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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4주] 입춘의 사람이 되자

  • 관리자
  • 2021-01-3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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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4주] 입춘의 사람이 되자
창세기 3:1-7



코로나19와 함께한 시간이 어느덧 일 년이 지났습니다. 작년 이맘때 ‘코로나19’로 인해,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리게 되었을 때, 꽃 피는 춘삼월이면, 부활주일이 되기 전에는 다시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비대면 예배가 이어졌고, 대면예배도 1,2부로 나눠 드렸고, 다시 2개월 이상 비대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여전히 낯설고 어색합니다. 
적막감이 감도는 예배당에서 비대면 예배를 위한 설교영상 녹화를 하고, 목양실에서 홀로 함께 드리는 예배를 상상하며 예식 순서에 따라 녹음하고 편집하는 일들은 여전히 낯설고 어색합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 먼저 오셔서 기도하시던 교우들의 모습도 그립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언덕길을 오르시는 교우들의 모습도 그립습니다. 함께 부르던 찬양 소리도, 성가대의 찬양소리도 그립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한 시기이니 어쩔 수 없지요.



이제 사흘 뒤면 입춘입니다.
강원도에도 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 복수초도 피었다 하고, 매화도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듯하지만, 이제 겨울도 서서히 뒷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 해의 시작은 봄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졸업과 입학,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 겨우내 움츠렸던 몸도 기지개를 켜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졸업과 입학, 새 학기 등이 실감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새롭게 명랑하게 맞이하고 보내려고 노력하십시오.
 

■ ‘에덴동산’ 새롭게 바라보기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창조세계에 죄가 슬그머니 들어오고,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든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 본문에 대해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시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에덴동산에서 사망, 질병, 슬픔, 고통, 늙음과 같은 아픔도 겪지 않았을 터인데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상 끝에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해서 우리는 원죄를 안고 살아가니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실패작이 아닌가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사실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우리에게 구세주가 필요했고, 아담과 하와로 인해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이 열렸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유혹에 빠짐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장난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자유의지를 갖춘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죽음을 인식하며 사는 유일한 피조물이 되었고, 질병과 슬픔과 고통과 늙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삶을 경험하면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아담과 하와의 실패나 하나님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인간의 삶에는 언제나 사탄의 유혹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삶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상징하는 이야기입니다.


■ 실패, 또 다른 선택으로 초대하는 초대장


선악과가 그러하듯, 삶에서 완전히 나쁜 것은 없습니다. 
젊은 시절 변호사였던 마하트마 간디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경험했기 때문에 비폭력 저항운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영국으로부터 인도가 독립할 길을 열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시각과 청력을 잃었기에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상실이나 실패는, 우리의 영혼을 굳어지게 하려는 생활 방식으로부터 탈출할 기회를 줍니다. 그런 점에서 실패는 또 다른 삶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이기도 한 것입니다.



실패나 상실은 끝이 아니라, 다른 목적지로 향하게 하는 또 다른 길입니다. 
우리 사회의 비극은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세상이란, 실패한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입니다. “실패해도 괜찮아! 누구나 실패할 수 있어!” 이것이 꿈같이 여겨지신다면, 지금 여러분이 사는 세상은 아이들의 말로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실패한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 슬그머니 다가오는 유혹 앞에서


뱀의 등장과 함께 에덴동산의 평화가 깨집니다. 성서는 ‘뱀이 가장 간교했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뱀은 사람 마음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듭니다. 마치, 하와를 동정이라도 하듯이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창3:1)” 유혹은 이렇게 위해주는 척, 염려하는 척하면서 찾아옵니다. 그러나 아주 교묘한 거짓말이 숨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하신 것이 아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창2:17)’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라는 교묘한 말로 포장하여 ‘설마 그럴 리가’하는 뉘앙스로 위로하는 듯 포장하며 유혹하는 것입니다. 신천지가 외로운 영혼들을 위로하는 척 다가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자 하와가 대답합니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다음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와는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보탬으로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자 뱀이 이 틈을 파고듭니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절대로’, 참 위험한 말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마치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아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열매를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3:5).’



어떻습니까?
우리 시대의 유혹자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을 다 아는 듯 행세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절대화하고, 자신들만 철저하게 신앙을 지킨다며 대면예배를 고집하고, 이런 엄중한 시기에 부흥회를 하고, 기도회를 합니다. 사실, 다 안다고 하는 자들처럼 무지한 이들은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지’를 이야기했고, 노자 역시도 ‘안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인간의 인식 안에 들어오는 하나님,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면 절대자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비요, 경외의 대상이요, 인간은 기껏해야 하나님의 뒷모습 혹은 옷자락만 겨우 만질 수 있을 뿐입니다.’ ‘이제 겨우 알겠습니다.’ 하는 순간 하나님은 저 멀리에 계십니다.

유혹은 슬그머니 다가옵니다. 사탄은 흉측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위로하는 척, 동정하는 척, 마치 자신이 하나님에 대하여 다 아는 척 슬그머니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슬그머니’는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덷전 5:22).”고 하십니다.
 

■ 죄의 사회성


뱀은 자기의 말을 마치고 하와를 떠납니다. 뱀이 떠난 후, 하와는 눈을 들어 그 나무의 열매를 바라봅니다.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그 나무를 바라보니, 뱀의 말을 렌즈로 삼아 바라보니 어떻게 보였습니까?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창3:6).”

그러자 하와는 열매를 따서 먹고 아담에게도 줍니다. 죄를 전염시킨 것입니다. 이것을 ‘죄의 사회성’이라고 하는데, 금지된 일을 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그 일에 동참시키려고 애를 쓴다고 합니다. 그래야 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두 사람은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이 부끄러웠습니다. 숨겨야할 일이 생긴 것이요, 서로에 대해서도 떳떳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그들을 추방시키실 때에 ‘가죽 옷’을 만들어서 입혀주셨습니다. 죄를 졌지만,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합니다.
 

■ 입춘의 사람이 되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이들을 수단화하면서도 능력으로 여깁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일까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만나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고 존중하고,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 아끼는 존재로 만들어졌음을 인정하고 또 그렇게 여겨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삭막한 세상이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상이 온통 겨울인 것 같지만, 봄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니까 봄이 오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의 자극적인 뉴스를 믿지 않습니다. 뉴스에 나오지 않는,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봄꽃 같은 따스한 소식들이 더 많다고 믿습니다. 세상의 렌즈를 끼고 보면, 나쁜 것만 보이고, 나쁜 것만 보게 되면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아직도 세상은 살만합니다. 에덴동산조차도 실패가 아니라 구원의 역사인 것처럼, 지금 겨울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겨울 속에 들어있는 봄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슬그머니 다가오는 유혹들을 물리치십시오. 그런 삶을 추구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분들이 바로 봄을 불러오는 분들입니다.

사흘 후면 입춘입니다. 
입춘은 ‘봄이 선다.’는 뜻입니다. 김기석 목사의 주옥같은 신앙고백을 소개해 하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거칠고 냉랭한 세상이지만 그 속에 온기를 불어넣는 이들, 사람들 마음속 얼음을 녹이는 봄볕이 되는 이들이 되십시오. 겨울 한복판에 우뚝 서는 봄처럼, 우리는 입춘의 사람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거둠 기도]

주님, 세상이 겨울처럼 차갑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일 년 우리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우리를 근본에서부터 돌아보게 하였사오니, 주님, 입춘의 사람들을 통해서 새 세상을 열어주옵소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겨울 속에 들어있는 봄을 보게 하시고,
거칠고 냉랭한 이 세상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이제 봄이 옵니다.
우리의 역사에도, 우리의 삶에도 봄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우리가 입춘의 사람이 되겠사오니 주님, 우리를 들어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음성설교듣기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949648


동영상예배보기
https://youtu.be/NRUg53-dB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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