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0일/ 주현후 제1주
폭풍 속 주님의 음성
시편29:1~11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오늘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현현을 기념하는 절기인 주현후 첫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일 성서일과 시가서는 ‘폭풍 속 주님의 음성’이라는 제목이 붙은 다윗의 시입니다. ‘폭풍’이 상징하는 바는 ‘고난’입니다. 시편 29편은 폭풍 속에서 만난 하나님과 폭풍이 지난 후 펼쳐질 세상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한 시입니다.

흑암으로 가득했던 세상에 “빛이 있으라!”하시는 창세기의 말씀을 재현한 듯한 노래입니다. 시인은 ‘폭풍 속에서’ 향기로 빛으로 소리로 오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향기가 어지러이 드날리고, 위엄이 한 없이 빛나며, 거침없는 소리가 온 세상에 퍼져나갑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들에게는 자신들을 무너뜨리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시간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평화의 복을 주시는 시간이 도래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폭풍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향기와 빛과 소리는 퍼져나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이 퍼져나가는 현상을 물리학자 김상욱은 <떨림과 울림>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는 >떨림과 울림>이라는 책에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정지해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떨림이 너무 미세해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떨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소리와 공기, 빛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떨림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볼 수 없는 떨림, 느낄 수 없는 떨림이 가득한 우주의 숨겨진 비밀을 이해했을 때, 과학자는 전율을 느끼고, 이 떨림에 인간은 울림으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빛은 주파수에 따라 마이크로파, 전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등으로 나눌 수 있지만, 인간은 그 중에서 가시광선만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소리가 있지만 인간은 아주 느리거나 빠른 소리, 즉 초음파는 들을 수 없습니다.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고, 보이지 않는 빛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과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고, 보이지 않는 빛이 있다.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우주의 신비를 보면서 느꼈던 ’외경‘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묵상했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하나님, 우리가 느끼는 하나님은 아주 일부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시간의 향기>라는 책에서, 이런 신비함을 사색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시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깊은 성찰을 통해서 ’뭔가 맑은 울림이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29편 ’폭풍 속 주님의 음성‘은 ’하늘의 소리‘입니다.
하늘의 소리를 다윗은 세 가지 단어로 표현합니다. 3절부터 9절까지 반복되는 단어는 ’목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단어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4절에서 이 소리는 ’백향목‘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단어는 ’향기‘입니다. 7절에 ’주님의 목소리에서 불꽃이 튀긴다‘고 하면서 ’빛‘이라는 단어를 제시합니다.
즉, 향기와 빛과 거침없는 소리가 온 세상에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오경웅의 시편에서는 이 분을 아주 분명하게 해석을 했는데 ’거룩한 이름 향기 가득하고, 위엄은 밝히 빛나니, 야훼의 소리 깊어라‘하고 해석했습니다.
향기는 숨길 수 없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침없는 소리는 울림이 되어 온 세상에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향기가 어지러이 드날리고, 하나님의 위엄이 한 없이 빛나고, 하나님의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지만 그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리학자 김상욱 박사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고, 보이지 않는 빛이 있듯이, 맡을 수 없는 향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시인은 향기와 빛과 소리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생생하게 경험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신비를 인간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입 다물고 있을 수가 없어서 아이처럼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폭풍 속 주님의 음성‘으로 인해 땅 위에 거하는 모든 것들이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시편 29편을 통해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두려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닙니다. 9절에 ’그분의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영광!”하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외치는 이유는 10절과 11절에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범람하는 홍수를 정복하시고, 주님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시고, 평화의 복을 내리신다.”
폭풍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한 다윗은 시편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시를 요약해 보면, 여호와는 나의 방패시오, 산성이시오, 목자시오, 요새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으로 인해 날마다 힘을 얻어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린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peace’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단순히 갈등이나 물리적인 폭력 혹은 전쟁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평화로 ‘팍스 로마나(Pax Romana’입니다. 팍스 로마는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로 이어졌습니다. 즉 힘 있는 자들에 의한, 힘 있는 자들을 위한 평화입니다. 무력에 의한 평화, 그것은 불완전한 평화요, 언젠가는 깨어져야만 하는 평화입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shalom’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이 온전히 자신의 삶을 피워내는 평화입니다. 힘없는 자들의 평화입니다. 완전한 평화요,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진 곧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폭풍으로 인해 세상의 평화조차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평화인 샬롬의 완성은 세상의 평화가 이뤄진 다음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샬롬’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을 속히 회복해야겠지요. 그런데 저는 이런 일상의 회복을 치료제나 백신, 즉 인간의 과학기술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우려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료제나 백신이 나오면 코로나 19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치료제나 백신도 중요하겠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단순히 세상의 평화인 peace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shalom을 이루려면 코로나19가 창궐하게 된 이유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추구해왔던 인간중심의 삶의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올해 비전인 ‘주께로 돌이키사, 진리와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의 ‘주께로 돌이키는 것’만이 코로나19의 근원적인 해결책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기후변화, 이것은 코로나19보다도 더 큰 폭풍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인간이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지금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세계 지도에서 사라질 나라들이 속출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과도한 경쟁사회와 부의 편중으로 인한 출산저하로 인해 현재 5천만 인구는 40년 뒤에는 2천5백만 명 정도로 반 토막이 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40년 뒤에는 붕괴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새해에 절망적인 전망을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지금 우리가 단순히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에만 희망을 걸고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로 돌이켜 진리와 사랑으로 살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면 희망이 없는 것일까요?
저는 이런 암울한 미래전망에도 불구하고, 폭풍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시편 29편의 말씀을 통해서 ‘폭풍 속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어떻게 해야 희망을 볼 수 있을까요?
먼저 2절의 말씀입니다.
“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려라.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라.”
‘거룩한 옷’이 의미하는 바는 ‘회개’입니다. 주님께로 돌아가 이제부터는 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희망은 시작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앞에 우리의 삶을 내어놓고, 나만을 위해 살던 삶에서 돌이키십시오. 우리의 삶에 주님께 영광을 돌릴만한 일을 하고자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11절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내리신다.”
주님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평화 peace가 아니라 하늘의 평화 shalom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삶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우리가 맡는 향기가, 보는 빛이, 듣는 소리가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
우리가 전망하는 절망적인 미래가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폭풍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회개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 여기에 실마리가 있습니다. 이 삶을 살아가면, 우리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를 깨닫게 되고, 주님의 전에 모인 하나님의 백성이 “영광!”하며 외쳤듯이 우리 삶에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폭풍과도 같은 세상, 넉넉하게 이겨나가시길 축복합니다.
“주님께서는 범람하는 홍수를 정복하시고, 주님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시고, 평화의 복을 내리신다.”

[거둠 기도]
주님, 코로나19로 우리는 폭풍가운데 흔들리는 일엽편주에 매달린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파괴, 정의롭지 못한 맘몬의 지배 앞에서 방향을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돌이키겠사오니, 진리와 사랑으로 살게 하시고, 잃어버린 아들을 맞아주셨던 아버지처럼 우리를 품에 안아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하옵소서.
주님, 은혜를 부어주시어 코로나19가 속히 지나가게 하시고, 이 폭풍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삶을 깊이 성찰하게 하옵소서.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음성듣기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929264
영상보기
https://youtu.be/wkwVCoc4M9k
1월 10일 0시에 최초방송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