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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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12주]내가 친히 목자가 되리라

  • 관리자
  • 2020-11-22 1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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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12주(20201122)
내가 친히 목자가 되리라
에스겔 34:11~16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오늘은 창조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주일부터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서일과는 창조절의 완결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창조절 마지막 주일에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겠다는 선물 같은 메시지를 에스겔서를 통해서 주십니다. 오늘 읽은 말씀의 이해를 위해서 어떤 상황에서 이 말씀이 전해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에스겔서는 바벨론 포로기를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발 강가에서 환상을 본 에스겔은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들이 포로로 잡혀 온지 12년 즈음이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기원전 587년에 남왕국 유다까지 멸망했으므로, 기원전 600년경이 되겠습니다.


기원전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의 식민정책은 혼혈족속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앗시리아의 혼혈정책에 의해 만들어졌고, 남왕국 유다는 혈통을 지키지 못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행해진 제국 앗시리아에 의해 유린당한 동족을 위로하기는커녕 이방인보다도 못한 개 취급을 하며 사마리아인을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관련이 없는 이들로 취급했습니다. 제국에 의해 나라가 망한 것도 억울한데 동족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한 북왕국 이스라엘은 그리심 산에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그러나 유명한 ‘수가성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북왕국 이스라엘조차도 그리심 산에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렇게 갈등의 세월을 살다가 135년 후에 남왕국 유다도 결국 제국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초토화되고 멸망하여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바벨론의 식민지정책은 앗시리아와는 다르게 포로지의 백성들을 자기 나라로 끌고 갔습니다.
포로로 끌고 가서 고위직에 임명하기도 하면서 동화정책을 펼쳤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그런 유형에 속했습니다. 남왕국 유다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에 빠져있을 때에도 거짓선지자들과 권력자들은 호위 호식했고, 포로지에서도 그 상황은 이어졌습니다. 여전히 거짓선지자들과 바벨론에 의해 한 자리 권력을 얻은 이들은 고향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곳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복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합리화해주는 거짓선지자 하나냐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이고, 이 예언의 말씀은 400년 후, 예수님이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당시의 상황을 보면 이렇습니다.
바벨론 포로지에 살던 이스라엘 목자들과 지도자들은 자기 배를 채우는데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목자는 양 떼를 먹이는 자들이건만, 그들은 양젖을 짜서 마시고, 양털로 옷을 지어입고, 양고기를 먹으면서도 양 떼를 먹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약한 양을 돌보지 않고, 아픈 양을 치료하지도 않고, 상처받은 양들도 싸매주지 않고, 잃어버린 양들도 찾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자가 없어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양떼를 돌봐주지 않음으로, 양떼들은 이리의 손쉬운 사냥감이 되었습니다. 자기들의 배만 불리는 목자들, 그들에게 하나님은 “제 배만 불리는 목자는 필요 없다. 해고다! 이제 내가 친히 내 양떼를 구할 것이다!”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저는 오늘 본문말씀 앞에 있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날의 거짓 목사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험한 세상에 살면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서 파리하고 병들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목사들, 거짓 목사들에 이골이 나서 교회를 떠난 가나안 성도들을 찾지도 돌보지도 않는 목사들, 그리하여 신천지나 이단의 먹이가 되도록 방치하면서도 제 배만 불리는 목사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교회는 나오고 싶지만, 교회 언저리를 겉돌고 있는 가나안 성도가 최대 100만 명이라는 보고도 있으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내던져진 교인들로 인해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서두에 하나님은 “내가 친히 그들의 목자가 되어주겠다.” 선언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돌보고, 뿔뿔이 흩어진 양 떼를 찾아 나설 것이며, 폭풍우를 만나 흩어진 이들을 구해낼 것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친히 그들의 목자가 되어’ 양떼가 마음 편히 쉬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딴 길로 들어선 양들을 데려오고, 상처받은 양들을 싸매 주고,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하고, 힘센 양들을 잘 감시하여, 약한 양들이 착취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복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남교회의 목자가 되시고, 여러분의 목자가 되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이끌어주시는 목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주시겠다는 선언이 이뤄지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본문에 ‘힘센 양’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을 보면 이렇습니다. 목장의 꼴을 밟고, 맑은 시냇물을 더럽혀서 나머지 양들이 먹지 못하게 합니다. 힘이 있다고 어깨와 엉덩이와 뿔로 들이받아 약한 양들을 사방으로 흩어버립니다. 그리하여 흩어진 양들은 파리해지고, 비쩍 마르고, 약해져서 이리의 먹잇감이 됩니다. 선한 목자가 원하는 것은 양들이 좋을 꼴을 먹고, 맑은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냐 같은 거짓 선지자들을 따르는 힘센 양들이 그 일을 망쳐놓습니다. 

하나냐 같은 거짓선지자들을 따르던 이들, 그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요? 거짓 목자들의 헛된 가르침에 속아 넘어간 이들입니다. 그러니 믿음 혹은 신앙을 지킨답시고 꽃을 밟고, 물을 더럽히고, 보살핌이 필요한 약한 양들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생각이 없는 것이죠.


함석헌 선생님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신앙에 접목하면 ‘생각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목사의 말이라고, 신학자의 말이라고, 성경을 인용한다고 무조건 아멘하지 말고, 생각하고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이 성경을 얼마나 잘 인용합니까? 사회적인 약자들을 차별하는 이들이 얼마나 달콤한 사랑의 언어로 차별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까? 거짓선지자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하여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이들 사이에서 판단하지 못하는 일이 횡행합니다. 바벨론 땅에서 이런 혼동의 삶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에스겔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서, 살찐 양과 비쩍 마른 양 사이의 일을 바로 잡아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22절의 “양과 양 사이의 모든 일을 바로 잡아줄 것이다”라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여러분, 생각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사설은 아주 교묘합니다. 목사인 저도 그들의 거짓 사설을 하나 둘 반박하려면 머리가 찌근거릴 정도입니다. 특히, 문자주의에 빠진 이들은 대화자체가 불가합니다. 어떤 때는 굳이 저런 이들과 싸울 필요가 있나 싶다가도, 교회가 목사가 다 그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에 힘들어도 싸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생각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때론, 나의 생각이 옳은지 아닌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양과 양 사이의 모든 일을 바로 잡아주실 것’이라고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안개와도 같은 혼란스러움을 걷어내시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겸손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교만’입니다. 구약성서에서 교만을 가리키는 단어 ‘가아와’는 ‘높이다’는 어원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백성들의 자고함을 묘사하는데 사용됩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교만한 백성들은 듣지 않습니다. 성경은 교만을 단순히 자기를 높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자신과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태도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교만과 반대되는 것이 ‘겸손’입니다.
자기의 참 모습, 실상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참 모습, 실상을 보려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통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겸손해 지려면 ‘거룩한 독서(렉치오 디비나)’를 해야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며, 침묵가운데 기도해야 합니다. 


대림절이 시작되면, 교회차원에서 이런 시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거룩한 독서와 기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만, 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한 분씩 신청을 받아서, 본당 강대상에 준비된 곳에서 한 시간 성경을 읽고, 한 시간 기도를 하고, 12시에 저와 목양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매일 한 분씩 이렇게 나와 말씀을 읽고, 기도한다면 말씀과 기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먼저 오전 시간에 진행을 하고, 이후에는 직장인들을 위해 다른 시간대도 신청을 받아 진행하려고 합니다. 오전 릴레이기도를 진행하면서 보완해서 말씀과 기도 릴레이를 이어갈 것입니다.

게시판을 참고하셔서 신청하시고, 온 교우가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주, 대림절 첫째 주에 ‘거룩한 독서와 기도’라는 제목으로 자세하게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생각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고, 겸손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가 친히 목자가 되리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성취하실 것입니다. 생각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겸손한 신앙인이 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도 많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이들도 많고, 여기저기 참 선지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많은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랑이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에스겔이 예언의 말씀을 전하던 시대에 벌어졌던 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남교회는 하나님이 친히 목자가 되시고, 선한 목자로 인해 양떼가 마음 편히 쉬는 교회, 딴 길로 들어선 양들이 바른 길을 가는 교회, 상처받은 양들이 치유되는 교회, 약한 양들이 튼튼해지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 교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바로잡아주실 것입니다.*
 

[거둠 기도]
주님, 교회도 많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도 이토록 많은데, 이 세상은 왜 이토록 사랑이 메말랐는지 돌아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쳐도,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감언이설을 맹신하며 영혼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교만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주님,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오니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음성설교듣기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88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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