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2주(2021년 1월 17일)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고린도전서 6:12~20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오늘은 주현절 둘째주일입니다. 주현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기억하며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몸’으로 번역된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소마soma’에서 왔는데 ‘총제적인 생명체’라는 의미로 영과 육이 합일되어 하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한글에서 ‘몸’이라는 단어는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있음이 형상화되어 있는 단어요, 몸은 하늘과 땅, 영 혹은 육의 합일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인간을 지칭하는 단어는 ‘소마, 사르크스, 프뉴마, 프쉬케’ 등이 있는데, 소마는 ‘몸’, 사르크스는 ‘육신’ 프뉴마는 ‘영’, 프쉬케는 ‘혼’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른 것에 불과합니다.
예를들면, 원기둥을 위에서 바라보고 원이라고 하고, 정면에서 바라보면서 사각형이라고 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영과 육신이 분리된 인간은 실체를 가질 수 없습니다. 영만 존재하는 인간 혹은 영 없이 육체만 존재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둠과 빛이 분명하게 나눠질 것처럼 생각하는데 익숙합니다. 그 이유는 서구철학의 ‘이분법’에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서구철학의 이분법은 이원론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원론은 아주 오래전부터 기독교의 근본적인 사상을 교묘하게 흔들고자 시도했습니다. 덕분에 기독교신학도 이런 사설과 투쟁하면서 체계화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당시 대표적인 이단사상은 영지주의였습니다. 영을 지나치게 신성시한 나머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도 부정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 땅에, 그것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땅과 육신은 곧 타락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즉 하나님의 죽음을 더더욱 인정할 수 없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부정하니 부활도 부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영지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 쓰인 복음서가 요한복음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시작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영지주의적인 이원론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어져 오면서 기독교를 왜곡하면서 신앙인들이 바른 길을 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그들이 정체가 드러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그들을 기독교 혹은 교회라고 생각하기에 건강한 교회들조차도 도매 급으로 비난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며 대면예배를 고집하고, 전염병 확산의 근원지가 되고 있는 단체들은 제 아무리 기도원이니 교회니 간판을 달았어도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단체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소마(soma)의 의미로 쓰인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로마서 12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는 ‘몸’은 우리의 영과 혼과 육체 모두를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모든 것,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신명기 6장 5절에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말씀은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이원론자들의 주장처럼, 몸이 정신이나 혼이나 영혼보다 저급한 것이라면, 어찌 우리가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몸은 단순한 물질, 썩어질 것, 껍데기, 정신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15절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 내 몸은 내 것이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은 그리스도의 몸이니 거룩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위해서만 사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음식이 배를 위해서 있는 것이지, 배가 음식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몸은 음행이나 쾌락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몸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몸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이요, 다른 사람의 몸을 함부로 여기는 사람은 자기의 몸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엽기적인 사건들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아동학대, 동물학대, 가진 자들이나 힘센 자들의 폭력 등 남의 몸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입양아 정인이의 사망사건은 물론이려니와 반려견을 목줄로 묶어 쥐불놀이하듯 돌리고, 길고양이들을 잔인하게 죽여서 영상과 사진을 공유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건 사람들이 할 짓이 아닙니다. 타인의 몸을 학대하는 것은 곧 그의 영혼을 죽이는 일이요, 그런 일을 무감각하게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하는 이들은 곧 음행하는 이들입니다. 그런 일들은 결국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됩니다. 아니, 이미 죽었습니다. 영과 육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야 온전한 몸인데 영이 죽어버렸으니 껍데기만 남은 것입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내가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려면,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의 몸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소중하게, 이웃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일,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웃이야 어찌되든 말든, 나만 예배 잘 드리면서 신앙을 지키겠다고 하는 이들은 자신의 신앙뿐 아니라 이웃의 신앙까지도 파괴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런 이들로 인해 한국교회와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고, 주님이 피로 세우신 교회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자들의 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것입니까?

둘째로, 19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성전’입니다. 우리 몸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이 내 것인 냥, 내 마음대로, 나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고, 내 몸이 성령의 성전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눈에 보이는 성전인 한남교회당을 생각해 보십시오. 엄밀하게 말하면 건축물이 예배당 혹은 교회당이 성전이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배당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면서 새롭게 회복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건물에 불과했지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며, 새롭게 회복되는 장소이기에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도 소중하게 여기지만, 주님의 전인 교회도 소중하게 여기고 예배하기 좋은 곳으로 가꿔가는 것입니다. 내 몸을 가꾸고 사랑하듯, 교회를 가꾸고 사랑해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우리안의 ‘성령의 전’의 거룩성을 회복하니, 이 회복의 장소를 또한 거룩하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20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라는 값을 치르고 하나님께서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나는 어쩌다가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창세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사는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이 위대하고,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그리스도의 지체요, 성령의 전이요, 값을 치르고 하나님께서 사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잊고 살면 우리는 금수만도 못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나뿐만 아니라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이웃도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와 취향이 맞아서, 나보다 잘나서 혹은 나만큼은 되니까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나와 달라도, 나보다 연약해도, 나보다 못해도 소중한 존재로 여기고 존중하십시오. 그러면 이웃을 살리고 동시에 나도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셋째로, 전부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산이나 물질을 다 드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단 사이비에서는 결국 여기에 방점을 찍지만, 전부를 드리라는 말씀은 온 정성을 다해 주님께서 주신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냥 열심히 살아가만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최대의 관심사이자 내가 가장 열심히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를 늘 묻고 사는 것이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냥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다 장벽에 부닥치면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되 방향성을 잃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론 힘겨운 날도 있을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힘이 다하고 나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자신의 지체인 우리의 몸을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많이 어둡습니다. 사람들은 몸으로 온갖 쾌락과 유혹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이들이 하나 둘 모여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고, 결국 어둠을 이겨낼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모든 분들의 삶이 주님의 도우심으로 온전히 회복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기도]
죄로 인해 죽음의 길로 달려가던 우리를 십자가 보혈의 피로 사신 예수님, 창세전에 우리를 향한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지체로 삼아주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를 거룩한 성전으로 세우시는 성령님, 코로나19와 맘몬의 세상에서 힘에 겨워 지쳐 비틀거리는 우리의 몸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주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말씀하시오니, 힘을 내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음성설교와 설교영상보기(예배영상)는 준비되는 대로 업로드하여 링크를 걸겠습니다.
음성설교듣기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937015
설교영상보기
https://youtu.be/3o2RKIQvA3I
보내드린 주보를 참고하시면서 영상에 따라 예배하시면 됩니다.
가급적 주일 아침 11시에 드리면 좋습니다만,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시간에 드리셔도 좋습니다.
TV로 연결하여 보시면, 큰 화면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