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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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주일]성령이 일하시게 하라

  • 관리자
  • 2022-06-0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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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20220605)
성령이 일하시게 하라
사도행전 2:1~13
시편 104 / 로마서 8:14~17 / 요한복음 14:8~18, 25~27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전환점의 달 6월입니다.
교회력으로는 6월부터 성령강림절이 시작되고, 성령이 하시는 일이 ‘새롭게 창조’하시는 일이므로 환경주일로 지정하여 지킵니다. 성령강림절에 사랑하는 여러분도 새롭게 창조되시어, 삶의 전환점과 신앙의 전환점이 되는 귀한 절기가 되길 바랍니다.
 

▪ 성령강림절의 시작




지난주에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에 승천주일을 지키면서 聖과 俗은 하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줄 상급이 있어 속히 오겠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응답하는 신앙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오순절에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성령의 강림으로 성취된 말씀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었던 백이십 성도들은 베드로의 주관으로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뽑았습니다. 베드로는 유스도라고도 하는 요셉과 맛디아를 천거하였고, 제비뽑기의 결과 맛디아에게 사도의 직분을 주었습니다. 이로써 맛디아가 사도의 수에 들면서 다시 열두 사도가 조직되었습니다. 오순절이 되어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있을 때였습니다.

오순절은 50과 관련이 있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 승천하신 후 10일 후 강림하신 것입니다. 또한, 오순절은 추수절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 심판의 때를 상징합니다. 그러니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던 이들은 성령의 강림을 통해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약속하신 재림의 때를 실감했을 것입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 오를 때 혓바닥이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성령강림절의 시작입니다.
 

▪ 성령을 받았다는 것




한국교회는 ‘성령’에 대한 오해가 참으로 많습니다. 오해가 많다 보니 오용도 많고, 성령인지 악령인지 구분도 못 합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지만, 성령 받았다고 자신하는 이들을 만나거나, “성령 받아라!”하면서 마치 자신이 성령을 줄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목사들을 보면 거부감이 듭니다. 

사실,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영으로 창조하셨다고 믿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에는 하나님의 영이 내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혹은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고 한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요, ‘성령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는가요, 성령의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지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존재하신다’는 증거가 ‘성령의 임재’요, 성령의 임재는 곧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임재입니다. 이것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성령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러니 한 개인이 ‘성령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산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주님의 영이 임했다고도 하고,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번주 성서일과의 병행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성령 받았다’는 것의 다른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04편 30절에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14절에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고 밝힙니다. 요한복음 14장 10절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고 하십니다.
 

▪ 말은 존재다




세찬 바람, 불, 방언은 모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상징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세찬 바람에 모든 것이 깨지고 날아가듯, 불에 타 재가 되어 흔적도 없이 타 버리듯 이전 것은 다 사라져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방언, 즉 자신도 알지 못하던 말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세찬 바람, 불, 방언 모두 ‘말(語)’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본문을 보면 2절에 그냥 세찬 바람이 아니라,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3절에서는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4절에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소리, 혀, 방언 모두 ‘말, 언어’입니다.



‘말은 존재다. 말은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말을 자주 하는지가 그 사람인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그는 부정적인 사람이요,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긍정적인 사람이요, 수군거리는 말을 많이 하면 수군거리는 자요, 비방하는 말을 많이 하면 비방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자 제자들은 자기의 말이 아니라, 성령이 시키는 대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시키는 말은 생명을 살리는 말이요, 힘겨운 이들을 도닥여주는 말이요, 거짓이 아닌 참된 말, 진리의 말일 것입니다. 이것이 방언입니다.

6절 이하를 보십시오. 제자들이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각각 그 지방 말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마다 놀라 “이게 어찌된 일이요?”하는 것입니다. 물론, 몇몇은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는 이들도 있지만, 성경에서 증거하는 방언은 보통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방언이 아닙니다.
 

▪삶의 방언을 하라



여러분, 이미 우리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뜻대로 된 것 같지만 성령께서 인도해주신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겠습니까? 성령 받은 사람답게, 성령 받은 사람다운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자들이 방언으로 전한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을 하며 살아가십니까? 단순히 전도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입으로 하는 말이 있고, 삶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한남교회 교우들이 입의 방언보다 삶의 방언을 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길 바랍니다.
 

▪ 세찬 바람, 불길, 방언




여러분, 위에서 세찬 바람에 모든 것이 깨지고 날아가듯, 불에 타 재가 되어 흔적도 없이 타 버리듯 이전 것은 다 태워져서 사라져버리고 성령이 시키는 대로 방언, 즉 자신도 알지 못하던 말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령받은 삶’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바람 앞에서 우리는 깨져야 하고, 무너져야 하고, 성령의 불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비로소 성령이 시키시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깨지기를 거부하고, 나 자신의 존재감을 끊임없이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까? 신앙으로 인해 자신의 일상이나 생각이 조금이라도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하나님은 나의 존재감을 세우기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이런 신앙을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성령 충만한 제자들을 보고 많은 이들이 놀라지만, 몇몇은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합니다. 이해할 수 없으면 조롱함으로 자신의 무지함을 제거하고 존재감을 찾으려는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몇몇은 이런 얄팍한 존재감을 세우려고 제자들을 조롱하지만,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서 밝히듯 제자들은 새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성수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예물을 드리는 모든 일은 요즘 세상의 눈으로 보면 조롱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성수를 잘하고, 예배에 정성을 다하고, 물질로 땀으로 헌신하고 봉사하면 성령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 성령께서 일하시게 하라


오늘 주일 설교의 제목은 ‘성령께서 일하게 하라“입니다. 이런 제목을 정한 이유는 가물에도 피어난 씨크릿 가든의 으아리에 관한 묵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으아리를 보면서 이런 묵상을 했습니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보름 이상 빨리 피었다. 가물에 시원치 않게 자랐다가 단비 한 번 제대로
맞아보지 못하고 꽃은 졌다. 그래도 씨앗은 맺힐 것이다. 꿀벌도 귀했지만, 어찌어찌 명맥을 보존할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으아리에게 박수를…
저마다 다들 열심히 산다.
그 열심이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일이라면, 더욱 풍성한 삶의 길이 열릴 터인데, 자본주의라는 안경에 눈이 가려 열심히 살지만, 저마다 지옥을 산다. 
액면 그대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 그분이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소위 성령파들은 어떤가?
물론, 차갑게 식어버린 냉혈신앙보다야 나을지 모르지만, 오십보백보가 아닌가 싶다.
으아리가 열심을 다해 살았지만, 거기에 단비가 더해지고, 벌과 나비라는 이웃이 더해졌다면 훨씬 더 풍성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마다 열심히 사는데 고단하게 산다.
이웃 없이 하나님 없이 각자도생의 삶을.



여러분, 내가 열심히 살면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하지만, 내 열심을 성령이 도우시면, 성령이 일하시고 내가 거들면 더 큰 길이 열릴 것입니다.
나 혼자서도 능히 이겨낼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성령이 여러분 안에서 일하게 하십시오. 그것이 성령받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산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지름길을 두고 먼 길로 돌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시겠다고 하는데 마다하는 것은 지혜로운 삶이 아니라 어리석은 삶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성령의 계절에 성령님으로 인하여 새롭게 거듭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 기도]



주님, 성령의 계절을 맞이했습니다.
뜨거운 여름의 햇살처럼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게 하시고, 우리 안에 성령을 모시고 살아감으로 성령께서 일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번번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외면하고 우리의 힘만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 성령님이 함께 하지 않는 삶의 결국은 공허한 것임을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복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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