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 후 둘째 주일(20240114)
나를 아시는 하나님
시편 139:1~-6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너무 자주 듣다보니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지(全知)’에 대해서 오경웅은 시편사색에서 ‘깊고 세미한 것까지 남김없이 꿰셔서 환히 아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전능(全能)’은 어떤 일이든 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환히 아시고, 하지 못하는 일이 없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요즘 범죄예방을 위한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설치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사각지대를 없애서 범죄를 예방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부문별한 CCTV설치에 따른 사생활 침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2021년 말 기준 전국의 CCTV는 1600만 대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인구 3명당 1개꼴이며, 개인이 하루 200회 넘게 CCTV에 노출되고, 이동 중엔 5초에 한 번씩은 노출된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조지 오웰은 <1984년>이라는 책을 통해서 전체주의 사회의 권력이 빅브라더와 텔레스크린을 통해서 감시와 통제를 하여 사람들을 세뇌시킬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인류는 권력의 감시와 통제가 아니라도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을 노출하도록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SNS라는 사이버 공간은 자신의 생각, 비밀스러운 사생활까지 자발적으로 공개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리고 최근 AI의 발달은 내가 나를 아는 것 이상으로 나의 욕구와 심리를 분석해서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에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샅샅이’라는 단어의 ‘샅’은 작은 틈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오경웅은 ‘깊고 세미한 것’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실 때에 ‘속속들이, 빈틈없이’ 살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속속들이 살피셨으니 우리를 환히 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CCTV처럼 우리를 감시하고 통제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며, 5절 시편시인의 고백대로 “주님께서 우리의 앞뒤를 두루 감싸주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은 우리에 대한 정보로 ‘잉여를 만들어 내는데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을 우리에 대한 정보를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에 관심이 있으신 것입니다.
6절의 말씀을 보면 시인은 깊은 깨달음을 얻고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시인의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시인의 사소한 것까지도 다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다 아실뿐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생각하고, 그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는 것입니다. 그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은 앞서서 가시고, 뒤로 물러갈 때에도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서 샅샅이 아시지만, 사랑과 친밀함으로 우리를 감싸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더라도, 심지어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아갈 때에도 우리를 부드럽게 사랑으로 안으시고, 신실하게 자비를 베푸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우리를 살펴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시인은 ‘측량할 수 없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은 깨달음’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편 시인의 깨달음이 여러분의 깨달음이 되길 바랍니다.
‘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을 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리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생각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자기가 선호라는 정보만 받아들인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다보면 ‘확증편향’이 생깁니다. 확증편향이란, 사실 여부를 떠나 자신의 견해 또는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는 ‘자기중심 왜곡(myside bias)이라’고 부르는데, 신앙에 이런 성향이 작용하면 이단사이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생각하는 능력은 책을 읽고, 묵상하고, 토론하고, 정리하면서 생겨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각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중에 우리의 생각을 바로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내 행실을 아십니다.
먼 옛날, 30여 명의 제자를 둔 스승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이 한 제자를 총애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게다가 스승이 총애하는 제자는 29명의 제자들이 보기에는 덜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왕따를 시켰습니다. 제자들의 불평과 불만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이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스승은 제자들에게 새를 한 마리씩 건네주었습니다. “지금부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가서 이 새를 죽여서 가져오너라.”
30명의 제자들은 곧바로 숲 속으로 사라졌고, 잠시 후 제자들이 하나둘 돌아와 의기양양하게 죽은 새를 스승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스승의 총애를 받는 제자가 오질 않았습니다. 스승과 29명의 제자들은 그를 찾아 나섰습니다. 얼마 후 숲 속 어귀에서 살아 있는 새를 안고 서 있는 제자를 발견했습니다. 29명의 제자들은 “저 바보, 얼간이!”라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스승이 물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새를 죽이고 돌아오라는 문제를 해결했는데, 너는 왜 아직까지 새를 죽이지 못한 것이냐?”
제자가 대답합니다.
“스승님께서는 분명 이 새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가서 죽이라 하셨지만, 이 세상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은 없었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 베려고 해도 하나님이 보고 계셨고, 바위틈에 숨어 새를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이 보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행실을 바르게 지키십시오.
마태복음 5장 16절의 말씀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아십니다.
‘실언(失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언을 하는 사람은 말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믿을 ‘신(信)’이라는 단어는 사람(人)과 말(言)로 구성되었습니다. 실언을 자주하면, 믿음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말은 곧 그 사람 자신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인격과 품격을 가늠할 수 있고, 기호와 취향까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깊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시편 37편 30절은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지혜롭고 정의로운 말인지 깊이 생각하며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쯤이야 견딜 수 있겠지 생각하며 상대방에게 말로 상처를 주지 마시고, 극단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말을 아신다.’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깊고 세미한 것까지 빈틈없이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앞뒤를 두루 사랑으로 감싸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너무 놀랍고 너무 높은 최고의 깨달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하시고, 행실을 아시고, 말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과 행실과 말을 하고자 힘쓰시는 삶을 사십시오. 그러는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행실과 말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거둠 기도]

우리의 모든 삶을 세세하게 살피시는 하나님, 우리의 생각과 행실과 말을 아시는 하나님,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샅샅이 살피시고, 환히 알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생각과 행실과 말이 정갈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과 행실과 말로 우리의 삶이 더욱더 풍성해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앞뒤를 두로 감싸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삶을 붙잡아주셔서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우리를 향하신 계획을 이루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음성설교는 14일(주일) 11시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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