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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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송년주일] 모든 것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 관리자
  • 2020-12-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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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송년주일
모든 것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148:1~14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다사다난했던 2020년도 어느덧 마지막 주일입니다. 올해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19로 인해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의 일상들이 일그러졌습니다. 대림절이 오기 전에 비대면 예배를 드렸고, 1,2부로 나눠서 예배를 드리다가, 대림절이 시작되던 때에 다시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성탄절, 송년예배를 비대면 예배로 드렸고, 며칠 뒤에 있을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주일 예배도 비대면 예배로 드려야만할 것 같습니다. 2021년이 된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봄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버텨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예배가 성탄절까지 이어지면서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제 되었습니다. 너무 비참합니다.
저 깊은 밑바닥까지 철저하게 회개하겠사오니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해와 달과 별과 물과 산과 짐승과 새가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높여주옵소서.”

목사의 즐거움은 열심히 설교를 준비하고 선포하고 교인들과 매주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대면 예배가 길어지면서 이런 피드백에 문제가 생기니 참 많이 힘듭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의 시간 속에 깃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가늠하기 위해 힘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국가가 교회를 핍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믿음을 가지고 예배하면 코로나 19도 걸리지 않고, 걸린다고 하더라도 영광의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교인들을 현혹합니다. 그러나 질병의 문제와 믿음의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교회가 질병확산의 근원지가 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런 위중한 때에, 대면예배를 고집하고 심지어는 부흥회까지 하면서 코로나19로 확산시키는 교회들과 목사들은, 제 아무리 양적으로 큰 교회를 이뤘다고 할지라도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함께 예배하지 못하는 아픔을 견뎌내며, 우리의 신앙을 지켜가는 시간입니다. 자신들의 평안을 위해 예배를 고집하는 이들보다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이들은 더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어지는 비대면 예배로 인해 힘겨워하시는 여러분들을 붙잡아 주시고 위로해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송년주일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시편 148편의 말씀입니다.
시편 145편부터 150편까지는 ‘찬양시’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들을 열거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그의 피조물인 인간의 도리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시편 148편을 묵상하면서 ‘코로나시대’를 불러온 인간의 무지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코로나 19가 창궐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 드려야할 찬양을 인간이 가로챘기 때문이라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편의 시인은 하나님께 찬양할 이들이 누구인지 열거합니다.



주님의 모든 천사, 주님의 모든 군대, 해와 달, 빛나는 별, 하늘 위의 하늘, 하늘 위에 있는 모든 물, 온 땅과 바다의 괴물들과 바다의 심연, 불과 우박, 눈과 서리, 세찬 바람, 모든 산과 언덕, 모든 과일나무와 백향목, 들짐승과 가축, 기어 다니는 것과 날아다니는 새, 세상의 모든 임금과 백성들, 모든 고관과 재판관들, 총각과 처녀, 노인과 아이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찬양하라!”고 명령한다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찬양이 절로 나와야 할 터인데, 찬양하며 살아가야할 그들의 삶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즘 코로나19에 온 관심사가 집중되어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심 있게 살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AI 조류독감으로 인해 산채로 가금류들이 매장당하고 있습니다. 구제역이 생기면 산채로 소와 돼지들을 땅에 파묻습니다. 잔인한 상상이지만, 아마 우리 인간에게도 누군가 가금류나 가축에게 인간이 행하듯 한다면, 코로나19로 감염된 인류도 생매장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에게 고기와 알을 제공해주는 가금류들을 한 푼이라도 더 이익을 챙기겠다고, A4용지 한 장도 안 되는 공간에 가둬두고 키웁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리를 잘리고, 항생제로 범벅이 된 사료만 먹고, 열심히 수정되지도 않을 알을 낳다가, 알을 낳지 못하면 바로 산채로 드럼통에 들어가 털이 뽑혀 죽어 인간의 식탁에 오릅니다. 그들이 그런 상황인데, 그들에게 “주님을 찬양하여라!”한다면 얼마나 잔인한 일입니까?



현대식 축산산업과 대규모 농장은 항생제와 화학약품과 GMO 등으로 범벅되어 동물이고 식물이고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습니다. 그것을 음식으로 먹고 사는 인간은 또 어떻습니까? 모유 시대를 지나 분유시대가 도래하였을 때 “요즘 아이들이 거친 것은 소젖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아주 틀린 말이었을까요? 저는 아주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먹는 음식과 인간의 성격형성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인류가 이토록 잔인해진 배경에는 인간이 먹는 음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태계를 보십시오.
생태계의 순환 고리가 거의 무너졌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흙의 유실로 인한 사막화, 그로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고 보는 이들도 많습니다. 코로나19도 우리 인간이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면서 생겨난 전염병입니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자연을 파괴한 결과는 고스란히 인간들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여러분, 시편 시인이 “주님을 찬양하라!”고 했던 대상들이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창조의 동역자로 부름 받은 인간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일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가식적인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성경말씀 좀 읽고, 성경공부하고, 기도하고, 헌금하는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세상, 그 세상에서 자신을 위시한 모든 피조물들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힘쓰는 삶’이 진짜 신앙생활입니다.





이제 인간의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세상의 모든 임금과 백성들, 세상의 모든 고관과 재판장들, 총각과 처녀, 노인과 아이들아 주님을 찬양하라(시 148:11~13a).”

이 말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을 총칭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풍성함을 피워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가능성 “살아가라!”는 명령인 ‘생명’을 피워내는 일입니다. 다른 피조물들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신앙인들의 일입니다.



아동학대가 만연합니다.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너무 잔인합니다. 인권 사각지대에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난 23일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영하20도의 추위에 난방기가 고장난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다가 동사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오늘날 능력주의 시대는 그들의 고통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도록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는 한 겨울에 난방기가 고장 난 비닐하우스에서 자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능력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맹점이 있는데,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모든 것을 누린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낙오자들은 자신의 성공한 사람보다 덜 노력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 예를 들어볼게요.
<슈퍼맨이 돌와왔다>-슈돌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거기에 출연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가 연예인인 경우입니다. 아이들은 그냥 열심히 놀고, 그걸 편집해서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아마 출연료도 받겠죠? 이에 반해서 얼마 전에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에게 맞아 숨진 16개월 된 아이에 관한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슈돌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는 어떤 노력을 했고, 입양아는 어떤 노력을 하지 않은 것입니까?

개인의 노력문제가 아니라 어떤 부모를 만났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운명이 달라진 것입니다. 슈돌에 나오는 아이들보다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입양아가 노력을 덜해서가 아니라, 슈돌에 나오는 아이들이 운이 좋았던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입은 것이지요. 



오늘 우리 사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이들이 아동뿐 아니라 성소수자를 위시하여 비정규직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독거노인들 등 사회적인 약자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걸 바꾸자고 하는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내세우며 반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그런 부류들은 대부분 이번 코로나19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대면예배를 고집했던 교회들입니다. 은혜로만 살아가는 존재라고 고백하면서, 감사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이 자기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감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열심히 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입고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노력이 아니라 은혜로 살아가니, 감사할 수밖에 없고,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누리는 것이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는 자각은 나눔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코로나19로 인해 힘겨운 한 해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엄중한 시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이렇게 예배하고 있습니다. 감사하시고, 그 기쁨을 찬양하십시오. 메시아로 오신 하나님은 지금 이 땅에서 ‘모든 것이 주님을 찬양‘하는 조건을 만드시기 위해 힘써 일하십니다. 새해에는 그분의 손을 잡아 도우시는 귀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거둠기도]

우리의 모든 삶을 은혜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힘겨운 한 해를 보냈지만, 또한 이 시간 우리의 약함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심 감사드립니다.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데에만 급급하지 말게 하시고,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신앙이 더 깊어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함께 살아가야할 이웃들과 함께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오는 새해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옵소서.
역사의 주관자시요,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음성듣기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918439

예배동영상(12월 27일 0시에 OPEN합니다.).
https://youtu.be/3cqfx7mgT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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