성설교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981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