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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빛으로 오신 예수님(PPT음성설교)

  • 관리자
  • 2023-12-2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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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20231225)
빛으로 오신 예수님
요한복음 1:1~14


성탄절 이야기들에는 빛에 관한 이야기들이 찬란하게 빛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천사들이 베들레헴의 별이 어두운 밤하늘에서 빛나며 동방박사들을 예수 탄생의 장소로 인도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어둠이 깊은 그 밤에 주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빛을 비추며 양떼를 돌보는 목자들에게 예수 탄생 소식을 알려줍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성경에서 빛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나누고자합니다.
 

■ 빛의 상징성


빛은 고대세계의 원형적인 상징입니다.
빛은 또한 고대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중심이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빛은 초기 기독교의 중심으로서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어둠 속에 밝게 비춰진 빛은 성탄 축하의 중심이요, 그 빛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가장 깊은 어둠, 절기상으로 동지 어간, 한밤중에 태어나셨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시간이라기보다는 비유와 은유, 상징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삼은 것은 350년 로마의 율리우스 교황이 12월 25일 탄생일을 선포한데서 유래합니다. ‘로마의 태양신 탄신일’축제 예수님의 탄생을 통합시킨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3월, 4월, 11월 등 서로 다른 때에 예수님의 탄생일이 축하되었는데 율리우스 교황 이후 12월 25일로 통합되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후, 성탄절 이야기는 어둠이 가장 깊은 동지(冬至)를 의도적으로 연결시켰고 예수님이 한밤중에 탄생하셨다고 강조함으로써 예수님이 어둠을 밝히는 빛임을 밝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 빛의 언어가 가득한 이유


평민들이 촛불을 켤 수 있었던 것은 1800년 전후부터였습니다. 따라서 밤이 되면 매우 어두워졌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경험하던 어둠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어둠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발부리가 걸려 넘어지거나, 어둠 속에서 길을 잃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밤과 겨울은 함께 갑니다.
밤이 길어질수록 땅은 그 온기를 잃고 차가워지고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둠, 비탄, 애도, 죽음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애도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어둔 옷을 입어왔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밤과 죽음도 함께 갑니다. 죽은 사람들이 거하는 땅도 지독한 암흑의 장소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선조가 빛을 귀하게 여긴 것은 당연합니다. 새벽을 기쁨으로 맞이했고, 동지를 지나고 빛이 되돌아오는 것을 축하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전통이 ‘빛의 언어’로 가득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영광, 광채, 광명, 이 모두가 빛과 관련이 있는 단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빛과 어둠에 대한 연상들이 구약성서와 초기 기독교 안에 풍성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구약성서 안에서의 빛


탄생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구약성서도 빛의 상징이 가득합니다.
창조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처음으로 빛을 창조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창세기 1장 3~5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하십니다.  이 빛은 해나 달, 별들의 빛이 아닙니다. 이런 빛은 넷째 날에 비로소 창조됩니다. 그러므로 첫날 창조하신 빛은 원초적인 빛, 해와 달과 별 이전에 존재했던 빛인 것입니다.

모세 오경에서 빛의 이미지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불꽃, 연기, 횃불, 불기둥 등으로 그려집니다. 호렙산의 하나님은 떨기나무의 불꽃,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시편 119편 105절에도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고백하므로 구약성서 안에는 빛의 관한 이야기들이 풍성합니다.

빛과 어둠의 상징은 예언서에도 계속됩니다. 이사야 9장 2절에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깊은 어둠의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큰 빛’이신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하고 그 예언은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 신약성서 안에서의 빛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다마스커스를 가는 길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을 합니다. 사도행전은 이 이야기를 세 번에 거쳐 전하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추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큰 빛’으로 경험함으로 바울은 눈이 멀었지만, 사흘 후에는 그의 시력이 회복되었고,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9:18)’나갑니다. 큰 빛이신 주님을 만난 후 ‘마음의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서술할 때 ‘빛과 어둠’을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합니다. 요한복음의 서문은 창세기처럼 ‘태초에’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있었던 것은 말씀, 그리스어로 ‘로고스’였습니다. 로고스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하나님이셨고, 로고스를 통해서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빛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그의 안에서 생겨난 것은 생명이었으니, 그 생명은 모든 사람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1:4,5).“ 로고스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모든 사람의 빛이었습니다. 몇 구절 뒤에, ”그 빛이 세상에 오셨으니,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시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에 ‘참 빛’은 물론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읽은 말씀이 실질적으로 예수님의 성탄이야기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성육신으로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새 예루살렘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는 해와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영원한 빛)이 그 도성을 밝혀줄 것이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빛의 도시이며, 그 빛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과 예수님의 현현인 것입니다.
 

■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빛


마태는 동방박사들의 예수의 탄생 장소에까지 인도한 베들레헴의 별 이야기 속에서 빛의 상징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별은 오늘날 GPS(지구적 위치 추적 시스템)처럼 정확하게 예수가 태어난 장소로 길을 안내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빛이 어둠 속으로 들어온 사건’입니다. 그러나 어둠은 그 빛을 끄려고 합니다. 헤롯왕이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밉니다. 이렇게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과 어둠을 상징하는 유아학살은 마치 모세가 태어날 당시 이집트에서의 유아학살과 흡사합니다. 마태는 예수님과 모세, 이집트와 로마제국, 파라오와 네로황제 등의 이미지를 중첩시키면서 예수님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제2의 출애굽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성탄과 관련된 두 가지 찬가가 울려 퍼집니다. 하나는 마리아의 노래요, 다른 하나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부르는 찬가입니다. 주제는 ”오실 예수님이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 될 것이며,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 즉 ‘영원한 빛’이시라는 것입니다.
 

■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빛


공관복음을 중심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빛’의 상징을 찾아보았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 5:14),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너희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 6:2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눅 8:16, 11:33).”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눅 11:35,36).”

요약하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네 안에 있는 빛을 밝혀 어둠 속에 있는 많은 이들이 보게 하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둡습니다.
그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 성탄을 축하하는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주님,
성탄을 축하하며 모인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주옵소서.
주님, 지금 이 세상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 전쟁과 기후변화와 전염병의 창궐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빛으로 살아가야할 이들이 어둠과 짝하여 자기 안에 등불이 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어두운 시대에도 주님의 빛을 바라보며, 갈망하며, 그 빛을 마음에 모시고 빛으로 살고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빛을 끄지 마시고, 그 빛이 온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게 하옵소서. 빛으로 오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PT음성설교는 25일 11시부터 들으실 수 있습니다.
PPT음성설교 / 빛으로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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