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주일/ 창립 65주년 기념주일
아름다운 교회(창립65주년 기념설교)
마태복음 16:13~20
오늘은 한 해의 결실을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이며, 한남교회 창립 65주년 기념주일입니다.
먼저 오늘의 한남교회가 있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시고 헌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인도해 주셨지만, 여러분의 수고와 헌신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한남교회는 존립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삶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에 대한 응답의 결과입니다.

64주년을 맞이할 때 바자회를 열고, 교우들의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보낸 후, 65주년에는 더 잘 준비하여 추수감사주일과 바자회는 겨울이 오기 전에 진행하고, 11월 셋째주일에는 창립기념주일 행사를 성대하게 맞이하고자했습니다. 그러나 계획은 우리가 하지만,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깊이 깨달으며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상이 이어졌고, 전 세계의 교회뿐 아니라 한남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비대면 예배와 거리두기로 인해 예배를 나눠드리고, 겨우 주일대예배만 드리고, 성가대도 운영하지 못하고, 친교의 식탁도 나눌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우려하던 대로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고 적응하면서 교회의 공동체성이 많이 약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전으로 곧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요원하고, 코로나19 이후의 교회에 대한 논의는 이어지고 있지만 혼란의 상황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교회가 간과해왔던 ‘교회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여느 때보다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이후에는 그 어떤 형태이든지 ‘교회다운 교회, 교회의 본질을 지키는 교회’만이 우뚝 설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한남교회가 코로나19로 인해 겪는 어려움들을 잘 극복하고 아름다운 교회로 우뚝 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한남교회가 아름다운 교회로 서가는 과정에서 저마다 드리는 수고와 헌신을 통해서 큰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의 일입니다.
빌립보 가이샤라 지방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에 대한 수많은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졌습니다. 지금이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하지만,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실 당시에는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이도 있었지만, 선지자나 예언자, 세례 요한과 같은 인물로 보는 이들도 있었고, 먹고 즐기는 것을 탐하고, 전통적인 종교와 율법을 무시하는 이단아로 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모를 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시는 이유는, 그 질문을 받는 제자들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먼저 이 질문이 있었던 장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빌립보 가이샤라’는 이스라엘 최북단 헤르몬 산 근처의 도시입니다. 갈릴리 벳세다에서 북쪽으로 40km지점이요, 예루살렘까지는 약 227km 떨어져있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서른 살이 되던 해, 성남에 있는 온누리교회 전도사로 있었습니다. 교회청년들과 성남에서 광주까지 도보수련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대략 230km되는 길이었으니 빌립보 가이샤라에서 예루살렘 가는 거리 정도가 되겠습니다. 당시 8명이 출발했는데, 자는 시간과 밥해먹는 시간만 빼고 꼬박 6일을 걸어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예수님의 일행도 빨리 걸어가면 일주일, 천천히 이 마을 저 마을 복음을 전하면서 이동하면 두세 달 후에는 예루살렘에 도착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여정의 출발점을 빌립보 가이샤라로 보는 이유는 마태복음 16장 13절부터 20장까지 이어지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예루살렘 입성과, 예루살렘에서의 일주일간의 행적, 즉 성전정화사건으로부터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마지막 여행길의 출발지인 ‘빌립보 가이샤라’는 예수님의 공생애말기 ‘터닝포인트’를 위한 장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빌립보 가이샤라는 구약에서는 ‘라이스 또는 단, 바알 갓(행운의 바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가나안 사람들이 바알을 숭배하던 곳이었습니다. 이후 그리스가 그곳을 지배하면서 목동의 신 ‘판(Pan)’을 숭배하는 곳이 됩니다. 이후 로마가 지배하면서 ‘로마인들의 신 Pan – 모든 것’이 지배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 가이샤라는 오랫동안 풍요와 재물의 신 바알을 섬겼던 곳이고, 쾌락과 성추행을 일삼았던 쾌락의 신 Pan을 숭배한 곳이며, 권력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로마 황제를 숭배했던 우상의 도시였던 것입니다. 우상의 도시 한 복판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 이 대답들은 세간에 예수님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묻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예수님 말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은 누구냐는 말씀입니다.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합니다.
지난주에 ‘열 처녀의 비유’를 풀이하면서, ‘등불의 기름’은 각자 준비해야하는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고백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의 이런저런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고백하는 예수님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것을 듣고 싶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이들의 고백’에 익숙해 있습니다. 신학자들의 고백,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의 고백이 신앙고백도 소중하겠지만, 자기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은 ‘우상숭배가 만연한 빌립보 가이샤라’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상의 도시 한 복판에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누구의 고백이 아니라, 나의 신앙고백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신앙고백을 듣기 원하시기에 65년 전에 한남교회를 세워주시고, 지금껏 이끌어주신 것입니다. 한남교회가 아름다운 교회가 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확고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을 고백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하십니다. 여기서 반석은 베드로(페트로스)가 아니라 페트라입니다. 페트로스는 작은 돌멩이를 의미하는 단어이고, 페트라는 주춧돌을 삼을 수 있는 반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작은 돌, 즉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고백했던 신앙고백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때 교회를 음부(하데스), 즉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 베드로라는 작은 돌멩이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베드로와 같은 수많은 신자들의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지난 65년간 한남교회를 지켜온 여러분 모두가 하나하나의 돌멩이요, 그 돌멩이들이 모여 믿음의 반석을 이뤘고, 그 위에 한남교회가 세워졌으므로 이 교회는 주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교회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아름다운 교회인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교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여러분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진화론 때문에? 코로나 19 때문에? 차별금지법이나 동성애 때문에? 아닙니다. 교회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진정으로 충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알의 풍요로운 재물 위에 교회를 세우고, 쾌락의 신 Pan 위에 교회를 세웠고, 권력에 충성하는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교회의 위기가 온 것입니다. 이런 교회들이 허다하니 교회가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교회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땅에서 우리는 65주년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목사로서 저는 담임목사 취임식 때 선언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만’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한남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반석을 이루는 돌멩이들이 되어주십시오. 각자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자하는 열정, 각자 개인의 분명한 신앙고백,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 삶으로 살아가겠다는 열정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음부의 권세가 감히 넘보지 못하는 아름다운 교회로 우리를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교회로 만들어간 모든 분들을 축복해 주실것입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한남교회가 있어 다행이다.’이런 소문이 널리 퍼지는 한남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한남교회가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한숨 쉬고 한탄하는 이들에게, 교회를 등진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런 아름다운 교회에 대한 비전이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에 굳건하게 자리 잡을 때, 한남교회는 아름답고 힘찬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아름다운 교회를 지어가시는 여러분, 힘내시고 기도해 주시고 함께 동행하시는 여러분이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