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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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주일] 오늘이 마지막이라면(ppt음성설교)

  • 관리자
  • 2023-12-3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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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후 첫 번째 주일 / 송년주일(20231231)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시편 148:1~14



신년주일을 보내고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송년주일입니다.
저는 불혹의 나이 이후 이맘때면 개인적으로  ‘처음처럼, 마지막처럼’을 묵상합니다. 바다에 서면 알파의 시간과 오메가의 시간의 풍경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 ‘변함없음’은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고 다르지만 해돋이나 해넘이의 순환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해돋이의 시간도 해넘이의 시간도 모두 복된 시간입니다.

 

■ 인생의 계절



인생도 그렇습니다.
갓난아이는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행복입니다. 누구나 인생의 봄날과 여름날과 가을과 겨울 모두 아름답길 바라지만, 인생의 계절은 저절로 아름답거나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육신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지만,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명령형인 ‘인생’은 그 명령대로 살아간 이들에게는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늙어가는 것은 추한 것이 아닙니다.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계절은 육신의 늙어감과 상관없이 늘 푸르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해돋이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황혼의 시간도 아름다운 것처럼, 노년의 시간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 마지막 말에 대한 후회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헝가리 출신 유대인 화가 앨리스 카하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더 라스트 데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녀는 15살 때 독일군에 의해 가족 모두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수용소로 이송되면서 그녀는 부모님과 분리되었고, 8살 남동생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트럭에 실려 어느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동생이 신발 한 짝만 신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밀어닥친 혼란과 비극적인 상황과 그제야 동생이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보통의 누나가 어린 동생에게 훈계하듯 “넌 왜 그렇게 바보 같니, 신발 하나도 제대로 못 챙기니?”하고 쏘아붙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동생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곧바로 동생은 다른 트럭으로 끌려갔고, 그 후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그 사건을 겪은 이후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그 사람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습니다.

 

■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의 명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다시 떠오른다.‘는 대사가 있습니다. 참 멋진 말입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내일 태양이 또다시 떠오르는 것이지, 내가 그 태양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내일‘이 있을 것처럼 착각하고,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며 삽니다. 그러면서도 내일의 근심은 오늘로 가져옵니다. 여러분, ’매일 매일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십시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겠습니까?

저도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이게 ’마지막 설교‘라는 생각을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꼭 마지막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끄럽지 않은 설교를 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네 마지막 설교가 뭐였냐?”고 물으실 때 당당하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생애 처음 맞이하는 날이고, 생애의 마지막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을 그냥 어영부영 보내지 마십시오. 한 해가 많이 남은 줄 알았는데 어느 새 마지막 날에 서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겁니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사십시오.
 

■ 시편 148편


오늘 송년주일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시편 148편의 말씀입니다.
시편 145편부터 150편까지는 ‘찬양시’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들을 열거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그의 피조물인 인간의 도리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의 시인은 하나님께 찬양할 이들이 누구인지 열거합니다.
주님의 모든 천사, 주님의 모든 군대, 해와 달, 빛나는 별, 하늘 위의 하늘, 하늘 위에 있는 모든 물, 온 땅과 바다의 괴물들과 바다의 심연, 불과 우박, 눈과 서리, 세찬 바람, 모든 산과 언덕, 모든 과일나무와 백향목, 들짐승과 가축, 기어 다니는 것과 날아다니는 새, 세상의 모든 임금과 백성들, 모든 고관과 재판관들, 총각과 처녀, 노인과 아이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매일 매일 반복해야할 마지막 신앙고백일 것입니다. 
 

■ 찬양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그런데, “찬양하라!”고 명령한다고 다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열거한 모든 삼라만상이 하나님께 찬양하길 원하지만, 그들의 찬양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파괴로 인해 일 년에 일 만 종, 하루 27종의 동식물의 멸종되고 있습니다. 공장식 축산으로 수없이 많은 동물과 가금류가 항생제에 범벅이 된 채 속성으로 사육되어 살해됩니다. 바다는 원자력 오염수로 몸살을 앓고, 바다에 사는 것들도 각종 폐기물로 인해 고통 속에 죽어갑니다. 그들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으로 인해, 차별과 혐오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할까요? 

그러므로 여러분, 신앙생활은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성경말씀 좀 읽고, 성경공부하고, 기도하고, 헌금하는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구원받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세상, 그 세상에서 자신을 위시한 모든 피조물들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힘쓰는 삶’이 진짜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진일보하셔서 항상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갈 뿐 아니라, 차마 찬양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찬양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의 일이요, 선교입니다.
 


■ 주님을 찬양하는 삶이란


“세상의 모든 임금과 백성들, 세상의 모든 고관과 재판장들, 총각과 처녀, 노인과 아이들아 주님을 찬양하라(시 148:11~13a).”

이 말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을 총칭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풍성함을 피워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가능성 “살아가라!”는 명령인 ‘생명’을 피워내는 일입니다. 다른 피조물들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신앙인들의 일입니다. 이렇게 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셔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나의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복음서에서는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으로 표현됩니다. 보헤사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시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삶은 은혜의 삶이요,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우리의 매일 매일의 노래가 되고, 마지막 노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이 자기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감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열심히 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입고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노력이 아니라 은혜로 살아가니, 감사할 수밖에 없고,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누리는 것이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는 자각은 나눔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여러분, 저는 다음 주에도 여러분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뵙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한 주간 복된 삶을 살아가다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여러분을 만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라면’이라는 마음을 또한 간직하고 살아야할 것입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살면 삶이 달라집니다. 삶이 진지해집니다. 삶이 깊어집니다. 삶이 따뜻해집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거둠 기도]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 2023년 알파의 시간을 지나 오메가의 시간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긴 세월이라고 할지라도 ‘오늘’, 단 하루의 연속임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지금 여기를 소중하게 여기며, 반복되는 오늘이 아니라 마지막처럼 살게 하옵소서. 한 해를 잘 보내게 하신 것 감사드립니다. 새해도 잘 맞이하길 원합니다. 그 소망을 품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고자 하오니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pt음성설교는 내일 오전 11시부터 아래를 클릭하시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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