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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10주]등불의 기름을 준비하는 삶

  • 관리자
  • 2020-11-08 18: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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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10주
마태복음 25:1~13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는 삶



코로나19이후 전 세계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선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코로나바이러스는 변이를 더해가며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코로나19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것을 희망하지만, 미래학자들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가 너무 강력해서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후변화’입니다. 지구생태계의 기후변화의 일차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인간입니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자연생태계의 파괴와 편리에 길들여져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소비성향은 미래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지구의 종말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할까요? 오늘의 성서일과 마태복음 25장 1~13절의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종말의 때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비유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와 연결된 말씀들을 생각해보면 좋습니다. 
신약성서 중에서 ‘작은 묵시록’으로 불리는 마태복음 24장은 ‘주님의 오심과 종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종말의 날에 어떤 일이 있을지 징조를 묻고(마24:3), 예수님은 그 날에 일어날 현상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가짜 그리스도가 출몰하고,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나고,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이것은 시작일 뿐이고, 예수님의 제들은 환난을 당하고 죽을 것이며, 미움을 받을 것이요, 많은 사람들이 걸려서 넘어지고, 서로 넘겨주고, 서로 미워하고,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홀리고, 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이 식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혼란한 때를 살아가는 요즘과 마태가 속한 초대교회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종말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 ‘언제?’가 최고의 관심사입니다. 초대교회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주님이 오실 시기’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그 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답을 분명하게 주셨습니다. ‘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때’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연장선상에서 25에서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최후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비유의 메시지는 분명해집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이렇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결혼예식은 크게 3단계로 이뤄졌습니다. 1단계는 혼인계약으로 신랑이 신부측에 지참금을 지불합니다. 2단계는 약혼식으로 서약과 선물교환을 하고, 결혼한 후에 살 집을 마련합니다. 마지막 3단계는 혼인예식으로 신랑이 자기 집에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고 신부를 데리러 신부 집으로 갑니다. 그러면, 신부의 들러리가 신랑을 맞이하여 신부의 집에 바라다 주고, 이후에 신랑신부가 살 집으로 가는 행렬에 참석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의 이야기는 3단계의 결혼예식을 상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본문을 오해해서 열 처녀들을 신부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본문을 살펴보면 ‘처녀들’이라는 복수가 사용된 반면에 ‘신랑’이라는 단수가 사용되었고, 합동결혼식도 아니요, 일부다처제 사회라도 한 날에 다수의 신부와 결혼하지 않습니다. 만일 열 처녀가 신부라면, 혼인잔칫날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일방적으로 혼인을 취소당하는 기이한 상황이 일어납니다. 물론, 비유 이야기지만, 이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열 처녀’는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들러리라는 것은 알아야 합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됩니다.
신랑을 맞이하려 열 처녀가 나갔는데, 그중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 어리석음과 슬기로움의 기준은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는지’입니다. 그런데 신랑이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는데, 신랑을 기다리던 처녀들이 모두 졸다가 잠이 들 정도로 늦어집니다. 한참 단잠에 빠져있는데 “신랑이 온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열 처녀가 모두 일어나 등불을 손질하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의 등불은 기름이 떨어져 꺼져갑니다. 그러자 어리석은 처녀들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러면 둘 다 모자를 수 있으니 기름 장수에게 사서 쓰라고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하여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혀버립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도착하니 이미 신랑은 도착했고, 혼인 잔칫집의 문은 닫혔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지만, 신랑은 “난, 당신들을 알지 못합니다.”합니다.

예수님은 비유 이야기 끝에 “그러므로 깨어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시며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깨어있으라!”는 곧 “준비하라”는 말씀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신랑이 늦게 온다는 것은 종말의 지연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면서 곧 오시리라고 하셨고, 승천하시는 것을 본 사람들 중에는 재림하실 것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곧 올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지연되었습니다. 마태복음이 기록된 때는 주후 85년에서 90년경으로 추정되는데, 적어도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 50년 이상이 되었으니 마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뭔가 이야기할 필요를 느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언제 오실까?’에 방점을 찍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 마태는 ‘언제’보다 중요한 것은 ‘기름을 준비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언제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그 중간기에 책임 있는 행동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유의 핵심은 그 날과 그 시각을 모르는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에서는 처녀들이 졸다가 잠든 것은 조금도 탓하지 않고, 기름을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어리석은 행동이었었다고 폭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인자의 오심을 대망한다고 하면서 인자를 맞이하는 데 꼭 필요한 준비를 빠뜨리고 있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경고하기 위해 말하여진 것입니다. 그리고 인자를 맞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준비는 지금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너무 늦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자 마태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해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는 이런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더라도 해이하지 말고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으라는 권고로 이 비유를 이용한 것입니다. 비유 속에 ‘기름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빌려주지 않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은 어떤 윤리적인 지침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자가 도래하는 종말적인 사건에 대비하여 각자 개인이 준비해야할 것이 있으며, 준비해야할 시기가 있으며, 그 일은 남이 대신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각자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종말의 때, 인자가 오실 때가 있는데 그 때가 언제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때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지금은 기름을 준비하는 때라는 점입니다. 셋째, 이 준비는 각자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오늘은 종말을 준비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좀 더 쉬운 말로 풀면 ‘오늘을 제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불안한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기후변화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으며, 인류는 죽음의 길을 돌이킬 수 있는 자정능력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안해하고 근심걱정에 빠져 살아가야 할까요?
 

아닙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힘입어 살아가야 하고, 그것이 기름을 준비하는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묵상하며 산상수훈의 말씀과 바울서신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34절의 말씀과 빌립보서 4장 4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의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을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3~3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오늘’을 기쁨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둥불의 기름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임종을 앞둔 분들에게 인생을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조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약 70%의 사람들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살걸 그랬다”라는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30%의 사람들도 ‘걱정’은 후회하는 목록 3순위 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이 걱정에 관해 연구를 하고 정리를 했습니다. 결과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 40%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걱정한다고 해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에 대해서 근심 걱정하는 것이 30%, 불필요한 걱정이 12%, 시시한 잡동사니 같은 걱정이 10%였으며, 진실로 걱정해야할 일을 가지고 걱정하는 경우는 8%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은 기쁨 충만한 삶인데, 우리는 세상사에 마음을 빼앗겨서 하지 않아도 될 92%의 근심걱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걱정해서 바뀔 일이면 걱정하십시오. 그러나 걱정해도 바뀔 수 있는 일이 아니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기름을 준비하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오늘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기쁘게 맞이하고 기쁘게 보내기 위해서 힘쓰십시오. 교회에서 나눠드린 감사일기 <숲의 위로>를 꾸준히 쓰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우리 삶에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기뻐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종말의 때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 그것은 오늘을 기름을 준비하는 날로 살아가는 것이요, 기쁨 충만한 삶은 곧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준비한 ‘기름’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염려하지 말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이렇게 살아가심으로 내면의 기쁨이 충만해지고, 그 빛으로 인해 여러분의 삶이 빛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주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면 염려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의 마음을 지키게 하셔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오늘에 대한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는 것이 기름을 준비하는 삶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피워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음성설교듣기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871296

동영상 설교보기
https://youtu.be/hWoy9OO_Z_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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