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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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6주/변모주일] 복음의 빛을 보는 봄

  • 관리자
  • 2021-02-1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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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6주- 변모주일(2021년 2월 14일)
복음의 빛을 보는 봄
마가복음 9:2~9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 여러분, 코로나19의 확산방지를 위해 명절에 가족을 만나는 기쁨조차도 내려놓아야 하는 엄중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방역당국의 방역지침에 협조하는 것은 단순히 나의 건강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이웃의 건강을 위협하지 않기 위해서 인내하는 사랑의 행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역지침을 비웃는 이들로 인해 코로나19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의 확산에 교회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면예배를 고집하면서, 코로나 확산의 주범이 되는 것도 모자라서, 세계적인 대형교회에 속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종이쪽지가 코로나를 퇴치한다며 무슨 부적을 나눠주듯 하려고 했다가 세간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흥주점을 드나드는 이들도 한심하지만, 기도회니 부흥회니 무슨 선교행사니 종교집회를 강행하는 이들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화가 납니다. 왜냐하면, 그들로 인해 건강한 한국교회들까지 도매 급으로 손가락질 당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복음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기독교내에 이런 이단보다도 못한 일들이 성행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근본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복음을 오해하고 있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제 멋대로 해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전해도 신봉하며 무조건 “아멘!”으로 화답하는 신도들이 있고, 그런 교회들마다 사람들이 넘쳐나니 복음이 아니라 물질 맘몬을 따르는 이들이 복음의 본질을 뒤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1962년 초반에 함석헌 선생은 <생활철학>이라는 글에서, 교회가 복음에 기초하지 않고 물질과 세속주의에 빠져있음을 비판했습니다. 그때부터라도 예언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한국교회는 지금보다 훨씬 건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지금도 여전히 예언자적인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언자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과 교회는 없는 듯 하고, 비상식적인 이들과 교회만 흥행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음의 빛’은 비추고 있으니,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주현절 여섯 번째 주일 성서일과는 이렇습니다.
구약본문은 열왕기하 2장 1~12절의 말씀으로, 엘리야와 관련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북왕국이스라엘 아합왕 시대의 예언자로, 아합왕과 이세벨의 불의를 지적하다 피신을 하는 동안 까마귀가 먹이를 물어다주어 연명하기도 했고,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기적을 행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이들과 ‘450vs1’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용맹스러운 엘리야였음에도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를 만났던 호렙에서 죽기를 간청하기도 합니다.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운 후 벧엘과 여리고를 지나 요단강에서 모세가 홍해의 기적을 행했듯, 요단강을 가르는 기적을 행하여 강을 건넌 후에 불 병거와 불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시가서의 말씀은 시편 50편 1~6절의 말씀으로 ‘아삽의 노래’입니다.
아삽의 노래에서는 하나님께서는 ‘해 돋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온 세상을 불러 모으시는 분이심을 노래합니다. 70년대 후반에 자주 불렀던 가스펠 송 ‘해 뜨는데 부터 해 지는데 까지’라는 노래의 모티브가 된 시편입니다. 하나님께서 눈부시게 나타나실 터인데, 그 모습을 누구나 볼 수 있게 ‘조용조용 오시지 않고, 삼키는 불길을 앞세우시고, 사방에 돌풍을 일으키시면서(시 50:3) 오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눈부신 불길을 앞세우시고 오시는 하나님, 이것은 엘리야가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과 연결점이 있습니다.



서신서의 말씀은 고린도후서 4장 3~6절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곧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고후4:4)’을 선포했지만,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그 복음의 빛이 가려져서,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편의 말씀처럼, 복음의 빛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조용조용 오지 않고, 마치 불길처럼, 사방에 돌풍이 불 듯’ 전해졌지만, 어둠 속에 거하는 이들은 그 빛을 깨닫지 못합니다. 바울을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을 비추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구약, 시가서, 서신서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말은 ‘빛’입니다.
불 병거와 불 말이 내는 강렬한 빛, 눈부시게 나타나시는 하나님, 우리의 마음속을 비추는 빛, 눈부신 빛이 성서일과에 공통적으로 기술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은 복음서를 보십시오.
변화산 혹은 변모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합니다. 예수님의 옷은 하얗게 빛났고, 그곳에서 엘리야, 모세와 함께 예수님을 대화를 나누십니다. 모세도 호렙의 떨기나무에 붙은 불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으며, 두 번째 십계명을 받을 때 그의 얼굴이 빛났습니다. 그러니 성서일과의 중요한 의미를 담은 단어들을 정리하면 ‘빛’이라는 단어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신구약성서를 종합해서 이것이 상징하는 바를 표현한다면 ‘복음의 빛’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봐야합니다.
‘복음의 빛’이 비쳤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5절의 말씀 ‘어둠이 빛을 깨닫지 못하는 현실’이 오늘 성서일과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열왕기하에 이어지는 내용은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실종된 것으로 생각하여 사흘이나 엘리야를 수소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시편의 말씀은 더 분명합니다. ‘불길을 앞세우시고, 사방에서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시며’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오셨는데, 여전히 그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서신서의 말씀은 더 분명합니다. 멸망의 길을 달려가는 이들은 마음이 어두워져서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어떻습니까? 베드로가 변모하신 예수님을 보고 놀라서 ‘얼떨결에(막 9:6), 겁에 질려서’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합니다. 판단력이 상실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을 위하여 초막 셋을 지어 모시겠습니다.”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의 사랑하던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였으면서도 예수께서 하시는 일과 하시고자 하는 일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의 빛’을 주셨으며, 천지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해주셨으며, ‘복음의 빛’이 우리에게 전해졌는데, 여전히 제자들처럼 얼떨떨해서 혹은 겁에 질려서 그 빛을 보지 못하고 멸망하는 자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는 요즘 대면예배를 강행하는 이들이나, 선교단체, 부적을 지니듯 종이 카드 한 장만 몸에 지니고 있으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들이나, 대면예배를 드릴 때에는 모든 병균이 다 사라진다며 설교 시간에 제 손가락을 쪽쪽 빨아대는 목사들, 그들이 아무리 큰 교회를 이루고 많은 신도들이 따른다고 해도 ‘멸망당하는 자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멸망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시대, 물질과 세속주의에 물든 교회가 횡행하는 시대에 ‘복음의 빛’을 제대로 보고, 그 빛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희망의 새순을 피워낼 것입니다.

한남교회는 복음의 빛을 보는 교회, 여러분들은 진리의 빛 속에 살아가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날 때, 복음의 빛을 보는 봄이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질 것입니다.



복음서 본문의 이해를 위해서 유다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기원전 187년 유다를 점령한 로마제국의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교와 전통을 지키는 유대인들을 아니꼽게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강제적인 헬라화 정책을 강행했는데, 자신이 제우스신의 현현이라고 주장하며 숭배하게 했으며, 예루살렘에 제우스 신전을 짓고, 유대인에게 금지되었던 돼지고기를 먹게 했고, 사내아이들의 할례를 금지하고, 안식일 준수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에 반발한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반로마제국을 외치며, 유대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결국, 기원전 164년, 마카비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은 대신전에 세워져있던 제우스상을 파괴하고 유대교의 전통 의례를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이때 성스러운 촛대의 기름이 하루치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촛대를 밝히는 성유를 전례에 따라 만들려면 8일이 소요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치의 성유가 8일 동안 타오르는 기적이 일어났고, 이 기적으로부터 유대교의 최대 절기인 하누카(수전절)가 유래되었습니다. 물론,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승리였고, 결국 기원후 70년, 로마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은 초토화됩니다.

이때를 신구약 중간시기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은 마카비서가 유일합니다만, 마카비서는 정경으로 채택되지 않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신구약중간시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에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예고하는 내용이 있으므로, 마가복음은 A.D.70년 이후에 기록되었고, 나머지 마태와 누가 요한은 그보다 더 뒤에 쓰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초토화되자 정통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없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입장이었고, 초대교회교인들은 사라진 성전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운 성전으로 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변화산 사건은 유대인들이 잠시라도 다시 회복했던 예루살렘의 회복을 기념하는 절기인 ‘하누카’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가 기록되던 시기 ‘하누카’는 가장 인기 있는 절기였으므로 마가복음의 저자는 ‘어둠을 이기는 빛’을 갈망하며 예수님이 곧 그들의 성전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두 기둥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그런데 변화산에서 변모하신 후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모세와 엘리야와 동급으로 여김으로, 하나님의 빛이 예수님에게 임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빛이 예수님에게 임했으며, 예수님이 곧 새로운 성전이며, 하나님이셨던, 말씀이셨던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인간의 삶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훼파되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새로운 길이 열렸으므로 화육하신 예수님을 곧 ‘새로운 성전’으로 삼아야 한다는 소망을 담은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성전인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빛, 복음의 빛, 진리의 빛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물질 맘몬적이고도 세속적인 것들이 들어와 성전을 눈에 보이는 ‘매가처치’로 둔갑시켜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대형교회와 대형교회를 추구하는 교회들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누구나 알 수 있는 복음의 빛을 주셨음에도 외면하고, 물질과 세속주의에 물들어 얼떨떨하게 멸망하는 자들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을 대면하고 살아가는 것인데, 건물적인 의미의 교회라는 공간에서만 예배를 드려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교회 안에 가둬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조만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예배하는 대면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얼굴을 맞대고 예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음의 빛이요, 진리의 빛이요, 하나님의 빛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삶 속에서 늘 대면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봄입니다.
이 봄날에 ‘복음의 빛을 보는 봄’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기도]
빛으로 오신 주님, 어둠 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던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심 감사드립니다.
하오나 빛이신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이름으로 어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둠이 빛의 행세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을 밝혀주시어, 복음의 빛을 보게 하여주옵소서.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계절에 주님,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음성설교듣기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961751

동영상보기
https://youtu.be/--zVGcJ1e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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