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예배(20231231)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빌립보서 4:10~14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올해 좋았던 일들은 새해에도 더 풍성하게 열매를 맺으시고, 좋지 않았던 일은 디딤돌이 되어 여러분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계획하시는 일들, 주님 안에서 성취하시는 새해가 되길 바라며 새해 첫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에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50대까지는 살아갈 시간이 제법 많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60대가 넘으니 확연하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다는 것이 체감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더 소중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 너무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은 옷을 사거나 물건을 살 때면 ‘마지막으로 사는 것일 수도 있는데 제대로 된 것을 사야지.’하는 마음이 듭니다. 어떤 때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다 쓰지 못하고 갈건 데 뭘 또 사나?’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종종 하게 되는 일은 정리하는 일입니다. 책꽂이에 있는 책 중에서도 다시 읽을 가능성이 희박한 책은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장식용으로 전락한 책은 재활용이라도 되라고 폐지로 내놓습니다. 비우는 연습을 하는 것이지요.
이전의 삶이 채우는 삶이었다면, 요즘 저의 삶은 비우는 삶입니다. 솔직하게는 조금 씁쓸하기도 하지만, 채우기 위해 살던 삶은 피곤했는데, 비우며 사니 홀가분합니다.
요즘 저의 개인적인 기도제목은 남은 목회 잘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은퇴 전에 한남교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은퇴 후에는 시골에서 조용하게 텃밭을 가꾸며 사진과 글과 그림 작업하며 그동안 내조하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오래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하나 둘 생각하다보니 소박한 것이 아니라 사치스럽고,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에 관한 기도는 그대로이지만, 은퇴 후의 기도 제목을 바꿨습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빌 4:11)”
여러분은 어떤 기도 제목을 갖고 계십니까? 구체적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그 기도가 힘이 있고, 그 기도가 여러분의 삶을 바꿉니다. 새해에는 구체적인 ‘기도 제목’을 붙잡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삶의 모토

제가 좋아하는 시인 박노해의 ‘사진에세이02-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라는 책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여기에서 차용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단순한 살림으로 삶은 풍요롭고
단단한 내면으로 앞은 희망차고
단아한 기품으로 주위가 다 눈이 부신
내 삶의 모든 아침은
바로 그대이다
내 사랑은 이것이면 충분했으니
일도 물건도 삶도 사람도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하게, 그래서 ‘3단’입니다.

저는 40대 초반부터 ‘5S’를 제 삶의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100% 그렇게 살지는 못하지만, 삶의 모토로 삼고 살아가니 이 정도라도 삽니다. 저의 ‘5S’는 작고(small), 느리고(slow), 단순하고(simple), 못생기고(simplton), 낮은(serving-low)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토는 무엇입니까?
이것이 분명해야 삶이 단단해지고, 길을 잃지 않습니다. 아직 내 삶의 모토가 세속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면, 새해에는 신앙인다운 삶의 모토를 정하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바리새인으로서 초대교회 교인들을 열심히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대의 최고였던 가말리엘에게서 사사 받았고,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로마의 시민권자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신앙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에 따라 헌신하는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유대교 바리새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빌립보서 3장 8절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위하여 (그 이전의)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전에는 모든 것을 다 가졌기 때문에 자족했다면, 이제는 그것을 모두 잃어버리고 자족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소유함으로 얻는 자족이고, 다른 하나는 비움으로 얻는 자족입니다. 하지만, 소유함으로 얻는 자족은 허상입니다. 소유욕은 언제나 우리를 빈곤으로 이끌고, 소유하지 못한 이유로 빈곤함을 느끼면 삶의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어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반으로 하는 자족만이 비움의 자족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우리의 삶이 비움의 자족을 배우면 소유의 삶에서 존재의 삶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빌 2:11).’고 말합니다. 자족이란, 다 채워져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편에서든지’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족하는 삶’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족하는 삶을 어떻게 배웠을까요?
13절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라는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예수님으로부터 자족하는 삶을 배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살고자해도 살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순종하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족하는 삶을 배우기 위해서 우리는 ‘능력주시는 자 안’에 거해야 합니다. 능력주시는 자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거할 때 그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전제조건을 잃어버리고 결과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때는 주권적으로 은총을 내려주시기도 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전제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중에서 그 전제조건에 해당하는 전치사가 바로 ‘안에서(in)’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여러분, 새해에는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라는 전제조건을 잘 지켜보십시오. 그 전제조건 없이 그저 홀로 각개전투를 하니 힘들고, 성과를 이룬다한들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능력주시는 자 안에 거하면 ‘단순한 살림으로도 삶이 풍요롭고, 그분 안에 거하니 삶이 단단해 지고, 저절로 빛나는 단아한 기품으로 삶이 빛나는 것’입니다.
2024년은 갑진년 푸른 용의 해라고 합니다. ‘육십간지(六十干支)’는 땅의 기운을 상징하는 12개의 지지와 10개의 천간을 순차적으로 조합해서 만드는데 올해는 41번 째 푸른색의 ‘갑’과 용을 상징하는 ‘진’이 만나 ‘푸른 용의 해 갑진년’이 된 것입니다. 용은 12간지 동물(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중에서 유일한 상상의 동물입니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온갖 눈에 보이는 자본이라는 휘황찬란한 현상들에 눈이 멀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상상력을 잃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시대에 단순하게, 단아하게, 단단하게 살아가라는 말은 비현실적인 것처럼 들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시는 새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둠 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주님,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의 육신은 쇠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강건해지게 하옵소서. 그 강건함이 자기 고집과 불통이 아니라, 불의와 어둠에 대한 강건함이 되게 하시고, 우리가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하게 살아가고자 할 때에 주님과 함께 걸어가야 할 그 길을 보게 하시고, 걷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자족하는 삶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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