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 후 셋째 주일(20240121)
하나님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삶
요나 3:1~5, 10

요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성경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고래 뱃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할 만큼 유명한 예언자입니다. 요나의 이야기에는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기를 쓰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지만, 좌충우돌하며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요나의 모습은 마치 익살극의 한 장면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기를 쓰며 도망치려고하는 우리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기를 쓰며 도망치려고하지만, 기어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삶 속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니느웨는 앗시리아의 수도입니다. 앗시리아는 B.C.2450년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존재하던 제국입니다. 북왕국이스라엘은 B.C.722년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그즈음 고대근동지방은 앗시리아제국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B.C.612년, 신흥강대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합니다. 신흥강대국 바벨론 B.C.587년 유다를 멸망시키지요. 요나서의 저작 시기는 B.C.720년~B.C.612년이라고 합니다. 거의 108년의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만,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니느웨가 회개를 하고 멸망하지는 않았으니, 저작시기는 아직 아시리아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기 전인 대략 B.C. 720년경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앗시리아가 북왕국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이 B.C722년이었고, 2년 뒤에 요나는 자기 민족을 멸망시킨 원수의 나라로 가서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망해도 속 시원하지 않을 니느웨, 요나가 그곳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고 싶었을까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요나서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요나에게 일어나 원수의 나라 수도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역사적인 관계로 인해 감정이 좋지 않았던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 다시스(스페인)로 도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요나가 탄 배는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나고, 결국에는 제비뽑기로 바다에 던져집니다. 그러자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고,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간 하나님께 기도하며 회개하니 육지에 토해놓습니다. 그리고 다시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간 요나는 사흘 길은 걸어야할 곳임에도 하루 동안만 걸으며 대충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니느웨에서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 사람뿐 아니라 짐승들까지도 정결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니느웨 심판의 뜻을 돌이키십니다. 이에 요나는 화가 나서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도망친 것입니다. 그들이 멸망당하지 않으니 차라리 제가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하면서, 그래도 망하겠거니 기대하면서 언덕에 초막을 짓고 니느웨의 몰락을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동풍이 불고 그늘이 없어 너무 뜨겁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자라게 하셔서 그늘을 만들어주십니다. 그러자 요나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벌레를 보내시어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고, 뜨거운 동풍이 불자 요나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낳겠다”며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수고도 하지 않고, 재배하지도 않은 박넝쿨도 아꼈는데, 이 성읍에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12만 명이요 가축도 많은데 내가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
이렇게 요나서의 단편 소설 같은 이야기가 끝납니다.
요나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부족하고 문제점이 많은 사람도 들어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요나는 우리가 우러러보아야 할 만큼 위대한 구석도 없고,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딱 우리 수준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지 않고 도망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겼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대충 전합니다. 게다가 자신이 전하는 예언에 대한 확신도 없이 그들이 혹시 회개라도 할까 전전긍긍합니다. 예언한 후에는 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려하고, 자신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박넝쿨 하나에 기뻐하기도 하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불평합니다. 자기 생각에 꽉 찬 요나,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요나, 죽음의 고비를 넘겼으면서도 대충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요나,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도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알지 못하는 요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니 ‘차라리 죽고 싶다는 요나’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 아닙니까? 어쩌면, 그래도 나는 요나 정도는 아니라고 위로를 받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요나’는 바로 ‘나’의 자화상이기도한 것입니다.
요나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둘째,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흘러가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요나의 어리석음과 반항을 재료로 삼아 일하시고, 결국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요나와 같이 끊임없이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치려하고,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고, 하나님께 화도 내고 불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우리의 부족함을 재료로 삼아 일하시고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도망가 봐야, 바다에 빠져봐야, 물고기뱃속에 들어가 봐야, 뜨거운 동풍에 시달려봐야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요나처럼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루시고자하는 선하신 뜻을 관철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로부터 도망치지 마시고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방식이 있고 나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이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요나처럼 나의 방식을 고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흘러가게 되어있습니다.
요나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셋째, 하나님의 깊은 생각을 우리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치고 회개의 촉구도 대충하고,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자 항의하고, 박넝쿨이 말라죽자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이 “네가 가꾸지 않은 박넝쿨을 가지고도 그럴진데, 니느웨에는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만 십이만 여명이나 되는데 내가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하십니다만, 그 이후 요나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요나는 이런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에도 여전히 수긍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니느웨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의 구원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B.C.612년 바벨론이라는 신흥강대국에 의해 멸망당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일과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1절에 “주님께서 또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스(스페인)로 도망치려한 요나에게 다시 반복해서 명령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요나에게 맡기실 일을 요나가 감당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는 것은 아직도 요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실 때가 없습니까?
자기 뜻대로 살려고 하나님을 떠나 살고, 교회를 떠나려고 할 때, 자꾸만 하나님이 부르시고,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이 들 때, 하나님이 다시 부르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요나에게 두 번째 말씀하신 하나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요나는 기를 쓰고 하나님에게서 달아나려고 애쓰지만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하나님께 낚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벗어날 수 없다면 즐기라!”, 신앙생활을 하실 때 의무감으로 하지 마시고 기쁜 마음으로 즐기십시오, 그러는 중에 기쁨이 충만한 삶의 비밀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거둠 기도]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이뤄 가시는 하나님, 우리는 요나와 같이 자기의 생각에 가득차서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요나와도 같이 모난 이들도 들어 선하게 사용하신 하나님, 우리도 주님의 선한 도구로 사용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우리의 부족함을 핑계로 혹은 나의 생각을 내세우지 말게 하시고, 오직 순종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구원하시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라고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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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